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56. 겨울 캠핑에서 살아남기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6. 타지키스탄을 향한 다섯 번의 도전

눈밭에서 캠핑

탈딕패스를 지나 산을 마저 내려갔다. 조금 더 가니 국경 마을 사리타쉬가 나온다. 휴게소 정도 크기의 작은 마을.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을 정도의 규모다.

초코바 등 식량이 충분하고 물과 기름도 여유 있다. 탈딕패스를 넘어와서인지 용기백배다. ‘조금 더 가다가 텐트 치지 뭐’ 하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르지 않고 바로 타지키스탄 국경을 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온통 하얀 눈밭 세상이 펼쳐진다. 오르막길은 아니지만 산보다 눈이 더 많이 쌓여있어서 운전이 어렵다.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다보니 어느덧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눈이 쌓인 길에서 계속 넘어진다.

해가 지면서 탈딕패스를 넘으며 생긴 용기가 사라진다. 날씨가 추워져서인지 핸드폰도 켜지지 않는다. 더 이상 앞으로 가기에는 무리다. 그렇다고 마을까지 돌아가기도 여의치 않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텐트를 친다.

해발 몇 미터쯤 될까? 탈딕패스보다는 낮겠지만 숨이 차는 것을 보니 백두산 정상 정도는 되지 않을까?

눈 바닥에 텐트를 치고 배낭에 있는 옷과 물건들을 꺼내 바닥에 깔고 침낭 안에 들어갔다. 많이 피곤했는지 금방 노곤하다. 꿈쩍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늘어지는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느껴진다. 일어날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일어나지 않으면 자다가 입이 돌아갈지도 몰라, 온 힘을 다해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깐 물건들을 한 데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았다. 자는 것도 아니고 자지 않는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몇 시간이 흘렀다.

몸이 너무 피곤해 잠드는 와중에도 추운 것을 보니 몇 년 전에 산 싸구려 텐트는 방한 기능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나 보다. 너무 추운데 너무 힘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잠들었다가 목이 아파서 깨고 추워서 깨다보니 시간이 흘러 밖이 밝아온다. 차라리 뒤로 돌아가 마을에서 숙소를 잡고 쉬는 게 낫겠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다시 밖으로 나와 짐을 챙긴 후 마을을 향해 바이크를 몰았다.

사리타쉬의 숙소

피곤하고 잠이 덜 깬 상태인 데다 밤새 추위에 떨었더니 이곳저곳이 아프다. 한 번 넘어지자 충격이 전날보다 몇 배는 더 심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더 신경을 집중한 끝에 정오가 다 돼서야 사리타쉬에 도착했다. 마을 근처에 있는 군인 초소(화물차 등을 검사하는 곳으로 보인다)에 들어가 숙소 위치를 물어 겨우 방을 잡았다.

사리타쉬의 숙소

지금까지 여행하며 묵었던 곳 중 가장 낡은 느낌이다.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물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두꺼운 이불과 작은 전기스토브가 있다. 최고 온도로 설정해도 미지근한 열만 뿜어내는 스토브를 곁에 두고 뜨거운 물을 부탁해 라면 하나와 초코바를 먹은 후 침낭과 숙소 이불을 함께 덮고 잠들었다.

몇 시간 동안 기절한 듯 잠을 잤다. 고작 하루 캠핑했을 뿐인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탈딕패스를 넘어오는 동안에 계속 넘어졌고 국경에 가는 길에서도 넘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많이 회복됐다. 다시 국경을 넘는 도전을 할 만큼 말이다. 숙소에서 초코바 몇 개를 더 산 후 국경을 향해 다시 출발한다.

역시 만만하지 않다. 특히, 쭉 뻗은 평지를 지나 나타난 언덕에서 더 이상 올라가질 못한다. 스노우 체인도 소용이 없다. 해가 질 때까지 도전하다가 결국 또 언덕을 넘지 못하고 마을로 돌아간다.

해가 질 때 까지 언덕을 넘기 위해 도전하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

캠핑을 할까 고민했지만, 감기라도 걸려 시간을 허비했다가는 진짜 파미르의 겨울을 만날 것 같아 몸을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몸에 물이 닿지 않은 지 6일째

그렇게 도전하고 마을로 돌아가길 세 번 반복하고 네 번째 도전하는 날. 바이크도 나도 만신창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정말 큰 일 날 것 같다. 내 체력이, 바이크가 버텨줄 수 있을 때 승부를 걸어야한다.

