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51. 타지키스탄 비자와 파미르 퍼밋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1. 파미르고원에 가기 위한 준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키르기스스탄 관광을 마치고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숙소로 들어왔다. 점심으로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더니 많이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배가 부르다.

한국식당인 ‘호반’ 사장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각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사진과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잠시 눈을 붙였다.

30분쯤 지나 미리 맞춰둔 알람 소리에 깼다. 옆 침대에서 잠들어있는 친구를 깨워 그 식당에 갔다. 영업 마감을 앞둔 때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고, 직원들은 정리하느라 바쁘다.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께 인사했더니, 야외 테이블에서 기다리라며 먹고 싶은 음식을 묻는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르지 못하다가 ‘소주’를 얘기하자, 알겠다며 송어회와 매운탕을 먹자고 하신다. 키르기스스탄에 바다는 없지만 물이 맑고 차서 송어가 많단다.

직접 잡아 어장에 풀어놓은 송어

가게 한 쪽 구석에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어장에 송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송어회를 먹을 수 있다니! 기대에 차 기다리는 동안 테이블에는 각종 반찬과 쌈장, 초장, 쌈 채소가 올라온다.

잠시 후 송어회와 매운탕까지 준비되니, 사장님이 소주 몇 병과 소주와 알코올 도수가 맞먹는 14도짜리 키르기스스탄 맥주를 들고 오신다. 가게 스피커에서는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히 틀어준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장님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겠다며 소주를 한 잔씩 따라주셨고, 건배를 한 후 송어회를 초장에 쿡 찍어 소주와 함께 먹는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 하는 이문세의 노래가 들린다. 갑자기 울컥해진다. 옆을 보니 친구도 울먹인다.

송어회. 이 날이 내 여행을 통틀어 가장 잘 먹은 날인 것 같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인천식당’에서 육개장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던 그 기분이다. 게다가 소주와 이문세의 노래까지. 맛에서, 분위기에서 묻어나오는 그리움이 마음을 헝클어 놓는다.

소주 한 잔을 급하게 더 마시고 진정한 후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부터 오랫동안 노력한 한국인이자,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난 고려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 큰형님 같기도 하고, 삼촌 같기도, 아버지 같기도 한 사장님과 술을 마시다보니 취기가 제법 올라온다.

보드카만 먹고 돌아다녀서 소주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함께 마시는 맥주도 14도짜리여서 소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장님께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매운탕 국물을 마신 것까지가 기억의 전부다. 눈을 뜨니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내 자리에서 자고 있다.

끙끙 앓으면서 일어나보니 친구도 술을 많이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단다. 대충 씻고 해장을 하러 다시 그 식당으로 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죽을 것 같으면 그냥 죽어야지’

순댓국으로 해장을 하고 사장님께 옷을 파는 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시장으로 향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 여름에 출발했기 때문에 얇은 다운패딩 정도밖에 챙기지 않았기에 시베리아와 파미르고원의 혹한을 견딜 옷이 필요하다.

시장에 가기 전, 근처 백화점을 먼저 구경했다. 유명한 브랜드의 옷을 파는 매장과 그 브랜드의 가품을 파는 매장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친구는 이미 러시아에서 솜으로 만든 두꺼운 옷을 한 벌 샀기 때문에 신발만 보러 다닌다. 백화점을 둘러보고 간 시장은 러시아나 몽골에서 갔던 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파는 물건부터 분위기까지 닮았다.

싸고 질 좋은 군복을 위주로 알아보다가 내피와 외피로 분리돼있는 ‘XXL’ 사이즈의 큰 바람막이와 스키복 바지를 샀다. 안에 옷을 잔뜩 껴입기 위해서다. 눈과 입만 뚫려있는 복면도 샀다. 바이크 핸들을 감싸는 토시도 찾아봤지만, 결국 구하지 못했다. 직접 만들기 위해 비닐과 수건 등을 샀다. 없으면 직접 만들 수밖에.

사냥용품 가게에서 산 복면.
겨울 옷.

