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4. 막을 내리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4. 막을 내리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6.28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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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64. 막을 내리다

나르마냐?

“나르마냐(괜찮아)?, 나르마냐?” 나를 깨우는 소리와 함께 해를 가린 누군가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으으…” 얕은 신음을 뱉으며 깨어나 상황을 인지하자 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밀려온다.

엄청난 고통에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꺼어어” 하는 신음과 함께 입만 크게 벌어진다. 숨을 깊게 마시려 해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공기는 겨우 목구멍 언저리에서만 깔딱댄다.

너무 답답해 헬멧이라도 벗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턱 끈을 풀기 위해 오른팔을 들다가 다시 한 번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오른쪽 상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 도움으로 자리에 앉아 앞을 보니 하얀색 도요타 랜드크루져 앞으로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이 보인다. 잠깐 기절했는지 이들이 오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왼손으로 땅을 짚고 겨우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시야는 흐리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다. 사람들 도움으로 재킷을 겨우 벗었다.

보호대가 있어서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오른쪽 쇄골이 부러져 피부를 뚫을 듯 툭 튀어나와 있다. 갈비뼈도 부러진 것 같다. 골반과 팔, 등, 목에서도 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무릎 높이 구덩이가 파여 있다. 풀이 있어서 구덩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빠른 속도라 충격이 컸는지 바이크도 헤드라이트와 사이드미러, 오른쪽 핸들과 너클가드, 윈드 스크린이 전부 부서졌다. 뒤에 묶어둔, 초코바와 라면이 든 봉지와 생수도 저 멀리 땅바닥에 나부러져 있다.

내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잠시만 쉬겠다는 표현을 하고 천천히 바이크 옆에 앉았다.

고통이 심한 와중에도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아픈 내 몸과 땅바닥에 처박혀있는 바이크가 안쓰럽다. 깨워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언제까지 누워있었을지 모른다.

병원으로

남자 한 명이 어디론가 계속 전화하더니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내게 건넨다. 그의 지인인 듯한데, 영어로 내게 안부를 묻더니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병원이 있으니 데려다 주겠단다.

바이크를 그냥 두고 갈 수 없다고 말하자, 일행 중 한 명이 내 바이크를 타고 병원까지 같이 가준단다.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바이크 조작법을 간단하게 알려준 뒤 차에 올라탔다. 오프로드에서 달리는 차가 덜컹 거릴 때마다 숨이 멎는 고통이 밀려온다.

다행히 오래 가지 않아 작은 마을 병원이 나왔다. 포장도로도 없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시골마을에 보건소 같은 병원이다.

병원에 있던 경찰들에게 바이크를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별 일 아니길 바랐건만 엑스레이 결과는 절망적이다. 화질이 별로 좋지 않은 엑스레이로도 오른쪽 갈비뼈 세 개와 쇄골이 부러진 게 선명히 보인다.

카자흐스탄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갈비껴와 쇄골뼈가 부러진 게 선명히 보인다.
카자흐스탄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 갈비뼈와 쇄골뼈가 부러진 게 선명히 보인다.
엑스레이 검사 후 석고붕대를 했다.
엑스레이 검사 후 석고붕대를 했다.

의사가 석고붕대를 해주고 병실을 안내해준다.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하라며 번호를 남기고 떠났다.

병실에 홀로 남은 상황. 퇴근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핸드폰을 쓸 수 있게 유심 카드를 충전하고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형님들에게 연락해 내 상황을 전했다. 형님들은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걱정 말고 병원에서 푹 쉬고 있으라고 했다.

뼈가 다 부러져 누울 수도 없다. 아무도 없는 작은 방 침대에 앉아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행이 끝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며 앉은 채 잠들었다.

알마티행 지옥열차

병원에서 3일을 보냈다. 다행히 카자흐스탄 병원은 병원비가 들지 않는단다. 진통제와 함께 식사도 나오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이 딱 밥과 빵만 나온다.

정말 빵과 밥만 나오는 병원 식사
정말 빵과 밥만 나오는 병원 식사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진통제를 먹어서인지, 시간이 지나 고통에 익숙해져서인지 사고 당일보다는 몸이 조금 나아졌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형님들 도움으로 일단 키르기스스탄으로 갈 방법을 찾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승우 형님이 지인들에게 수소문해 내가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지인, 또 그 지인의 지인을 찾았고 그들에게 내가 알마티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형님들 도움으로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알마티로 가면 형님들이 마중 나와 나를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로 데려가고 아는 병원에서 제대로 진료 받을 수 있게 해준단다. 비쉬케크에서도 치료를 받을 방법이 없더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알마티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형님들이 소개해준 남자 세 명이 병원을 찾아왔다. 병원비를 낼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나를 잘 챙겨준 의사와 간호사에게 현금을 조금 준 후 경찰서에 가서 내 바이크를 찾고 바이크와 함께 기차에 탔다.

기차를 타고 한참 이동하다가 정차하는 동안 쉼켄트에 마중나온 비쉬케크 형님들의 지인을 만났다.
기차를 타고 한참 이동하다가 정차하는 동안 쉼켄트에 마중나온 비쉬케크 형님들의 지인을 만났다.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3일간 기차를 타는 것은 ‘지옥열차가 있다면 이럴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석고붕대를 한 상반신 전체에 땀띠가 나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겨우겨우 버티다 새벽에 알마티에 도착했다.

승환 형님과 유학생 친구 도형이가 현지인 한 명과 함께 마중을 나왔다. 국경을 넘어서까지 마중하러 온 그들이 참 고맙다.

석고붕대를 풀고 땀띠가 잔뜩 난 몸을 간단하게 씻고 형님들이 소개해 준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치료가 힘든 상황. 뼈가 많이 부러졌고 장기까지 다쳤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란다. 한국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진료를 받고 수술해야한단다. 그 말은 곧 이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원 앞 길바닥에 앉아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사실 여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이미 생각했다. 다만 막을 내릴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미루고 싶어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겨우 이제 돌아가야 할 때임을 인정한 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이틀 뒤에 있는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막을 내리다

바이크에 있는 짐을 다 꺼내 가져갈 짐과 버릴 짐을 나눴다. 몸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이라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이 많지 않다.

마음을 다잡고 짐을 정리했다.
마음을 다잡고 짐을 정리했다.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주던 헬멧도, 온 세상에 내 발자국을 남긴 부츠도, 파미르의 추위와 어둠이 주는 두려움 속에서 나를 안아준 침낭도, 스물 셋 해남까지 자전거여행을 할 때부터 내 쉴 곳이었던 텐트도, 내 여행의 동반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바이크도 모두 내려놓아야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내 여행과 꿈, 그리고 아직 정리하지 못한 여행에서 느낀 수많은 감정까지. 한순간의 실수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게 했다.

그렇게 내 여행은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끝)

바이크를두고 오기 전 까지 새긴 글씨. 앞으로 갈 곳을 생각해 남겨둔 빈 공간을 결국 채우지 못했다.
바이크를두고 오기 전 까지 새긴 글씨. 앞으로 갈 곳을 생각해 남겨둔 빈 공간을 결국 채우지 못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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