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0. 또 나를 가르친 여행, 한 뼘 더 자란 나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0. 또 나를 가르친 여행, 한 뼘 더 자란 나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5.24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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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60. 키르기스스탄의 오프로드와 송쿨호수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0. 또 나를 가르친 여행, 한 뼘 더 자란 나

최악의 숙소

두샨베에서 며칠간 푹 쉬고 바이크 수리도 마친 후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났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싫어 파미르를 통하지 않고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따라 이동했다.

두샨베는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만큼 길이 잘 깔려있다.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이 닿아있는 도시 이스파라까지 약 400km를 하루 만에 이동했다.

몽골, 그리고 파미르까지 지났더니 포장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400km를 달려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이스파라에 도착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캠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숙소를 찾았다. 동네를 몇 바퀴나 돌다가 겨우 찾은 숙소는 말 그대로 ‘다 쓰러져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화 2700원가량의 가격. 너무 쌌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주인에게 안내를 받아 들어간 방은 정말 심각했다. 캠핑을 하며 일주일 동안 양치를 못하면서도 여행한 나도 꺼리게 하는 숙소였다. 한마디로 음산했다. 유령이 나올 것 같은 화장실은 정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숙소 화장실
숙소 화장실

그래도 하룻밤 자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겠는데, 베드버그가 걱정이었다. 여행 초기 러시아에서 자다가 등을 온통 베드버그에 물린 기억이 떠올랐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옷을 벗지 않고 그 위에 우비까지 껴입었다.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대지 않지 위해 몸을 벽에 기대어 하룻밤을 보냈다.

다시 돌아온 키르기스스탄 오시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숙소를 나와 다시 키르기스스탄 오시를 향했다. 가는 도중 도로가 막히거나 우즈베키스탄 지역이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나와 몇 차례나 길을 돌아 나오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은 시각에 오시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지도에 표시 된 대로 왔는데도 길 곳곳이 막혀있다.
지도에 표시 된 대로 왔는데도 길 곳곳이 막혀있다.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 사뭇 다른 기분이다. 마치 집에라도 돌아온 것 마냥 안락하다. 전에 사용한 욕실에서 샤워한 후 전에 쓴 방, 전에 쓴 침대에 앉아 맥주를 마시니 이곳을 지나 파미르를 통과한 시간들이 꿈처럼 아득하다.

‘정말 대단한 경험을 했구나.’ 깨끗하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두려움이 아닌 추억으로 그 순간을 떠올리며 잠들었다.

다음날 하루를 더 숙소에서 쉬었다. 늦게 일어나 샤워 겸 밀린 빨래를 하고 자주 가던 식당에 가서 고기와 야채 등을 면과 함께 볶은 요리인 ‘라그만’을 먹고 그 앞 공원에서 산책했다.

근처 식당에서 자주 사먹은 라그만
근처 식당에서 자주 사먹은 라그만

그리고 그 다음날, 이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로 출발한다. 비쉬케크에서 카자흐스탄을 건너 러시아로 갈 계획이다.

파미르도 건넜는데 이정도 쯤이야

전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다른 길을 알아보니 도로를 가로질러야한다. 지도를 봐서는 오프로드 같았지만 파미르도 지나온 내가 오프로드에 겁먹을 리 없다. 그곳으로 방향을 잡고 짐을 챙긴 후 바로 출발했다.

오시에 들어오기 위해 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간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늘 익숙해진 곳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는 내 여행에서 없던 경험이다. 죽다 살아나서인지, 단 한 번 지나온 길인데 고향땅을 밟은 듯 반갑다.

처음 오시에 왔을 때 불타는 자동차에 소화기를 들고 달려들었던 곳을 지나 오시를 벗어났다. 잘 뻗은 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전에 왔던 길을 벗어나 산을 향하는 다른 길로 들어섰다.

산을 향해 들어가니 오프로드가 나왔다.
산을 향해 들어가니 오프로드가 나왔다.
오프로드에 이어 나타난 눈길
오프로드에 이어 나타난 눈길

 

아스팔트포장길이 이어지다가 시멘트포장길이 나올 때쯤 풀어 키우는 닭들과 가정집이 간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민가가 보이지 않기 시작하자 이내 흙길이 나왔다.

‘이 정도 오프로드야 눈 감고도 지나가지’ 하는 생각으로 거침없이 달렸다. 산세가 점점 험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이 꽤 쌓여있지만 꽁꽁 얼어있는 땅은 아니어서 심하게 미끄럽진 않다. 주의하며 눈길과 진흙길을 지나 한참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사라졌다.

산사태로 길이 사라졌다.
산사태로 길이 사라졌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아 멈춘 뒤 앞으로 걸어가 보니 산사태로 길이 완전히 끊겼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건 이때부터다.

최악의 오프로드

다른 길을 찾아 조금 더 들어가니 눈 쌓인 길이 나온다. 그 위로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다. 동물 발자국만 남아있을 뿐, 자동차 바퀴 자국이나 사람 발자국은 찾아볼 수 없다.