사고가 나거나 위급한 상황에 손이 바이크에 걸릴 위험이 있어 토시를 쓰는 것을 별로 추천하진 않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대로 파미르에 들어간다면 사고보다 동상이 먼저 걸릴 판이다. 토시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숙소로 돌아와 새로 산 옷을 입어본다. 학교 선후배들이 돈을 모아 보내준 덕에 겨울옷을 사 입을 수 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더 따뜻해진다.

옷을 벗어서 정리한 후 토시를 만들기 위해 바이크가 주차돼있는 앞마당으로 나갔다. 사고가 나거나 위급한 상황에 손이 껴서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토시 입구를 넉넉하게 만들어야한다.

토시 재료

먼저 비닐 재질의 쇼핑백을 손이 들어가고도 넉넉한 크기로 잘라 핸들에 감싼 후 테이프로 대충 고정한다. 이어서 바이크에 올라 자세를 잡아보고 적당한 각도를 잡아 다시 고정한다.

그 다음에는 수건을 안쪽에 꼼꼼히 넣은 후 또 테이프로 고정하고, 겉에는 일회용 롤 비닐을 칭칭 감아 바람이 통하지 않게 한 다음 또 테이프를 칭칭 감는다. 검정색 박스 테이프 세 통이나 들었다. 

쇼핑백과 수건으로토시를 만든 후 겉에 롤 비닐을 칭칭 감아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만든다.
비닐은 감은 후 테이프로 마무리 해 완성한 모습.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만들고 나니 뿌듯하다. 옷을 새로 샀고 토시도 만들었으니 이제 파미르의 겨울을 맞이할 준비는 거의 다 했다. 사실 준비하는 게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도 죽을 것 같으면 그냥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파미르를 향한 첫 걸음

다음날, 일어나니 늦은 아침이다. 이제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친구와 목적지가 다르다. 나는 파미르에 들어가기 위해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타지키스탄 대사관에 가서 비자와 파미르 퍼밋(pamir permit, GBAO permit이라고도 한다)을 받아야한다. 친구는 도시 구경을 조금 더 한단다.

오후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 먼저 출발했다. 40분쯤 지나니 타지키스탄 대사관이다. 대사관을 찾지 못해 동네를 계속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타지키스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행비자가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파미르고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파미르 퍼밋’이 필요하다. 비자 발급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쉽게 끝난다.

대사관 직원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여권을 보여주며 비자와 파미르 퍼밋을 받으러 왔다고 말하니, 영어로 된 서류를 내민다. 국적과 이름 등 기본적 내용을 적어 직원에게 주니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여행비자와 파미르 퍼밋 발급 비용은 75달러.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생각하면 정말 큰돈이지만, 가장 꿈꿔온 파미르를 향한 대가이기에 아깝지 않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있는 타지키스탄 대사관. 대사관을 나오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자를 발급받아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아주 좋다.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햇빛도 강렬하다.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니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드디어 그렇게 꿈꾼 파미르로 들어갈 수 있다.

며칠 더 쉬면서 정리하면, 드디어 파미르를 향한다. 여기까지 함께 온 친구는 파미르가 위험하기 때문에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 러시아로 나간단다.

친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지만, 파미르를 향한 꿈을 포기할 수는 없다. 함께 할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을 더욱 알차게 보낼 수밖에.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친구와 만나기로 한 한국식당 ‘호반’으로 출발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51. 타지키스탄 비자와 파미르 퍼밋

한국인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를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지만, 타지키스탄은 예외다. 비자를 발급 받아야하고 파미르고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파미르 퍼밋을 받아야한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타지키스탄 대사관에서 발급받을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신청해도 받을 수 있다. 인터넷 신청 절차도 그리 어렵지 않고 빠르게 발급된다.

하지만 나는 타지키스탄에 언제 들어갈지 일정이 확실하지 않았기에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받기로 하고 여행을 떠났다. 현지 비자 발급도 별로 어려운 점은 없다.

비슈케크에서 구글 지도에 ‘Tajikistan embassy’를 검색해 현지 대사관을 찾아가 여권을 내밀면, 직원이 알아서 처리 해준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사관과 국경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할 줄 알기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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