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⑭ ‘우연’이 준 선물

어둠이 만든 대지의 바다

큰일이다. 어릴 때 혼자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보다 더 큰 두려움이 몸을 휘감는다.

경적을 울리며 소리를 질러봤지만 일행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데, 그 소리가 마치 잔인한 웃음소리 같아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일단 바이크에서 내려 숨을 골랐다. 두려움으로 마음이 무너지면 큰 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쉼 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조금 진정하고 나서 바이크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엔진 소리가 불안정하고 무언가 깨진 듯 ‘카랑카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늪에서 빠져나오느라 너무 무리한 듯하다. 당장은 고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 이 밤은 보내야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갓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구름이 짙게 껴서인지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밝은 보름달 덕분에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부서지고 폐허가 된 헛간 같은 건물 말고는 드넓은 초원뿐이다. 어둠에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어두운 도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어두워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사진출처ㆍpixabay)

마치 바다 한 가운데 있는 것 같다. 멍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아주 작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끝도 보이지 않는 초원을 보고 한참을 앉아있었더니 한기가 느껴온다. 낮에 젖었던 옷이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여기서 캠핑을 하든,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든, 이 밤을 무사히 견뎌야한다.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늪에서 빠져나오느라 종일 힘을 썼더니 끌고 갈 힘 조차 남아있지 않다. 혹여 엔진에 더 큰 무리가 갈까봐, 자전거보다 느린 속도로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원에 들어오기 전 길가에 덩그러니 있던 마켓 같은 건물을 본 기억이 났다. 일단 그곳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한참을 달렸다. 어두운 밤인 데다 바이크까지 말썽이니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있다. 옷이 마르기 시작하며 몸이 덜덜 떨린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바이크를 세웠다.

시동을 끄니 또 다시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 조용하다. 젖은 재킷을 벗고 다운 패딩을 입었다. 안전장비가 없긴 하지만 워낙 느린 속도로 달리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회

다시 출발하려는데 뒤쪽에서 바이크 소리가 들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불빛이 다가온다. 불빛은 조금씩 가까워졌고, 이내 내게 다가왔다. 떨어진 일행이었다.

한참을 달리다가 뒤를 돌아봤는데 내가 없어서 뒤돌아왔단다. 뒤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단다. 

‘탁’ 하고 마음이 풀린다. 정말 다행이다. 일행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내가 놓였던 상황을 설명하고 올 때 봤던 마켓 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내가 앞서고 일행이 뒤에서 따라오기로 했다.

잠시 후 길가에 덩그러니 있는 여관을 찾았다. 트럭운전자들이 쉬어가는 여관인 듯했다. 마당에는 커다란 트럭 몇 대가 서있고, 구석에는 불을 피우고 샤슬릭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바이크를 안전한 주차장으로 넣어두고 2층에 있는 방을 잡았다. 작은 침대 두 개가 딱 붙어있고, 발 디딜 틈 정도만 있는 아주 작은 방이다. 조명도 어두운 주황색 전구뿐이다. 베드버그가 나오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지만, 다른 숙소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엔 주인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데 구석자리에 트럭운전자로 보이는 술에 잔뜩 취한 사람 두 명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음식을 주문하려하니 너무 늦어 되는 음식이 없단다. 아무거나 먹을 것을 달라고 한 뒤  맥주를 벌컥 들이켜니 좀 살 것 같다.

역시, 모든 순간은 여행이다

잠시 후 식당 주인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밖에서 먹고 있던 샤슬릭 꼬치 두개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방금 구운 샤슬릭은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고, 옆에는 얇게 썬 양파도 같이 나왔다.

러시아의 전통음식인 샤슬릭. '꼬치구이'라는 뜻인데 소고기나 양고기, 돼지고기 뿐만 아니라 해산물 등 꼬치에 끼워 구워먹는 음식은 다 샤슬릭이라고 부른다.(사진출처ㆍpixabay)

환상적인 맛이다. 돼지고기 목살인 듯한데 굵은 소금과 자작나무 향이 배어있어서 간도 딱 맞는 데다, 겉은 바삭할 정도로 익었고 안은 육즙이 뚝뚝 흐를 정도로 촉촉하다.