마을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출발한다. 캠핑하면서 하루에 100m씩이라도 앞으로 가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걸어가는 속도만큼 느리게 앞으로 나간다. 수도 없이 넘어지고 바이크를 일으켜 세워 또 앞으로 나간다. 바이크 뒤에 묶어둔 생수가 꽁꽁 얼 정도의 날씨. 챙겨온 초코바와 물 대신 지천에 쌓인 눈을 파먹으며 앞으로 나간다.

바이크 뒤에 묶어 놓은 물이 얼어 붙을 정도의 날씨다.

하지만 결국 언덕을 넘지 못하고 밤을 맞는다. 네 번째 도전이 좌절된 밤. 몇 시간만 지나면 몸에 물이 닿지 않은 지 6일 째가 된다.

이 도전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탈딕패스를 겨우 지나왔듯 여기를 겨우 지나가면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될 텐데. 그냥 도망가고 싶다. 해가 뜨는 낮에는 그나마 괜찮지만 어두운 밤에는 세상 모든 것이 두렵다. 내리는 눈이 두렵고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두렵다.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 예를 들면 추위를 잊게 해주는 보일러나 히터, 깨끗하고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시설이 여기엔 없다. 그게 굉장히 불편하고 위험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중간에 돌아 나오지 못하는 이상한 오기. 그게 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살면서 처음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이 여행에서 한다. 그만큼 겁이 난다. 그야말로 엄청난 자연. 그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작고 무기력한 존재다.

차라리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으면 좋겠다. 사고가 난다든가 해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지치고 무서워 침낭 안에서 잔뜩 웅크린다. 밖에서 부는 거센 바람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고맙게도 심장이 뛰는 소리나 이명 같은 내 안에 소리에 집중하며 밤을 보낸다.

다섯 번째 도전

다음날 아침, 날씨가 좋다. 쨍쨍한 해와 살랑이며 부는 바람이 이전보다 훨씬 따뜻하다. 오늘 이곳을 넘지 못하면 다신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을 직감한다. 짐을 빠르게 정리하고 바이크에 올랐다. 신기하게도 전날 느낀 두려움은 강하게 비추는 햇살에 모두 녹아 없어진 느낌이다.

타지키스탄을 향하는 길

하늘에 떠 있는 해가 매우 고맙다. 해가 이렇게 고마웠던 적이 있었나? 덕분에 용기를 얻어 ‘쫄지 마. 겁먹지 마’ 하며 눈길을 달린다.

눈길 표면이 조금 녹아서인지 바퀴에 감은 체인이 제 역할을 한다. 넘어질 때도 훨씬 충격이 덜한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오늘 타지키스탄 국경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키르기스스탄 출국 보더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앞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허허벌판에 있는 건물이라면 당연히 국경이다. 두 번 도전해 탈딕패스를 넘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도전, 몸에 물이 닿지 않은 지 6일 만에 드디어 국경에 닿았다.

차오르는 눈물과 콧물을 ‘흡’ 들이마시고 출국사무실로 향한다.

자투리 여행정보 56. 겨울 캠핑에서 살아남기

한국에서 하는 겨울 캠핑은 충분한 장비를 준비할 수 있고, 그 특유의 낭만이 있다. 그러나 해외여행 중 만난 오지, 낯선 오지에서 캠핑할 때는 철저한 대비가 없으면 매우 위험하다.

특히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몽골에서 산 은박 돗자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쳤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와 몽골에 들어가기도 전에 구멍이 난 에어매트를 습기를 막는 용도로 가장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산 매트를 깔았다. 그 위에 입을 수 있는 만큼 입고 남은 옷을 깐 후 침낭 안에 들어갔다.

그래도 추웠다. 가져간 침낭이 3만 원 언저리의 저가형이라 추위를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고, 텐트 역시 그늘 막 정도의 수준이라 방한기능은 없다고 봐야할 정도였다.

여행을 준비한다면 캠핑장비에 충분히 투자해야한다. 물론 부피를 고려해야겠지만 튼튼한 텐트와 따뜻한 침낭은 필수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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