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35. 모터사이클의 종류(5) 네이키드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5. 고비사막과 새옹지마

기름이 바닥날까 조마조마

먹이를 찾아 사막을 돌아다니는 양떼

고비사막의 메마른 땅에 자라난 풀은 거칠고 뾰족하지만 동물들 역시 그에 맞게 진화했는지 턱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잘도 뜯어 먹는다.

여전히 오프로드는 계속되고, 기름은 게이지의 반을 조금 넘은 정도만 남았다. 100km 안에서 주유소를 찾아야한다. 나와 반대편에서 오는 차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조금씩 희망이 생겼다. 

‘몽골의 거친 오프로드를 건너기엔 무리지 않을까’ 싶은 낡고 오래된 차 몇 대가 스쳐 지나간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있겠구나. 희망을 품고 가고 있는데 저 멀리 소형 버스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나와 앉아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바이크를 세웠다. 50~60대로 보이는 사람 여러 명이 트럭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게 따뜻한 차를 준 고마운 사람들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대화하기 힘들다. 러시아에 처음 왔을 때처럼 눈치로 그들이 내게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듣고, 나는 한국 사람이고 바이크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 등을 거쳐 여기에 왔으며, 앞으로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갈 것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말을 붙여 보려했고, 나는 주유소가 앞에 있냐고 물었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차를 다 마신 후 감사 인사를 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기름은 점점 더 줄어든다. 지나가는 차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 도시나 건물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기름이 다 떨어지면 여기에 서서 지나다니는 차를 붙잡고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또 한 번 넘어졌다. 속도가 느린 상태에서 중심을 잃었다. 바이크만 넘어지고 나는 다행히 발을 딛고 빠져나왔다. 하지만 바이크가 넘어지는 바람에 기름이 줄줄 샌다. 얼마 없는데 이렇게 흘리다니. 경고등이 들어오기 직전이다. 속도를 늦추고 연비주행을 하며 계속 앞으로 나갔다.

질 나쁜 휘발유도 고마운 마음으로

잠시 후, 마을이 보인다. 전봇대도 있고 건물도 스무 채 정도 있다. 연료 경고등은 들어온 지 오래, 마음이 다급해서인지 눈앞의 마을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름이 언제 떨어질지, 마을에 주유소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함을 느끼며 천천히 마을로 다가갔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유소가 있냐고 몸으로 열심히 설명하니 다행히  있단다. 그가 알려준 방향대로 조금 더 가니 허름한 주유소가 보인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바이크 시동이 푸드득 하고 꺼져 버린다. 정말 위험했다. 만약 10~20km 전에 시동이 꺼졌으면, 앞에 마을이 있는지도 모르고 초원인지 사막인지 모를 땅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도움을 청하며 하루를 보냈을지 모른다.

바이크에서 내려 주유소까지 천천히 끌고 갔다. 몽골 한복판에 있는 주유소라서 그런지 질이 좋지 않은 휘발유밖에 없다. 옥탄가가 80밖에 안 된다. 한국 주유소의 옥탄가는 보통 95 정도다. 옥탄가 80은 불순물이 많이 섞여있는, 순수하지 않은 휘발유라는 것이다. 바이크 엔진 고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기름을 넣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옥탄가 80의 휘발유도 고마운 마음으로 예비연료통까지 가득 채웠다. 

기름을 넣고 나니 비로소 주변이 보인다. 나무로 된 낡은 집과 ‘게르’가 섞여있는 작은 마을. 이곳에는 다툼도 없을 것 같다.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주유소 근처에 작은 마켓도 있다. 들어가 보니 먼지가 잔뜩 쌓여있긴 하지만 과자도 있고 음료도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원통에 들어있는 감자 칩이다. 여기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감자 칩 한 통과 알로에 주스, 물을 사서 바이크 짐에서 떨어지지 않게 묶고 마을을 떠났다.

이상한 희열과 해방감

길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빨래판길, 자갈길, 모랫길.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나왔지만 이제 익숙해졌는지 거의 넘어지지 않는다.