종일 굶었기 때문인지 러시아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다. 양파도 맵지 않고 시원해 함께 먹으니 정말 천국의 맛이다.

양도 아주 넉넉하다. 내 주먹의 절반만한 고기 덩어리가 네 개나 끼워져 있다. 순식간에 맥주 두 병과 샤슬릭 하나를 먹어 치우고는 한 개씩 더 주문했다.

밖에서 굽느라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두 번째로 나온 샤슬릭 역시 매우 맛있다. 우리는 연신 감탄하며 두 번째 샤슬릭을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맥주 다섯 병과 샤슬릭 두 개를 해치웠다. 배도 부르고 취기도 조금 올라왔다. 신기하게도 하루 종일 힘들었고 조금 전까지 만해도 두렵고 무서웠는데,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나니 마냥 행복하다.

이렇게 맛있는 샤슬릭을 먹을 수 있다니! ‘우연’이 준 선물 같다. 오늘 그 늪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바이크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이런 꿈 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일행의 생각도 비슷했다. 우린 이 여행에 흠뻑 빠져있었다. 맥주를 한 병씩 더 주문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걱정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바이크가 고장 난 상황인데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모든 순간이 여행 같다. 아무리 힘들고 두려워도 나는 숨을 쉬고 있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 하는 것도 아주 빨라져 어디에 있어도 두렵거나 어색하지 않다.

일행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것이 신기했는지 구석에서 취해있던 남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트럭운전사라고 했다.

서로 취해서인지 대화가 더 잘 통한다. 그들은 치타에 물건을 배달하는 중에 하룻밤 이곳에 묵으러 왔다고 했다. 우리가 바이크로 여행하고 있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엄지를 치켜세운 뒤 휴대용 술통에서 보드카를 따라 우리에게 한 잔씩 건넸다.

집에서 직접 만든 술인 듯했다. 일반 보드카보다 훨씬 더 쎘다. 한 잔을 입에 훅 털어 넣었더니, 그게 신기했는지 또 한 잔을 따라줬다.

우리에게만 술을 먹이려는 것 같아 같이 먹자며 그들에게 술잔을 돌려줬더니, 그들도 한 잔을  털어 넣고는 다시 잔을 우리에게 건넨다.

그들이 건네준 술잔을 더 비우고 나니 취기가 확 오른다. 종일 힘들어서 술에 더 금방 취하는 듯 했다.  

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들과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 입고 씻으려다가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치타로

다음날 점심이 돼서야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겨우 눈을 떴다. 술을 거하게 마신 데다, 전날 고생해서인지 온 몸이 찌뿌듯하다. 씻기 위해 샤워실로 갔다.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고, 큰 양동이에 찬물만 가득 담겨져 있는 재래식 샤워실이었다.

후딱 씻고 나와 식당에 가서 러시아식 볶음밥인 뽈룹을 주문해 먹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제 젖었던 옷은 거의 다 말랐지만, 문제는 부츠다. 부츠 말고는 샌들 밖에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샌들을 신고 가기로 했다. 빠르게 달리면 위험할 수 있겠지만 워낙 천천히 가기 때문에 그리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일행들에게 연락하니, 루슬란의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그들의 집에 초대돼 파티를 했다고 한다. 우린 각자의 여행을 존중했기에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고는 치타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도시에 가면 고장 난 바이크를 고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이크 상태는 여전했다. ‘카랑카랑’거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속도는 20킬로미터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 바이크에게 미안했다. 치타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지금 상태라면 한참을 가야 할 상황이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짐을 빠르게 동여매고 다시 치타를 향해 길을 서둘렀다.

자투리 여행정보 14.  러시아의 바이크 수리점

여행을 하기 전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바이크 고장이다. 수리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 고장이 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한다. 수리점이 얼마나 있을지, 맞는 부품이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걱정은 더 컸다.

작은 마을이라도 자동차 수리점은 찾기 쉬운데, 바이크 수리점 찾기는 어렵다. 규모가 큰 도시에서나 간혹 보이는데, 기종에 맞는 부품을 찾기는 어렵다. 

바이크 여행을 할 땐 고장 날 수 있는 부품을 챙겨갈 것을 권한다. 또, 간단한 수리는 배워 가는 게 도움이 된다.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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