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7. 한계를 느낀 순간이 한계를 넓힌다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 도시 ‘을기’

날씨가 여전히 흐리다. 밤보다는 덜 춥지만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고원의 추위는 가만히 있으면 몸이 덜덜 떨릴 정도다. 전날 아침부터 쉬지 않고 달렸으니 조금만 더 가면 ‘을기’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초코파이로 아침을 때운 후 바이크에 올랐다.

고원은 생각보다 넓다. 길을 따라 고원의 끝이 보이는데 한참을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넓은 평지를 며칠 동안 계속 보다보니 원근감이 사라진 것 같다. 예상보다 한참을 더 달려 고원을 겨우 빠져나왔다.

고원을 통과하는 동안 몇 번이나 강을 건넜다.

고원을 통과하는 동안 좁고 깊은 강을 몇 번이나 건넜더니 바지가 다 젖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자 자동차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내가 틀린 길을 온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한다.

강을 건너느라 바지다 다 젖는다.

얼른 숙소를 잡고 쉬고 싶다. 기름은 아직 여유 있고, 배도 고프지 않아 그냥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바이크에 휘발유가 떨어지면 잠시 멈춰 쉬며 예비 기름통에 있는 휘발유를 채워 넣고 또 달리기를 반복했다.

고원을 지나자 완만한 내리막길이 나왔다.

몇 시간이 지나 예비 기름통에 휘발유가 반 정도 남았을 때쯤, 호수가 나오더니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목적지인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 도시 을기다.

계획 없이 다니는 여행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압박을 느끼지 않고 온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목적지를 잡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만드는 여행도 나쁘지는 않다. 얼른 다다르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천천히 보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감동은 높은 산 정상을 밟을 때보다 훨씬 더 짜릿하다.

몽골에서 처음 만난 호수

헬멧에 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게 환호하며 스로틀을 감는다. 한참을 더 달린 후에야 아스팔트길이 시작된다.

오프로드에서는 넘어질 위험 때문에 속도를 마음껏 내지 못했지만 포장도로라면 얘기가 다르다. 있는 힘껏 스로틀을 감아 바이크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을기에 도착했다.

게르가 여러 동 있는 게스트하우스

도착하자마자 일단 숙소를 찾았다. 미리 검색해 둔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를 찾기 위해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을기에 이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정보를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게스트하우스’를 연발하며 숙소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말을 못 알아듣거나 숙소 위치를 모른다. 난감하다. 이틀 동안 추위에 떨었더니 따뜻한 샤워와 편안한 잠자리가 절실하다. 어떻게든 꼭 숙소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돌아다니다 주유소에 들어갔다.

두 손을 모아 귀 옆에 대고 자는 시늉까지 해가며 숙소를 묻자, 주유소 직원은 바로 내 말을 알아채고는 손으로 주유소 옆 골목길을 가리킨다. 그가 알려준 골목길로 들어가자 잠시 후 큰 철문과 ‘Traveler guesthouse’라고 적인 녹슨 간판이 보인다.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의 게르

바이크에서 내려 철문을 두드리자, 곧 인자한 인상의 주인이 맞이한다. 넓은 부지에 몽골 전통 주택인 게르가 여러 동 있다. 게르 크기에 따라 2인실과 3인실이 있는데, 더 저렴한 3인실을 쓰기로 했다.

마당 한 쪽에는 화장실과 샤워장, 주방이 있다. 게르 안쪽을 들어가니 가운데에 기둥과 테이블이 있고, 둥근 벽을 따라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한 침대 세 개가 놓여있다. 다행히 방에 다른 손님이 없어 혼자 쓸 수 있을 것 같다.

게르 내부

바이크에서 짐을 풀어 옮겨두고 침대에 앉았다.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는 두꺼운 솜으로 된 매트리스에 엉덩이가 닿자 긴장이 풀린다. 몸에 힘이 다 풀려 자리에 앉은 채 가방을 열고 갈아입을 편한 옷을 꺼냈다.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샤워장으로 가서 뜨거운 물로 빨래와 샤워를 한 후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라이더들의 만남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숙소를 찾을 때 봐둔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라면과 과자, 맥주 몇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부터 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주방으로 가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 하나를 먹은 후 밖으로 나와 쉬고 있는데, 철문이 열리더니 바이크 두 대가 들어온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하니, 이탈리아에서부터 몽골까지 바이크 여행을 왔단다. 

