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6. 몽골의 무채색 고원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6. 몽골의 무채색 고원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8.11.30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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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36 - 모터사이클의 종류(6) 멀티퍼포즈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6. 몽골의 무채색 고원

오늘 내가 만날 세상은?

몇 시간이나 잤는지 모를 만큼 푹 자고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떴다. 아침이다.

이불과 베개의 감촉이 매우 좋다. 작고 불투명한 창으로 들어오는 한줌 햇볕으로도 방이 따뜻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늑함에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겨우 일어나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을 먹고 씻은 후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 우유가 특히 맛있었다.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 우유가 특히 맛있었다.

어제 빨아놓은 옷이 마르지 않았지만 그냥 입었다. 축축한 옷을 가방에 넣으면 냄새가 난다. 차라리 입고 말리는 게 낫다. 다행히 햇볕이 따뜻해 춥지는 않다.

마켓에 들러 물과 초코바, 초코파이를 산 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전혀 다른 공간,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공간에서 맞은 아침이지만 익숙한 듯 척척 잘 해내는 내가 대견하다.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보며 다음 목적지를 확인했다. 알타이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러시아로 이어지는 국경이 나온다. 다음 목적지는 그 국경 앞 도시인 을기다. 거리는 약 600~700km.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운이 좋으면 숙소를 만날 것이고, 운이 나쁘면 어딘가에서 캠핑하겠지.

떠날 채비를 마치고 바이크에 짐을 단단히 묶고 몇 번을 흔들어 확인했다. 오프로드가 워낙 심하다보니 아무리 고정해도 불안하다. 오늘 내가 만날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심호흡을 하고 도시를 벗어났다.

길이 없다, 방향을 찾아야

도시를 벗어나자 역시 도로는 끊긴다. 처음에는 단단한 흙길이었는데, 점차 모래와 자갈, 빨래판길이 번갈아 나오는 몽골의 초원이 펼쳐진다.

그동안 본 초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 멀리 산이 보인다는 것. 설마 저 산을 넘어야하는 건가? 불안함이 엄습한다. 걱정은 닥쳐서 하기로 하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그 불안함은 곧 현실이 됐다.

다행히 경사가 심하지 않지만 절벽을 끼고 있는 길은 꼬불꼬불한 데다 낙석과 나무 등으로 막혀있기 일쑤다. 주먹만 한 돌멩이부터 몸통만 한 바위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잘못 밟아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 조심해서 달리는데, 길이 꼬불꼬불해 운전이 더욱 힘들다.

산을 오르는 완만한 오르막길. 절벽을 따라 길이 있다.
산을 오르는 완만한 오르막길. 절벽을 따라 길이 있다.

잠시 쉬려고 멈추면 절벽 아래 어딘가에서 ‘타닥’ 하고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위라도 떨어질까 불안해 쉬지도 못한다.

한참을 달렸다. 강한 진동에 온몸이 저릿하고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데도 이를 악물고 달리기만 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쉴 곳이 나오겠지, 지금 힘든 만큼 휴식은 더 달콤할 거야,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기대도, 오기도 생긴다.

그렇게 얼마나 더 지났을까. 경사가 조금 심한 코너를 돌고나니 그나마 존재하던 길의 형태가 없어지고 넓은 고원(2000m 이상의 해발고도에 평탄한 지형)이 펼쳐진다.

산봉우리에 둘러쌓인 넓은 고원이 펼쳐졌다. 이 높은곳에도 양과 소떼가 있다.
산봉우리에 둘러쌓인 넓은 고원이 펼쳐졌다. 이 높은곳에도 양과 소떼가 있다.

땅은 흙과 자갈이고, 둥근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날씨는 굉장히 흐려 어두컴컴한데, 산머리는 눈이 쌓여 하얗게 빛난다. 굉장히 춥다. 옷을 짐 가방 깊숙이 넣어둔 터라 그냥 달릴까 했는데 너무 추워 도저히 안 되겠다. 바이크를 세우고 짐을 다 풀어 우비를 꺼내 입었다. 우비가 바람을 막아주자 으슬으슬하던 몸이 조금 진정된다.

하지만 길이 없어 문제다. 방향을 찾아야한다. 그동안 지피에스(GPS)가 작동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나 길을 따라 다녔는데, 이렇게 갑자기 길이 없어지니 막막하다. 두렵기도 하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무작정 서쪽으로 향했다. 가다보면 길이 나오겠지, 길을 잃으면 어때, 목적지가 바뀌면 어때. 애써 두려운 마음을 추슬렀다.

나침반을 보며 서쪽으로만 한참을 달렸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곳에 와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서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정답이었는지, 고원을 둘러싼 산봉우리 사이로 길이 보인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길에 들어서면 또 절벽 때문에 쉴 수 없을 것 같아 고원에서 초코바로 점심을 때웠다.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늘의 어둡고 짙은 구름이 땅위에 있는 색을 전부 빼앗아간 듯, 모든 것이 무채색이다. 두려움에 편히 쉴 수가 없다.

초코바 하나를 얼른 입에 털어 넣고 바이크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엔진소리가 들리자 살 것 같다. 나 이외에 다른 생명체를 느낄 수 없는 곳에서 엔진소리가 마치 다른 생명체의 심장소리처럼 들린다. 친한 친구 같다. 

내리막길에서 찍은 사진.
내리막길에서 찍은 사진.

