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42. 알타이인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42화. 알타이 박물관

마록농장

샤슬릭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에서 개운하게 오랫동안 잠을 갔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피곤했던 터라 조금 늦은 아침에 일어났다. 형님들은 먼저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일리나 집 마당에 있는 그네

햇살이 좋은 아침, 간단하게 씻고 빵과 차를 마신 후 마당에 있는 그네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일리나의 고양이 무르카는 전날 샤슬릭을 하기 위해 사온 고기를 형님들 몰래 줬더니 내가 좋은지 마당에서 자다가도 내가 밖으로 나오자 옆으로 와서 애교를 부린다.

고양이 무르카

오늘은 전날 일리나가 알려준 사슴농장을 가는 날이다. 말 같은 사슴이라는 마록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기대에 부풀어 형님들의 차를 얻어 타고 사슴농장으로 향한다.

30여 분 달리자 아스팔트길이 없어지고 산길이 나온다. 조금 더 들어가자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철망이 쳐져있는 곳이 나온다. 이중으로 된 철문 앞에 멈춰 라픽이 일리나에게 받은 전화번호로 농장 주인에게 전화하니, 잠시 후 안에서 주인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안에 사슴이 잔뜩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갔는데 사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오기 전에는 사슴우리 정도를 생각했는데, 와 보니 전혀 딴판이다. 울타리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차를 타고 이동해야할 정도로 넓다. 사슴 한 마리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축구장 하나만큼의 땅이 필요하단다. 이곳은 그냥 산 하나가 농장이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차를 타고 안으로 한참을 더 들어가니 주인이 사는 집과 녹용을 저장하는 곳, 러시아식 사우나인 바냐, 손님들을 위한 별장 등이 나온다.

먼저 녹용을 보관하는 곳으로 갔다. 자작나무로 지어진 큰 창고에는 녹용이 엄청나게 많이 걸려있다. 심하진 않지만 피비린내가 나서 잠시만 보고 금방 내려왔다.

녹용이 가득한 창고

‘인간의 욕심에 의해 사슴의 생뿔을 잘라놓은 건가’ 하는 생각에 불편했는데, 사슴뿔은 자르면 다시 자라난단다. 자르지 않으면 저절로 떨어져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아 잘라줘야 한단다. 가끔 야생에서 발견되는 사슴의 뿔은 녹용이 아니라 녹각이라고 불린다.

매번 잘라지고 떨어져나가도 새롭게 자라나는 사슴뿔은 한의학에서는 환골탈태로 여기기도 한단다. 동행하는 한의사 형님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지식을 알았다.

다음으로 바냐를 구경하러 갔는데, 이곳 바냐는 알타이산맥에서 나오는 허브 등 약재로 수증기를 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주인의 설명을 잠시 듣다가 차를 타고 사슴 농장을 돌아다녔다. 사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카메라까지 챙겨왔건만 아주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사슴만 있다. 아쉽지만, 그래도 사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알타이 마록은 박물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농장 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녹용을 구입하자, 그는 자신의 집에 녹용을 자를 때 나온 피를 모아뒀다며 그것도 보러가지 않겠냐고 한다. 다시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가 사슴피를 구경했다. 

농장 주인이 모아 상품화 한 사슴피

나는 비위가 약하다. 특히 피를 잘 못 본다. 피를 보면 헛구역질이 나오고 매스껍다. 요리를 할 때 고기에서 흐르는 피만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유리병에 담겨있는 사슴피는 별로 역하지 않다. 상표까지 붙어있어 조금 끈적한 와인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먹지는 못하겠지. 형님들만 기념품 삼아 한 병씩 산 후 다시 일리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냐를 하기로 했다. 일리나가 불을 올려 바냐가 충분히 뜨거워 질 때까지 샤슬릭과 맥주를 마셨다. 술을 먹고 사우나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왠지 괜찮을 것 같다. 이미 전에 만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술을 먹고 바냐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취할 정도로 마시면 위험하겠지만.

뜨거운 바냐 안에 있으니 간헐적으로 오한이 느껴지며 소름이 돋는다. 한의사 형님의 말로는 몸 안에 한기가 빠져나가는 과정이란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바냐를 하고 있으니 몸 안까지 따뜻해지며 편안하다.

바냐를 나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캔을 들고 방에 들어갔다. 형님 둘이 같은 방을 쓰고 라픽이 나와 같은 방을 쓰는데, 라픽은 일리나와 얘기하러 갔는지 전날부터 다른 데서 자고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 덕분에 방을 혼자 쓰고 있어서 불만은 없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음악소리 사이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음악을 끄고 일기를 쓰다가 잠들었다.