넓게 펼쳐진 사막지역의 모래길 (엑션캠 동영상 갈무리)

그런데 모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넘어질 것 같은 순간에 땅을 딛을 때마다, 핸들을 급하게 틀어야하는 상황에 앞바퀴에서 흙이 튈 때마다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머지않아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아니라 흙과 섞인 모래인 탓에 온몸이 흙투성이다. 이상한 희열을 느낀다. 처음 러시아에서 비를 만나 홀딱 젖었을 때 느낀 해방감이다. 포기하고 버려야 느낄 수 있는 감정. 입안에도 흙먼지 가루가 씹히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외벽만 남아있는 건물 (엑션캠 동영상 갈무리)

조금 더 가니 허물어진 건물 외벽이 보인다.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몽골에서는 그늘이 보일 때마다 쉬어야한다. 초원으로 들어가 건물 옆에 바이크를 세우고 감자 칩과 알로에주스로 점심을 대신했다.

과자와 음료수로 대신한 점심

옷에 묻은 흙을 털고 그 손으로 감자 칩을 집어 먹으니 흙 맛이 난다. 재미있을 것도 없는데, 혼자 웃겨서 실실 웃으며 과자를 먹고 다시 출발했다.

얼마 후, 갑자기 아스콘으로 잘 포장된 길이 나온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새로 포장하고 있는 길인 것인지, 아스팔트가 깨지거나 금이 간 곳이 없고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오프로드에 들어선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아스팔트가 나오다니, 매우 반갑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며 아스팔트 위를 트램펄린 위처럼 방방 뛰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달궈진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맞추고 드러누웠다.

오랜만에 만난 포장도로나 매우 반가웠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도로가 나왔으니 도시도 머지않아 나올 것 같다. 스로틀을 힘차게 감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느린 속도로 바퀴 바로 앞길만 보고 오다가 뻥 뚫린 도로에서 속도를 내니 기분이 정말 좋다.

여유가 생겨 주위를 둘러보니, 풍경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넓은 초원에 마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도로 한복판에 멈춰선 바이크 한 대가 보인다. 여행자는 아니고, 현지인이다. 나를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드는 그를 괜한 두려움에 지나쳐갔다. 하지만 영 마음에 걸려 그에게 돌아갔다.

역시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기름이 떨어진 것. 기름이 있으면 달라고 부탁한다. 돈이 얼마 남지 않은 것과 방금까지 기름이 떨어져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도와주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같은 대지 한복판에 그를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 기름을 나눠 주기로 했다.

기름이 떨어져 나를 부른 현지인

망설였던 게 내심 미안해 그의 바이크 연료통이 다 찰 때까지 예비 기름통 있는 기름을 몽땅 넣어줬다. 그는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아마 고맙다는 말일 것이다. 

그를 뒤로하고 계속 달렸다. 잠시 후 마을이 나왔다. 이정표에 적힌 영문 표지판을 보니 마을 이름은 ‘알타이’다. 필요한 것은 다 있을 것 같다. 4~5층짜리 건물도 보이는데, 몽골 내륙에서 이 정도면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다.

주문한 식사. 굉장히 맛있었다.

 

숙소도 있고 식당도 있다. 먼저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고 불고기와 비슷한 음식과 밥을 주문했는데, 맛이 괜찮다. 고기와 감자, 당근 등을 볶고 그 위에 얇은 밀가루 반죽을 덮어 철판에 나왔는데, 한국에서 파는 불고기 맛과 상당히 비슷하다. 몽골은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식당에서 밥을먹고 나왔는데, 내 바이크 옆으로 소가 지나간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근처에 있는 숙소를 잡았다. 들어가자마자 이불에 눕고 싶었지만 완벽한 휴식을 위해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로 오랫동안 샤워하고 빨래를 했다.

욕실에서 나와 창가에 빨래를 널고 침대 위에 누웠다. 폭신하고 포근하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이게 행복이구나. 다른 것을 할 틈도 없이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자투리 여행정보 35. 모터사이클의 종류(5) 네이키드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또는 다른 세계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모터사이클 기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기종을 소개한다. 물론 선택은 여행자 본인의 몫이다.

세계 여행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보고 내린 결론은, 모터사이클 기종은 ‘별로 상관없다’이다.

두카티 몬스터 1200 (사진출처ㆍDucati korea)

네이키드 바이크는 바이크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 명칭에서 나타나듯 차체를 감싸는 카울이 없어 엔진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탈리아 두카티의 몬스터나 스크램블러, 영국 트라이엄프의 본네빌 등이 대표적이다.

엔진 등 내부 구조가 한눈에 보이기에 정비가 비교적 쉽다. 레플리카 바이크보다 핸들이 조금 더 높고 시트와 가까워, 타기 더 편안하다. 차체도 비교적 높아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하다.

특별한 단점이 있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무난하다. 험한 오프로드가 아니라면, 유라시아 대륙 여행에 추천할만하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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