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53. 중앙아시아 경찰의 ‘삥 뜯기’ 대처법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3.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축구공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자연에서 캠핑
무슬림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산을 내려왔지만 밤이 돼서인지 길은 여전히 얼어있다. 지도를 보니 바로 근처에 ‘톡토굴 호수’가 있어 그쪽으로 이동한 후 도로를 벗어나 수풀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사실 어두워서 적당한 곳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너무 지쳐있는 상태라 대충 자리를 잡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텐트 안에 들어와 무슬림 친구들이 준 빵을 먹는다. 잇자국이 선명히 남아있고 군데군데 먼지가 묻어있는 차갑고 딱딱한 빵, 하지만 그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인지 매우 맛있다.
빵을 다 먹고 나서 그들이 준 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가방에서 옷을 꺼내 껴입었다. 온열기구는 커녕 흔한 핫팩 하나 없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도 침낭을 더럽힐 수는 없다. 신발을 벗은 후 머리맡에 두고 몽골에서 한국인 형님들에게 선물 받은 낙타털 양말을 두 겹으로 겹쳐 신었다.
침낭 안에 들어와 있으니 얼굴이 시린 것 빼고는 참을 만하다. 두건을 써봤지만 숨쉬기 힘들 정도로 답답해 모자만 뒤집어썼다.
너무 추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눈을 뜨니 어스름한 새벽이다. 잠은 깼지만 너무 추워서 침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더 이상 누워있지 못하고 침낭 속에 들어간 채로 매트 위에 앉아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몽사몽하며 눈을 감고 있으니 아주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 눈을 뜨니 해가 떠올라 텐트를 덥히고 있다. 이렇게 또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는 설렘으로 밖으로 나가니 장관이 펼쳐져있다.
텐트 주변으로 야생인지 방목인지 모를 소와 양, 말, 칠면조가 돌아다닌다. 수풀 너머로 호수와 설산이 보인다.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을 보고 그것을 인지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 없다. 침낭을 덮은 채 텐트 문을 열고 저 멀리 산과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칠면조와 소들 하나하나에 눈을 맞춘다.
햇살이 따뜻하다. 서리가 낀 텐트를 털어내고 뒤집어 말리며 짐을 정리한다. 머지않아 호수를 떠났다. 오늘은 ‘오시’에 도착하길 바라며.
경찰이 아니라 산적
산이 또 나오지는 않는다. 위험은 덜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바로 경찰이다. 비슈케크와 오시를 오가는 도로가 키르기스스탄의 중심 도로여서인지, 가는 길 곳곳에 경찰이 진을 치고 있다. 바이크에 짐을 잔뜩 싣고 가는, 누가 봐도 여행자인 나는 계속 검문에 걸린다.
검문에 걸리면 경찰은 여권을 요구하고 여권을 주면 자기 안주머니에 넣고 벌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항의해도 모르쇠다. 처음에는 200달러를 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100달러만 내란다. 남은 돈을 생각하면 여기서 여행을 그만두나 그 돈을 주나 별 차이가 없다.
맘대로 하라며 배 째라는 식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결국 1000솜(som)만 내란다. 한화로 약 1만6000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그 돈을 내고 여권을 돌려받았다.
그 후로도 서너 번은 더 검문에 걸렸는데, 레퍼토리가 똑같다. 과속이라고도 하고 차선을 넘었다고도 한다. 앞뒤로 다른 차와 함께 갔는데도 나만 콕 찍어 벌금을 물린다.
화가 너무 나서 러시아에서 루슬란에게 배운 러시아 욕과 한국 욕, 손가락 욕까지 다 하며 거칠게 항의했지만, 내 팔을 꽉 잡고 제압하는 경찰들에게 더 항의해봐야 소용이 없다.