동물 발자국만 있는 눈길
동물 발자국만 있는 눈길

파미르에서 느낀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파미르도 지났는데’ 하는 자신감 하나로 앞으로 향했다.

길은 점점 더 험했다. 이게 길이 맞나, 할 정도였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길이 이어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바이크 한 대가 겨우 갈 수 있는 길. 돌이 계속 떨어지는 절벽 옆 좁은 곳을 비틀거리며 겨우 지나갔다. 파미르를 지날 때 겪은 와칸계곡은 차라리 양반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의 길이다. 주먹만 한 돌들이 바람에 굴러 떨어져 바이크를 때린다.

절벽을 겨우 빠져나왔더니 물이 허벅지까지 오는 깊이의 강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강을 건너야만 하는 상황. 바이크에서 내려 우비를 입고 속도를 올려 한 번에 강을 건넜다. 다행히 강에서 넘어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바지가 많이 젖었다. 눈이 쌓여있는 추운 날씨에 바지까지 젖다니. 이 산을 빨리 빠져나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낙석을 피하고 눈길에서 넘어지고 강을 건너며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갔다. ‘파미르에서 겨우 살아났더니 이건 또 무슨 색다른 지옥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해가 산 뒤로 숨기 시작했을 때 돌과 얼음과 진흙으로 된 언덕을 만났다. 차라리 꽁꽁 얼어다면 건너가기 쉬울 텐데, 낮 동안 햇빛에 녹은 진흙은 짐이 잔뜩 실린 바이크가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흙 언덕
진흙 언덕

러시아 치타를 지날 때 늪에 빠졌던 기억과 파미르의 겨울이 동시에 떠오른다. 바닥이 온통 진흙이라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힘들다.

해가 완전히 사라져 깜깜해질 때까지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고 넘어지길 반복했다. 결국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고 달조차 뜨지 않은 추운 밤을 맞았다.

깜깜한 밤이 돼서야 바이크를 빼냈다.
깜깜한 밤이 돼서야 바이크를 빼냈다.

바이크에 묶여있는 짐을 모두 풀어서 옆으로 옮기고 눈 위에 텐트를 쳤다. 바이크와 씨름을 할 때는 열이 올라 더웠지만, 텐트를 치고 나니 젖은 바지가 아직 다 마르지 않아 이가 덜덜 떨린다.

바지를 말리지 않으면 자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이크 조명을 비춰 주변에서 나무들을 주워와 기름을 뿌리고 불을 피웠다. 한동안 불 앞에 서서 바지를 말리며 초코바와 함께 꽁꽁 얼어버린 생수 대신 눈을 파서 먹었다.

한참동안 불 앞에서 바지를 말리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파미르를 향할 때처럼 가방이고 뭐고 모든 것을 바닥에 깔았다. 깊은 산속, 늦은 밤, 야생동물이 나올까 걱정하며 도끼를 손에 쥐고 앉은 채 잠들었다.

눈 위에서의 캠핑
눈 위에서의 캠핑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언덕을 올라봤지만, 짐이 없으면 모를까 도저히 오를 수 없다. 결국 뒤로 조금 돌아 나와 다른 길을 찾았다.

여전히 험했지만 그래도 갈 수 있을만한 길을 따라 산에서 벗어나 포장도로로 나왔다. 지도를 보니, 산을 뚫고 난 길로 오지 않고 잘 깔려있는 길을 따라왔다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다. 

또 한 번의 배움

파미르를 지났다는 자신감 하나로 들어간 겨우 살아 나왔다. 근거 없는 용기와 자신감, 이 정도 쯤이야 하는 오만 때문에 고생했다.

절벽을 지날 때 큰 낙석에 맞았다면, 강을 건너다 넘어져 빠졌다면, 자다가 저체온증이 걸렸다면, 늑대나 곰 같은 야생동물을 만났다면, 오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파미르를 통과하며 얻은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감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더 신중하고 겸손해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행은 나를 또 가르쳤고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자투리 여행정보 60. 키르기스스탄의 오프로드와 송쿨호수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호수 (사진출처ㆍpixabay)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호수 (사진출처ㆍpixabay)

이번 여행기에서 내가 갇혔던 산은 ‘Gora Babash-Ata’라는 곳으로 높이가 해발 4428m난 된다. 파미르 고원의 아크바이탈 패스(4655m)보다 낮지만, 산 속 길은 굉장히 험하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3분의 2 이상이 해발 3000m를 넘는 고산지대다. 유럽인들에게는 ‘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이 많은데, 라이더들은 키르기스스탄의 오프로드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기도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송쿨 호수까지 가는 길이다.

해발 3000m 부근에 위치한 송쿨 호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있다. 게르와 초원, 산으로 둘러싸인 송쿨 호수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봐도 뭉클할 만큼 아름답다. 키르기스스탄에 있을 때는 몰라서 가지 못했다. 다시 키르기스스탄을 간다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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