알타이 박물관

일리나의 집을 떠나는 날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알타이공화국의 수도인 고르노알타이스크에 있는 알타이 박물관이다. 알타이의 과거와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정확한 위치는 나오지 않는다. 직접 위치를 찾아야한다. 일리나에게 인사를 하고 이른 아침 고르노알타이스크로 이동했다.

세 시간 정도 달리자 수도의 모습이 드러난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대학이 있다. 러시아어는 모르지만 대학이 있다면 영어로 길을 물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알타이 대학 정문으로 갔다.

바이크에서 내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붙잡고 박물관 위치를 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더니 다행히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로비에서 나눠주는 비닐을 신발에 씌우고 박물관에 입장했다.

박물관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찾기도 쉬웠다. 형님들과 함께 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박물관 로비에서 주는 비닐을 신발에 씌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픽이 번역해주는 말을 들으며 구경했다.

박물관에는 옛 알타이족의 유골부터 근현대 사진들까지 다양한 모습이 전시돼있다. 알타이는 지금 러시아인들의 모습과 비슷한 백인들과 몽골이나 중국인들과 비슷한 동양인의 모습 등, 다양한 인종이 한 데 어우러져 있고, 그에 따라 의상부터 생활양식까지 많은 문화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골 등을 분석해서 추정한 옛 알타이인들의 장례문화. 말과 함께 무덤에 들어갔다.

유라시아대륙 가운데 위치한 알타이지역.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시베리아의 혹한에도 비교적 따뜻한 데다 자원이 넉넉하기에 과거부터 여러 민족이 이 지역을 두고 전쟁을 벌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가 섞인 알타이민족의 문화가 생겼으리라.

종교도 샤먼과 개신교, 불교, 이슬람 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모습들이 기록으로 남아 후손에게 전달되고 기억된다. 한 순간을 살아가며 역사를 만드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이렇게 후대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떤 기록을 누군가에게 남길 수 있을까.

박물관에 있던 누군가의 책상.

박물관을 한참 구경하다 박물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상류층이 이용하는 식당인 듯, 요리가 고급이고 그만큼 비싸다. 후식도 다양하다. 내가 사먹는다면 결코 먹지 못할 음식들이지만 형님들의 도움으로 아주 오랜만에 고급 음식으로 배를 채운다.

박물관 식당 디저트. 러시아에 오고나서 이런 음식을 처음 봤던터라 신기했다.

 

하루 1000km 이동에 도전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시간을 막 지난 오후다. 다음 목적지인 노보시비르스크까지는 약 700km 넘게 남았다. 아침 일찍 출발해 이미 꽤 많이 달려왔기에 하루 동안 달리는 거리가 1000km가량 된다.

부담이 되지만 여기서 또 하루를 보낼 수는 없는 일. 일단 조금 더 달려보기로 하고 출발한다. 형님들에게 받은 유심 칩을 핸드폰에 넣고 형님들의 러시아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다음에 연락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 바이크는 배기량이 작아 형님들의 차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 부지런히 가지 않으면 형님들과 차이가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일단 내가 먼저 출발하고 형님들은 조금 더 있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큰 도로로 나오자 자작나무숲이 반겨준다.

바이크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알타이를 벗어나 달린다. 큰 길로 나오자 여행을 시작할 때 본 자작나무 숲이 반긴다. 처음 여행할 때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는데, 지금은 익숙하고 편안하다. 오랜만에 혼자 달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음악을 들으며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라이딩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길가로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해바라기 밭이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해바라기밭

 

한참을 달려도 해바라기 밭은 끝나지 않는다. 10월이라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게 아쉽다. 아마 다시 오긴 힘들겠지만 이곳 좌표를 저장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서 노란 해바라기들을 보길 기대하며.

자투리 여행정보 42. 알타이인

알타이박물관에 걸려있는 샤먼의 사진

 알타이라는 뜻은 고대 튀르크어로 ‘아름다운 금’이라는 뜻이고, 몽골어로는 ‘황금 산’이라는 뜻이다. 이 황금 산의 주인인 알타이인들은 자신들을 황금 산의 사람이라는 뜻의 ‘알타이 키지’라고 부른다.

알타이지역의 독립적 토착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해있어 그 부분의 민족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크게 우랄계 출신의 북 알타이인과 시베리아 남부 출신의 남 알타이인으로 나뉘는데, 여러 문명의 집합 점이었기에 이들의 생활양식과 언어, 문화, 종교 등은 비슷하지만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인류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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