처음에는 바이크에 이름을 붙이려했다. 선박에 이름을 붙여 OO호라고 부르는 것처럼, 체 게바라가 남미 여행을 할 때 탄 바이크에 ‘포데로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땅한 이름이 아직까지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 멋진 이름을 지어줘야지.

바이크에 올라 ‘다시 가보자’라고 작게 말한 뒤 산봉우리 사이 길로 들어갔다. 잔잔한 내리막길이다. 꼬불꼬불하지만 괜찮다. 올라올 때보다 어렵지 않다. 멈춰서 사진을 찍는 여유도 부린다.

바이크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바이크에 핸드폰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내리막길이 이어지나 싶더니 잠시 후 다시 오르막길이다. 또 넓은 고원이 나온다. 이번에는 길이 옅게나마 보이는 데다 두 번째 고원이어서인지 불안하지 않다.

고원에서 캠핑, 어둠과 두려움

두 번째 고원.
두 번째 고원.

고원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캠핑할 장소를 찾았다. 어느덧 저녁시간이었고, 어두운 날씨를 봤을 때 해가 일찍 저물 것 같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캠핑할만한 곳이 없다. 해는 점점 기울어 라이트가 없으면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인데도 캠핑 장소를 찾지 못했다.

결국 그냥 고원에서 캠핑하기로 마음먹고 텐트를 쳤다. 불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는 추위다. 해발 2500미터. 낮에도 이렇게 추운데 밤에는 얼마나 추울까. 

텐트를 치고 난 후 고도계를 보니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이었다.
텐트를 치고 난 후 고도계를 보니 해발 2500미터가 넘는 곳이었다.

두 번째 걱정거리는 야생동물, 그 중에서도 늑대다. 바이크 라이트에 기대어 텐트를 치면서도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만약에 습격을 당하면,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손바닥 길이의 단도와 이르쿠츠크에서 산 도끼뿐이다.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 떼를 제압할 수 있을까?

텐트를 가릴 곳이 없다보니 사람도 걱정이다. 걱정하면 무엇 하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이 제법 세다. 텐트가 계속 펄럭거린다. 두려움을 떨치려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하지만 노랫소리 때문에 무언가가 텐트로 접근하거나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이내 꺼버렸다.

옷을 더 꺼내 입은 후 가방을 베개 삼아 침낭에 들어가 누웠다. 가슴 위에는 도끼를 쥔 손을 모아 올리고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바람소리가 거셌지만 그 사이사이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발자국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가 텐트를 건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이상한 상상이 겹쳐 더 불안하고 무섭다.

이 넓은 고원에 내 텐트는 너무나 작고 약하다. 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이 순간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약한 존재다.

추워서 손발이 시린데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난다. 겨우 잠이 들었나 했는데, 바람소리에 깨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아지자 밤에는 무서워 열지 못했던 텐트를 거칠게 열었다. 혹시 주변에 무언가 있으면 놀라서 도망치게끔 소리를 지르면서.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지난밤 들은 소리들도 바람소리였는지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지만 밤보다는 훨씬 덜 춥다. 추위에 떨었던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고 초코파이를 먹으며 짐을 쌌다.

전날 열심히 왔으니 오늘 안에는 을기에 도착하겠지. 뜨거운 물로 씻고 안전한 곳에서 잠을 자리라. 짐을 챙겨 고원을 떠났다.

고원을 가로질러 을기로 향했다.
고원을 가로질러 을기로 향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36 - 모터사이클의 종류(6) 멀티퍼포즈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또는 다른 세계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모터사이클 기종이다. 세계여행을 하는 데 모터사이클 기종은 별로 상관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에는 내가 탔던 종류, 멀티퍼포즈를 소개한다.

BMW의 R1200GS(오른 쪽)와 혼다의 아프리카트윈(CRF1000Lㆍ왼쪽) (사진출처ㆍBMW모토라드, 혼다)
BMW의 R1200GS(오른 쪽)와 혼다의 아프리카트윈(CRF1000Lㆍ왼쪽) (사진출처ㆍBMW모토라드, 혼다)

멀티퍼포즈는 이름 그대로 다용도 바이크다.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이크로 BMW 모토라드의 GS시리즈, 혼다의 아프리카트윈이 대표적이다.

오프로드를 중심으로 하는 엔듀로 바이크는 속도보다는 강한 힘을 위주로 세팅돼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편의장비를 거의 설치하지 않는다. 모토크로스나 트라이얼 바이크도 있지만, 도로주행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기종이라 여기선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엔듀로 바이크를 온로드에 조금 더 적합하게 세팅하고 각종 편의기능을 넣어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넘나들게 만든 바이크가 바로 멀티퍼포즈다. 자동차로 치면 SUV로 이해하면 쉽다.

라이딩 실력만 받쳐준다면 어지간한 오프로드는 이 기종으로 충분히 해쳐나갈 수 있다. 내가 타고 간 바이크 역시 아프리카트윈의 동생격인 쿼터(250cc)급 멀티퍼포즈다.

단점도 있다. 온로드와 오프로드 양쪽에 균형을 맞추다보니 ‘기본’만 할뿐 특화돼있는 부분이 없다. 온로드에선 레플리카나 네이키드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오프로드에선 엔듀로보다 부족하다.

시트가 높은 것도 단점이다. 키가 176cm인 내가 바이크를 타고 까치발을 들어야할 정도다. 이게 온로드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프로드에서 땅을 발로 짚을 때는 문제가 된다. 타고 내릴 때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 어떤 길을 만날지 모르는 세계여행을 할 때 가장 적합한 기종이라고 생각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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