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39. 다카르랠리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9.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

아침, 축제 장소를 향해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 일어났다. 게르 밖으로 나오니 뿌연 안개와 쌀쌀한 공기를 햇볕이 몰아내고 있다. 세안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을기의 골든이글페스티벌에 가기로 한 날이다. 바이크에 있는 짐을 다 내린 후 좌표를 찍고 형님들의 차를 뒤따라 출발했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자 오프로드가 나온다. 짐이 없는 바이크는 가볍게 오프로드를 통과한다. 여행하는 동안 짐 없이 바이크를 탄 적이 거의 없는 데다 짐 없이 오프로드를 달리기는 처음이어서 바이크 성능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다.

한참을 가다보니 바이크를 탄 외국인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저들도 이곳에 여행 와서 골든이글 페스티벌에 가는 길이리라. 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라이딩하며 축제 장소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가의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니 이글페스티벌이 유명한가보다. 내 게르에 함께 있던 스웨덴 친구도 만났다.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

몽골의 독수리 사냥꾼 '베르쿠치'

잠시 후 베르쿠치(독수리 사냥꾼)들이 독수리 사냥 시연에 나선다. 그들은 말을 타고 독수리를 이용해 사냥했다. 중앙아시아 타타르족에서 출발했다는 이 사냥 전통은 아직도 서몽골 지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일부에서 이어지고 있다.

독수리는 매처럼 살아있는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죽은 동물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골든 이글이라고 불리는 독수리는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먹는다. 사람을 극도로 경계하는 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베르쿠치는 독수리가 어릴 때부터 길들여 사냥을 한다.

독수리와 함께 찍은 사진

골든 이글의 몸무게는 4~7kg에 육박하는데, 상공을 날다가 날개를 접고 활강하는 무게는 250kg에 달한다고 한다. 작은 동물은 한 번에 사냥할 수 있고, 덩치가 큰 산양 등은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사냥하는 등 사냥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베르쿠치는 이 골든 이글의 습성을 이용할줄 안다. 말을 타고 어깨나 팔에 독수리를 얹고 사냥에 나서 얻은 동물들로 중앙아시아의 추운 겨울을 이겨냈으리라. 칭기즈칸이 대륙을 정복할 때 이 부족이 최전방에서 정찰병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베르쿠치들의 행진

이들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잠시 포즈를 취한 후 정렬해 주변을 행진했다. 우산만큼의 그늘을 만들 정도로 독수리는 굉장히 크다. 그 독수리를 팔목에 얹고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마치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행진을 한 차례 끝내고 잠시 자리를 정리하더니 토끼 가죽 등을 이용해 독수리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명이 멀리서 줄을 묶은 토끼 가죽을 흔들며 ‘휘익’ 휘파람 소리를 내면, 한쪽에서 말을 탄 이의 팔뚝에 앉아있던 독수리가 날아올라 하늘을 몇 바퀴 빙빙 돈 후 순식간에 토끼 가죽을 낚아챈다.

그 속도가 매우 빠른 데다 날개가 커서 바닥에 닿지도 않았는데 모래먼지가 일어날 정도다. 실패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지만 저 정도 속도와 힘이면 사람이라도 위험할 것 같다.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

시연이 끝난 후 근처에서 몽골 전통 악기인 마두금 연주가 이어진다. 마두금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말 머리 모양의 현악기인데, 현 두 개로 구성돼있다. 진짜 말 머리처럼 생겼다.

마두금 연주 동영상 갈무리. 소리가 너무 신기해 사진을 찍지 않고 영상만 남겼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활을 켜서 연주하는데, 몽골 전통 의상을 입고 마두금을 연주하는 이의 모습이 악기 소리와 함께 신비하게 보인다. 

연주뿐 아니라 노래도 부른다. 노래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목으로 ‘우~’ 하며 악기와 같은 소리를 내는데 아주 낮고 떨림이 강하다. 처음 보는 악기와 처음 보는 의상, 처음 듣는 소리에 정신이 반쯤 팔려 있다가 연주가 끝나자 입도 다물지 못하고 박수를 쳤다.

몽골을 더 알고 싶어질 만큼 매혹적인 공연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돌산들이 멀리 보이는 초원에서 연주라 더욱 그렇다.

마상술 겨루기

연주가 끝나고 몇몇 현지인이 다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먼저 말을 타고 동그란 원을 크게 그리며 관광객들을 정리한다.

이어서 그 가운데서 마상술을 겨루는 양가죽 빼앗기를 시작한다. 룰은 간단하다. 원 한가운데 양가죽을 놓고 양쪽 끝에 있는 말 탄 기수가 달려와 가죽을 잡은 후 서로 잡아당겨 빼앗는다. 양가죽을 빼앗기거나 말에서 떨어지면 경기에서 진다.

아주 멀리에서 순식간에 달려와 말 옆구리에 매달려 땅에 있는 양가죽을 잡아챈다. 그리고  다리만으로 말을 잡고 서로 줄다리기 하듯 양가죽을 잡아당긴다.

