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8.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8.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5.1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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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58. 호루그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8.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무르갑’에서 맞은 아침

파미르에서 맞는 아침
파미르에서 맞는 아침

파미르 하이웨이 한복판인 무르갑에서 맞는 아침이다. 풍경이 다른 행성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낮은 건물들이 있고 자동차도 보이는, 언뜻 봐서는 중앙아시아의 작은 마을과 비슷하지만 뒤로 돌아 마을 바깥쪽을 보면 인조물이 아무것도 없는 대자연이다.

‘핵전쟁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화성에 정착해 새 세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다’로 시작할 것 같은 공상과학소설의 한 장면 같다. 오늘은 그 세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계획이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주유소
파미르 하이웨이의 주유소
5L짜리 물통으로 주유한다.
5L짜리 물통으로 주유한다.

숙소에서 나와 바이크에 기름을 넣었다. 주유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큰 탱크에 기름을 싣고 와서 파는 식이다.

5L짜리 통 하나 당 가격을 받는다. 도시에서 기름을 넣을 때보다는 비싸지만 기름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바이크에 기름을 잔뜩 넣고 출발했다.

고장 난 바이크와 현지민의 제안

산 아래보다 오히려 따뜻하다. 바람이 매섭게 불지만 우비를 겉에 입으니 참을 만하다. 눈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이크 체인이 늘어나 톱니바퀴에서 자꾸 빠진다. 공구를 꺼내 조절해봤지만 늘어날 대로 늘어난 체인은 5km도 가지 못하고 빠지길 반복한다.

앞 포크에서 바지와 신발에 튈 정도로 기름이 샌다.
앞 포크에서 바지와 신발에 튈 정도로 기름이 샌다.

게다가 바이크 앞 포크에서는 신발과 바지에 튈 정도로 오일이 새며, 뒤 타이어는 펑크가 났는지 공기압이 심상치 않다. 눈이 잔뜩 쌓인 탈딕패스부터 사르타쉬를 거쳐 국경을 넘고 해발 4655m의 아크바이탈을 넘으며 나는 더 강해졌지만 바이크는 그렇지 않은가보다.

바이크 걱정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바이크에 ‘꼭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속삭이며 천천히 앞으로 이동한다.

더 이상 운행하기 힘든 상황에서 작은 집이 몇 개 있는, 지도에는 이름도 나오지 않는 마을에 도착했다. 포크에서 오일이 새는 건 여기서 해결할 수 없겠지만, 체인을 조절하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모두 불가능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하고 있는데, 집 앞에 나와 있는 아저씨가 식사를 하자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집 안의 모습
집 안의 모습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와 야채 등이 들어간 만두 같은 음식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와 야채 등이 들어간 만두 같은 음식

바람을 막기 위해서인지 아주 작은 창문만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부인과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차와 빵, 만두와 비슷한 음식을 내준다. 배가 고팠던 터라 인사를 하고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바이크를 고치려면 호루그까지는 가야 한다”고 말한다.

호루그는 무르갑에서 320km 정도 떨어져있는데, 학교가 있을 정도로 파미르 하이웨이에서는 가장 큰 도시다. 하지만 거기까지 바이크가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바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거기까지 갈 수 없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불러 바이크를 차에 싣고 데려다 주겠다며 비용으로 1000소모니(약 12만 원)를 제시했다.

파미르를 통해 타지키스탄을 들어왔던 터라 그만큼의 현금이 없다고 말하자, 호루그에 가면 은행이 있으니 출금하면 된단다. 그의 제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안을 수락하고 아저씨가 차를 섭외하는 동안 집 안에서 기다렸다.

아저씨의 집 앞에서 찍은 노을. 하늘이 불타오르는 듯 빨갛다.
아저씨의 집 앞에서 찍은 노을. 하늘이 불타오르는 듯 빨갛다.

바이크 수리를 위해 ‘호루그’로

자동차 섭외가 쉽지 않았는지 해가 질 무렵에서야 집 마당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온다. 트럭이 올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집 앞에 거칠게 멈춘 차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겔로퍼의 전신겪인 미쯔비씨의 파제로다.

