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7.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7.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5.03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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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57. 파미르 고원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7.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해발 4282미터 ‘키질아트패스’

다섯 번의 도전 끝에 국경에 도착했다. 정확하게는 키르기스스탄의 출국 사무소다.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장작을 넣은 난로를 불쏘시개로 뒤적거리던 직원이 ‘이 날씨에 웬 미친놈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당황해하는 그를 향해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소개하며 국경을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난로 옆으로 오라며 자리를 내준 그는 잠시 후 따뜻한 차 한 잔을 내 준다.

난로 앞에서 차를 마시니 몸이 살살 녹는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쉬는 김에 초코바도 하나 까먹었다. 추운 밖에서 먹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초코바를 다 먹은 후 직원의 안내에 따라 출국절차를 밟았다.

그동안 지나온 국경은 출국사무소와 입국사무소가 붙어있어서 한 번에 처리가 가능했는데,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 사무소는 서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져있다.

출국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키르기스스탄의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으면 바로 다른 나라로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벗어나 발 딛은 곳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국가가 없는 땅이다.

여행기를 연재하며 상단에 계속 들어갔던 사진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여행기를 연재하며 상단에 계속 들어갔던 사진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애초에 땅은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을 터. 거기에 선을 긋고 구역을 나눴다. 사람들 끼리나 분쟁이 있을 뿐, 땅은 지구는 그저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국가가 없는 땅이어서 일까. 지도에도 이곳의 위치가 정확하게 표시되지 않는다.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이 정처 없이 떠도는 내 여행과 닮았다.

파미르의 영양상
파미르의 영양상

날씨가 좋다. 점점 더 오르막길이 나온다 싶더니 ‘탈딕패스’를 지날 때처럼 고산병 증상이 나타난다. 고도가 높아지는 것을 고도계 없이도 느낀다.

넘어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며 걷는 속도로 꾸준히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해발 4282미터, ‘키질아트패스’를 지난다.

해발 4282미터 키질아트패스
해발 4282미터 키질아트패스

세계의 지붕 ‘파미르’와 파미르의 검은 눈물 ‘카라쿨’

그토록 꿈꾼 파미르고원이다. 키질아트패스를 지나니 땅에 눈이 거의 없다. 고도가 높아져 눈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원지대라 그런지 눈도 없을 정도로 굉장히 건조하다.

바이크를 운전하기에는 눈길보다 훨씬 낫다. 오랜만에 기어를 2단까지 올리며 속도를 내 타지키스탄 국경에 도착했다.

키질아트 패스를 지나니 눈이 없어진다.
키질아트 패스를 지나니 눈이 없어진다.

삭막한 곳에 있는 삭막한 국경. 하루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한 명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별다른 문제없이 국경 통과 절차를 밟고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 들어섰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 해발 700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산 사이에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길 ‘파미르 하이웨이’가 있다.

내 여행의 가장 큰 도전이자 어쩌면 내 삶에 가장 큰 도전일지도 모르는 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바람이 굉장히 강하고 건조하다. 삭막한 대지에는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사막 같은 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니 ‘파미르의 검은 눈물’이라는 카라쿨호가 보인다.

‘검은 호수’라는 뜻의 카라쿨은 파미르 고원 분지에 있으며 수면 면적이 364제곱킬로미터에 달하고 최대 깊이가 236미터나 된다.

해발 4000미터에 있는 거대한 호수. 흘러나가는 하천도 없이 언제일지 모를 아주 오래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호수는 파미르의 검은 눈물이라 불릴 만큼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잠시 멈춰 호수를 바라본다. 더 여유를 갖고 호수를 관찰하고 싶지만 매서운 바람과 추운 날씨에 오래 있을 수 없다.

파미르고원의 모습.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멀리 카라쿨 호수가 보인다.
파미르고원의 모습.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멀리 카라쿨 호수가 보인다.

파미르하이웨이의 최고점,  해발 4655미터 아크바이탈

화성이나 달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간에도 생명들이 있다. 가장 많이 보이는 동물은 큰 다람쥐같이 생긴 마못과 토끼다. ‘사람이 사용하는 길’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어서인지 길 위에 서 있다가 바이크 소리가 들리면 옆으로 도망가곤 한다.