말을 탄 채 양가죽을 뺏는 마상술 겨루기

다리 움직임으로 말을 조종해 힘을 주었다 풀었다 하는 기술도 선보인다. 저 정도면 말 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심지어 낙마하더라도 양가죽을 놓지 않는 근성을 보여준다. 이런 근성이 과거 몽골이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힘 아닐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높은 수준의 마상술을 당시 다른 나라들이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리라. 고려도 그 중 하나였다. 몽골의 군사력은 순식간에 고려를 덮쳤고, 고려의 권력자 최우는 침략을 피해 도읍을 개성(개경)에서 강화로 옮겨 버텼다. 어릴 때 학교에서 이것을 항쟁이라고 배웠지만 과연 항쟁이라 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도읍 백성들을 내팽겨 두고 섬으로 도망간 부끄러운 역사 아닌가. 

어쨌든, 그 시절 몽골군의 위력은 무시무시했으리라. 몽골에선 열 살 남짓한 아이들도 자유자재로 말을 타고 다닌다. 옆에 있던 외국인 가이드의 말을 귀동냥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말 한 마리를 지정해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자란단다. 

여섯 살 먹은 여자아이도 새끼 독수리를 팔뚝에 올리고 돌아다닌다. 동물을 도구화하고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에게 말과 독수리는 가족이자 공동체이리라. 

독수리와 교감하는 베르쿠치

행사가 정리되자 행진했던 이들이 관광객 사이로 들어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몽골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아저씨가 내 바이크에 관심을 보여 잠시 운전해보게 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운전을 꽤 잘한다. 마상술 덕분인가?

야크

행사가 끝나자 출출하다. 같이 온 형님들과 초원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코펠을 꺼내 라면을 끓여먹고 바이크를 타고 놀았다.

높고 거친 언덕도 가벼워진 내 바이크는 거뜬히 오르내렸다.

그동안 이동에만 집중했고 짐이 많아 바이크 타는 기분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가벼워진 바이크로 높은 언덕을 오르기도 했고, 앞바퀴를 들거나 뒷바퀴 브레이크를 잡고 드리프트를 해 방향 전환도 했다. 정말 재밌다. 다음에 여행을 한다면 사하라사막을 가로지르는 ‘다카르 랠리’를 꼭 경험해봐야겠다.

바이크를 한참 동안 타고 놀다가 주변을 산책했다. 옆으로 조금 걸어가자 작은 강에서 양과 소들이 물을 먹고 있다. 을기에 들어오기 전 고원에서 본 풍경이다. 몽골 소들은 털이 유난히 길다. 그 이야기를 옆에 있던 형님들에게 하니, 그냥 소가 아니라 야크란다.

몽골의 야크

맙소사! 야크인지도 모르고 몽골을 횡단했다니. 아는 것이 많은 만큼 보이는 것도 많아지나 보다. 생각 없이 출발해 마음가는대로 여행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 지역을 미리 공부하고 여행하는 형님들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다음 여행지에 대해서 조금이라고 공부해볼까. 하지만 처음 생각한 내 방식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다음에 한 번 더 이곳을 여행할 때는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야크와 함께 풀을 뜯고 있는 양떼

이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마치 갓난아이 같은 눈으로 세상의 신비한 것을 보고 몸으로 경험하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여행에는 미리 공부하고 지역 특성이나 전통, 역사를 알아본 후 여행할 생각이다.

지금 내가 보는 세상과 그 때 내가 보는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언젠가 꼭 다시 이 길을 따라 할 여행을 그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자투리 여행정보 39. 다카르랠리

다카르 랠리는 ‘Relly of death(죽음의 랠리)’라고 불리는 국제 경주대회다. 많은 이들이 자동차 대회로만 알고 있지만, 모터사이클과 사륜모터사이클, 자동차, 트럭 등으로 나눠 진행한다.

경주 기간은 대략 2주 정도인데, 1994년까지는 파리를 출발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도착하는 코스를 잡아 ‘파리-다카르 랠리’로 불렸으나, 1995년부터는 스페인이나 아프리카를 출발점으로 했다.

그 이후에도 출발지와 경유지, 도착지가 조금씩 바뀌었다. 2008년에는 아프리카 전쟁과 테러 위협으로 개막 하루를 앞두고 대회를 취소했고, 2009년부터는 사하라사막 통과 구간을 코스에서 빼고 남미의 아타카마사막을 포함했다.

다카르 랠리는 프랑스 모험가 티에르 사빈의 ‘실패한 모험’에서 비롯했다. 1970년대 바이크로 사하라사막 횡단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는 극한 상황을 넘나드는 모험의 매력에 빠져 이 랠리를 기획했다.

다카르 랠리의 모토는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오지를 달린다’이다. 하지만 창시자인 티에르 사빈을 비롯해 그동안 6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험하다는 것은 랠리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들처럼 나 역시 내 인생에 목숨을 거는 도전을 할 수 있는 순간을 꿈꾼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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