결국 계속 1000솜씩 뜯기며 오시로 향한다. 키르기스스탄 경찰 한 달 임금이 한화로 20만~30만 원 정도라서 이런 식으로 돈을 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정말 더럽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아니라 산길에서 여행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산적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마저 여행이고 이 나라 문화’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수밖에. 화를 내봐야 나만 더 손해다.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계속 길을 달린다. 드디어 표지판에 ‘오시’라는 글씨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오시에서 영웅이 되다
오시의 경계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제 도시 외곽에 들어왔을 뿐이다. 중심부까지는 아직 조금 더 가야 한다. 도시에 들어와서인지 도로 상태가 양호해진다. 그런데 저 앞에 사람들이 도로에 나와 길을 막고 있다. 차와 사람들이 모두 멈춰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멈춰있는 차 사이를 헤집고 앞으로 가보니 차량 한 대가 불타고 있다. 폭발을 우려해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차나 가로수 뒤쪽에서 불타고 있다는 차량을 보고 있을 뿐이다.
상황을 보니 지금 앞으로 가기는 글러 보여 바이크에서 내렸다. 혹시 모를 폭발 때문에 헬멧을 벗지 않고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차에서 소화기를 꺼내와 주변에서 서성이는 게 보인다.
그리고 1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서럽게 울며 불타는 차로 뛰어들려하고 있다. 그 아이를 주변 어른들이 붙잡고 말리고 있다.
순간, 차 안에 아이의 부모나 다른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바이크 장갑을 낀 후 헬멧 쉴드를 내리고 앞 사람 손에 들린 소화기를 빼앗다시피 낚아채 차로 달려갔다.
겁나고 무서웠지만 사람은 살려야 하니까. 게다가 헬멧에다 바이크 슈트까지 입고 있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달려가 차 안을 살폈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없다. 그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이렇게 달려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뭐해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기 시작했다. 무섭긴 했지만 ‘설마 폭발이야 하겠어’ 하는 생각이었다.
소화기가 고장 났나 싶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분말가루는 약했지만 한 곳에 집중해 뿌리니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든다.
그러자 숨죽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창피해서 도망가고 싶은데 그렇다고 불을 끄다말고 갈 수도 없다.
잠시 후 소방차가 왔다. 소방관들에게 맡기고 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바이크까지 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격려해준다.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시동을 걸어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한순간에 키르기스스탄 영웅이 된 기분이다.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유롭게 도시에 들어가 미리 검색해둔 ‘TES 호스텔’을 찾았다. 가격이 저렴하고 아침식사도 제공되는 깔끔한 숙소다. 이곳에서 파미르를 향한 준비를 마칠 예정이다.
짐을 풀고 숙소에서 나와 먹을 것도 살 겸 주변을 산책하다 페트병을 차고 노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웃음 가득한 얼굴로 축구공이 아닌 페트병으로 축구를 하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그동안 나는 내가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축구공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잊고 살았구나.
축구공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처럼 모든 걸 갖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어른이 될수록 가진 게 많아지고 가져야하는 것은 더 많아진다. 내가 가진 많은 것을 보지 않고, 갖지 못한 작은 것에 목을 매고 살아간다.
축구공을 가지면 그 다음에는 야구공, 그 다음에는 골프공이 필요할 것이다. 그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어렴풋이 느낀다.
이름조차 몰랐던 나라와 도시에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자투리 여행정보 53. 중앙아시아 경찰의 ‘삥 뜯기’ 대처법
만약 중앙아시아를 여행한다면 경찰의 이른바 ‘삥 뜯기’를 조심해야한다. 이를 대비해 1000원짜리 지폐를 챙겨갈 것을 권한다.
경찰은 어떤 이유를 대면서라도 돈을 요구한다. 통행료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당당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되물어도 별 설명이 없다.
이럴 때 해결방법은 한화를 주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한화의 가치를 잘 모른다. 그냥 ‘이게 미국 달러로 10달러쯤 된다, 키르기스스탄 돈이 하나도 없다. 내가 가진 것은 한국 돈 뿐이다’라며 주기 싫은 척 연기를 하다가 2000원쯤 주면 속아 넘어간다.
나는 이를 준비하지 못해 지갑에 있던 1000원짜리 몇 장만 겨우 써먹었다. 준비해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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