눈 위에서 며칠을 고생하고 나니 파미르의 오프로드가 반가울 지경이다. 시속 10킬로미터에서 간당간당하다가 40~50킬로미터까지 속도를 내니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내친김에 ‘무르고프(무르갑)’라는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은 꼭 샤워를 하리라는 마음으로 무르고프를 향한다.

고산병 증상은 어느 정도 견딜만한 수준까지 왔다. 넘어져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느라 힘을 쓸 일이 없으니 증세가 완화되기도 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눈길을 달리고 국경을 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 해가 저물기 시작한다. 몽골에서도 밤에는 오프로드에서 운전한 적이 없지만 오늘은 꼭 숙소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오프로드 운전을 강행한다.

다행히 길이 험하진 않지만 한참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길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눈을 팔수 없다. 금세 해는 저물고 둥근 달이 세상을 비춘다. 주변에 빛이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달과 가까워서인지 달빛만으로도 길이 잘 보인다.

그렇게 눈앞 길에만 집중하며 달리는데 저 멀리 표지판이 보인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최고점, 해발 4655미터 ‘아크바이탈 패스’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최고점, 해발 4655m 아크바이탈 패스
파미르 하이웨이의 최고점, 해발 4655m 아크바이탈 패스

‘진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수 십 번은 더 한 끝에야 비로소 내 삶에서 가장 하늘에 가까운 순간을 맞는다.

탈딕패스에서도 참아낸 울음이 터진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기뻐서, 감동해서, 외로워서, 힘들어서, 내가 너무 대견해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파미르의 작은 마을 ‘무르고프’

아크바이탈을 지나 오래 달리지 않았는데 마을이 보인다. 평지에 낮은 건물이 몇 개씩 줄지어 있는 작은 마을 무르고프. 건물이 많지 않아 숙소 찾기가 어렵지 않다.

바로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방 가운데에 장작이 타고 있는 난로가 있고 그 주변으로 1인용 침대 여러 개가 놓여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주인에게 샤워할 수 있냐고 물으니, 옆 건물로 가서 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꼬마전구 같은 아주 작은 조명이 들어있는 샤워장에는 머리 쪽에 커다란 양동이에 물이 끓고 있고 거기에 연결된 호스를 틀면 물이 졸졸 흐른다. 차갑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겨우 씻을 수 있을 만큼 흐르는 물이지만 일주일만의 양치와 샤워는 매우 개운하게 한다. 

옷을 빨 수 있을 정도로 물이 넉넉하지는 않아 샤워를 간단하게 한 후 방에 들어가 곧바로 잠들었다.

굉장히 피곤했나보다. 다음날 정오가 다 돼서야 겨우 깼다. 가방에 있는 인스턴트커피가 터질 듯 팽창해있다. 이곳이 정말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 고원이 맞구나.

난로 위 주전자에 있는 물로 커피를 타 마신 후 가방에서 매직을 꺼내 바이크에 ‘타지키스탄’이라고 적었다. 이를 위해 내 삶에 가장 힘든 순간들을 지났다.

바이크 사이드 가방에 Tajikistan을 적었다.
바이크 사이드 가방에 Tajikistan을 적었다.

고작 며칠, 아니 바로 전날만 해도 눈 속에서 사경을 헤맸는데…. 그 순간들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파미르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투리 여행정보 57. 파미르 고원

파미르는 나라가 아닌 지방을 뜻하는 용어도 쓰이는데, 파미르 지방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에 속해있으며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일부에도 걸쳐있다.

톈샨 산맥과 쿤룬 산맥, 힌두쿠시 산맥, 제3의 극지라는 카라코람 산맥 등이 만나는 곳이 파미르 고원이다. 그래서 ‘파미르 매듭’이라고도 불린다.

옛 소련의 최고봉인 코뮤니즘(7495m)과 레닌 봉(7134m), 중국령의 무즈타그 아타(Muztagh Ata, 7546m)와 쿵구르(Kongur, 7719m), 톈산 산맥의 최고봉 포베디(Pobedy, 7439m)와 몽골어로 ‘영혼의 왕’이라는 칸텡그리(Kan Tengri, 6995m) 등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거대한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페르시아어로 ‘태양신의 자리’라는 어원에 걸맞은 파미르에서 맞는 햇살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매섭다. 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자와 천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생활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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