청년들이 타고 온 파제로
청년들이 타고 온 파제로

바이크가 차 안에 들어가지 않아 바퀴를 분리해 겨우 집어넣었다. 차를 끌고 온 두 청년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고 나는 바이크와 함께 뒷자리에 탔다.

뒷자리에는 자루에 든 작은 양 한 마리도 있다. 웬 양이냐고 물으니,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양을 잡아먹으며 야영할 거라고 한다. ‘메에’ 하는 양의 울음이 애처롭다.

파제로를 얻어 타고 한밤중에 파미르를 달린다. 청년들과 함께 타지키스탄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며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느낀다.

파미르의 하늘은 내가 본 그 어떤 하늘보다 아름답다. 몽골 초원에서 본 하늘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는데, 파미르의 밤하늘은 또 다른 감동이다.

내 삶에서 별과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밝게 빛나는 별들이 손 뻗으면 잡힐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와 꼭 함께 보고 싶은 모습이다.

누군가와 함께 차로 여행을 오면 참 좋겠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듣고, 같은 풍경을 보고 생각을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차로 여행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한밤중에 호루그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여기까지 고생하며 데려다준 청년들에게 줄 돈을 뽑기 위해 은행을 찾는 일이다. 나 혼자였다면 한참 걸렸을 일인데, 청년들이 차 창문을 열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곧바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리 검색해둔 ‘파미르 롯지’라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하나의 큰 울타리 안에 여러 독채 건물로 이뤄져있다. 규모가 상당한데, 아마 파미르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이곳에 머물 것 같다.

바이크를 차에서 내려 한 쪽에 놓아두고 청년들과 포옹하며 인사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하나를 두 명이 쓰게 돼있는데,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쓸 수 있다. 미지근한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장에서 샤워와 빨래를 한 후 바로 잠들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자

다음날 늦게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바이크가 몇 대 보인다. 호주, 유럽, 미국 등에서 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이크 수리가 가능한 곳을 물었다. 호주에서 왔다는 여행자가 숙소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자동차 수리점이 있다며 그곳에서 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완전이 고장 난 바이크
완전이 고장 난 바이크

바이크 타이어를 조립하고 그의 말대로 길을 따라 내려가니 수리점이 있다. 일단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고 늘어난 체인을 잘라내야 한다. 앞 포크에서 오일이 새는 문제도 해결하고 싶지만 바이크 전문 수리점이 아니라서 불가능할 것 같다.

기름 범벅인 데다 굳은살이 가득한 손이 인상적인 수리점 직원은 체인 조절 정도야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바이크에서 체인을 빼내 두 칸을 잘라낸 다음 다시 바이크에 장착했다. 타이어도 비눗물로 체크해보니 펑크가 난 것은 아니어서 바람만 조금 더 넣었다.

깔끔하고 좋은 숙소를 잡은 김에 호루그에서 며칠 더 쉬기로 결정했다. 파미르에 들어오면서부터 한 고생이 한 번에 밀려오는 듯해 숙소에서 거의 잠만 잤다. 잠을 자다가 마을로 나가 먹을 것을 사와 먹고 다시 자고를 반복했다.

다행히 호루그는 규모가 제법 있는 도시여서 은행에서 돈을 찾고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오고  마켓에서 술과 담배 등을 사오는 등, 필요한 것을 전부 다 할 수 있다.

숙소 와이파이가 메신저도 불가능할 정도로 느리다는 것만 빼고는 쉬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야기까지 오면서 쌓인 여독을 풀었다.

자투리 여행정보 58. 호루그

호루그는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의 주도다. 인구는 2만5000명에서 3만 명 정도 된다. 평균 해발은 약 2200m이며,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국경과 접해있고 수도인 두샨베와 약 300km 떨어져 있다.

춥고 건조하다. 여러모로 삭막한 환경이지만 양과 염소, 야크 등을 유목하고 보리와 콩 등을 재배한다.

이 도시에 ‘파미르 식물원’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본 식물원이 그것인지는 모르겠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식물원을 보긴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 데다 궁금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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