숙소 주인은 그들을 내가 있는 게르로 안내했다. 혼자 편히 쉬고 싶었지만 라이더라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쪽을 향해 몽골을 거의 다 통과하고 국경에 다다른 나와, 동쪽을 향해 몽골에 이제 막 들어온 두 사람의 만남. 대화 주제는 당연히 몽골의 길이다.
 
나는 그들에게 ‘몽골은 지피에스(GPS)가 안 터지는 곳이 많아 지도를 사야한다’며 내가 산 지도를 보여줬다. 지도를 보며 고원지대와 숙소가 있는 곳, 아스팔트도로가 깔린 곳과 오프로드인 곳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미 거의 몽골을 벗어나 지도가 필요 없기에 그 지도를 그들에게 선물했다.

그들은 고맙다고 인사한 뒤 마켓에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가 그들의 바이크를 구경했다. 내 바이크처럼 여기저기 상처가 있고, 짐이 잔뜩 실려 있다. 누가 봐도 세상 이곳저곳을 누빈 여행자의 바이크다. 

그런데 이상한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 같은데 ‘욱일기 디자인’이 그려져 있다. 동쪽으로 향한다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디자인이 가장 동쪽을 상징하는 것일까? 욱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들이 마켓에서 돌아올 때까지 게르 안에서 기다렸다.

이탈리아 라이더 친구들의 바이크에 붙어있던 욱일기 디자인 엠블럼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이 같이 마시자며 맥주 한 캔을 건넸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그들의 스티커에 대해 물었다. 그들은 일본까지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여행을 상징하는 스티커를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멋진 디자인이라고 칭찬한 후 내 재킷에 붙여놓은 등자보를 보여주며 혹시 이 디자인(욱일기)을 보며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내 예상대로 그들은 욱일기를 보고 자신들의 스티커를 디자인했다고 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진 등을 보여주며 이 디자인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라고 말하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전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괜찮다고, 이제 그 의미를 알았으니 만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한 후 맥주를 마저 마셨다.

얼마 남지 않은 몽골 여행

그들이 씻으러 간 뒤 자리에 누웠다. 오프로드를 달리며 피곤해진 몸에 알코올까지 들어가니 노곤하다.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썼다.

몽골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떠올렸다. 일행들과 헤어지고 처음 혼자가 돼 들어온 몽골.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만난 끝도 없는 몽골의 대지는 두려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너지는 나를 일으켜주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동안 느낀 감정과 그 감정을 피하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내 모습까지. 내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고, 그 순간들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한계를 넓힌다.

아름다운만큼 힘들었던 몽골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게르로 쌀쌀한 공기가 들어온다. 일기장을 덮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퀴퀴한 매트리스 냄새를 맡으며 잠들었다.

자투리 여행정보 37. 모터사이클의 종류(CRF250L)

러시아 비로비잔에서 찍은 내 바이크 CRF250L

바이크 기종은 여행의 질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물론 어떤 바이크를 선택한다 해도 그에 맞는 여행을 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할 땐 고민거리다. 이번에는 내가 선택한 바이크를 설명하려한다.

내가 선택한 바이크는 혼다의 CRF250L이다. 멀티퍼포즈 모델로 쿼터(250CC) 급이다. 이 바이크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가격. 여행 자금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비싼 바이크를 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중고로 샀다.

두 번째 이유는 성능이다. 멀티퍼포즈 바이크의 특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내 바이크는 온로드와 오프로드 가리지 않고 탈 수 있다.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오프로드 주행을 계획한 내게  가장 적합한 기종이다. 무게도 가벼워 방향을 조정하기 쉽다.

시트 높이가 높아 불편하고, 짐을 잔뜩 싣고 다녔기 때문에 연비가 생각보다 좋지 않고, 배기량이 부족해 답답한 점도 있지만, 다시 여행할 때 선택을 주저하지 않을 만큼 만족도가 높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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