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8. 같은 달을 보고 있음을…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8. 같은 달을 보고 있음을…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8.12.14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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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38. 몽골 캐시미어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8. 같은 달을 보고 있음을…

고맙고 또 고마운 사람들

겨울을 아직 준비하지 않은 게르는 얇은 천으로만 둘러싸여 있어서 밤공기를 온전히 막아주진 못했다. 고원보다 춥진 않지만 찬 공기 때문에 자다 일어나 다운패딩점퍼를 꺼내 입고 다시 잠들어 늦은 아침에야 일어났다.

침대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켜고 있으니 옆 침대의 이탈리아 라이더들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그들이 전날 사온 과일주스와 내가 사온 과자들로 아침을 때웠다. 

그들은 이제 씻고 바로 출발한단다. 전날 국경을 넘어 바로 숙소에 들어와 그리 힘들지 않은가보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날 설명한 욱일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설명하며 내가 가져온 현수막을 들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라이더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현수막을 설명한 후 사진을 찍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라이더 친구들에게 내가 만든 현수막을 설명한 후 사진을 찍었다.

나는 당장 출발할 생각은 아니다. 몽골의 오프로드를 건너느라 바이크도, 내 몸도 엉망진창이다. 넘어지며 바이크에 깔린 오른쪽 발목은 계속 시큰거리고 심할 때는 절뚝거리며 겨우 걸어야할 정도다. 바이크 왼쪽 사이드미러는 부러져 테이프로 겨우 붙여놓은 상황이다.

지치고 힘든 마음이야 두말 할 것도 없다. 일단 2~3일 정도 푹 쉬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바이크를 정리한 뒤 러시아로 다시 넘어갈 계획이다.

그들이 가고 난 후 혼자 남은 방에 누워 핸드폰을 켰다. 전날 이탈리아 라이더들과 얘기하다가 그냥 잠들어 사람들에게서 온 소식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얼마 남지 않은 돈을 확인해보려고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켰다가 깜짝 놀랐다.

몽골을 통과하기 전 현금을 인출하고 남은 잔고는 분명 10만 원대였는데, 뒤에 ‘0’이 하나 더 붙어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블로그나 SNS에 계좌번호를 적어뒀는데 그걸 보고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돈을 보내준 것이다.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아 마음을 보탠다는 후배부터 밥 굶고 다니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다니라는 선배까지. 문자로 전하기엔 고마운 마음이 다 전달되지 않을 만큼 고맙다.

‘그래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한없이 부족하고 바보 같지만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준다. 고맙고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답장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다.

가장 몽골다운 마을, 을기

을기의 모습을 보기 위해 핸드폰과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어폰을 끼고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을기의 모습을 둘러봤다. 

울란바토르 이후로 이렇게 동네를 산책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울란바토르와 비교한다. 울란바토르는 아주 어릴 때 기억이나 영화에서 본 한국의 옛날 모습이라면, 을기는 다르다. 그냥 ‘몽골 같다’고 말하면 맞을까.

을기의 모습
을기의 모습

아스팔트 길도 있고 2~3층짜리 건물이 한두 동씩 있는 것 말고는 별게 없다. 단층인데다 높이가 아주 낮은, 나무판자나 벽돌로 만든 상가들이 길을 따라 서너 동씩 붙어있다. 그 외에는 모두 황무지다.

평지라 그런지 마을 밖까지 보이는데, 보이는 곳 모두 다 평지다. 사막 한복판에 있는 마을 같다.

또, 재미있는 것은 길가에서 양가죽을 파는 사람들이다. 넓은 판자 가운데 뾰족한 나무를 고정해놓고 거기에 털이 그대로 붙어있는 양가죽을 한 장씩 끼워 놓고 판다. 아마 도살하거나 병들어 죽은 양의 가죽을 파는 듯하다.

여기 사람들을 저 가죽을 사서 손질한 후 옷을 해 입겠지. 이제 겨울을 대비해야하는 나도 양가죽 옷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가죽을 사서 손질할 수는 없으니 포기했다.

동네를 조금 돌아다니다 식당에서 파는 감자튀김으로 점심을 먹고 마켓에 들러 먹을 것만 조금 산 후 숙소로 들어왔다.

식당에서 사먹은 감자튀김. 양이 굉장히 많아 남은것은 포장해 숙소에서 마저 먹었다.
식당에서 사먹은 감자튀김. 양이 굉장히 많아 남은것은 포장해 숙소에서 마저 먹었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인지 한 게 별로 없는데도 피곤하다. 바이크가 잘 주차돼있는지 확인한 뒤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잤다.

한참 자고 있는데 문이 얼리더니 사람이 들어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스웨덴에서 왔단다. 겨울에는 눈썰매(개썰매) 끄는 일을 하고, 겨울 이외 계절에는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한단다. 

그는 이틀 뒤에 있는 ‘이글 페스티벌’을 보러 을기에 왔다고 했다. 이곳에서 매해 이맘때 독수리 사냥 등의 행사를 한다는데, 제법 유명한가보다. 나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그가 씻으러 간 사이 핸드폰을 보다가 다시 잠들었다.

얼마나 잠든 걸까? 일어나니 공기는 쌀쌀하고 밖은 어둡다. 저녁시간이 조금 지났는지 밖에 있는 주방에서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화장실에 가다가 맥주 한 캔을 받아 끼어들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스웨덴, 멕시코, 미국에서 온 이들과 겨우 대화를 이어가다 하늘을 봤다. 달이 밝다. 꽉 찬 보름달을 보고 있으니 다보니 마음이 괜히 시리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선 추석이다. ‘저 보름달을 한국에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도 보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더 아련하다.

그나마 같은 달을 보고 있음에 위안을 삼고, 처음 만났지만 옆에 있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외로움을 털어냈다.

똑 똑 똑, “계십니까?”

투숙객들과 밤늦게 까지 맥주를 마시다가 더 취하면 눈물이 날 것아 게르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잤다. 한참을 자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똑 똑 똑, “계십니까?”

깜짝 놀라 일어나잘 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이니 다시 한 번 똑 똑 똑, “계십니까?” 하는 말이 분명히 들린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한국인 두 명이다. 밖에 있는 내 바이크의 번호판을 보고 숙소 주인에게 한국 사람이 있는 게르가 어디냐고 물어 왔단다.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국 사람만 만나도 반가울 판에 내가 온 길을 그대로 온 한국 사람들을  만나다니. 그들은 40대로 나에게 형님겪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 중인 다른 한 명도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했다.

한국말이 술술 나오는 게 어색하다. 반가움의 인사와 포옹을 한 후 밖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두 분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 분은 중국에서 차(茶) 사업을 하고, 다른 한 분은 한의학 박사로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한국에 들어올 계획이다. 고교 동창이라는 인연을 이어 함께 여행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멋지다.

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인연을 맺은 러시아인 라픽(라파엘)이라는 50대 남성과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라픽은 한국에서 킹크랩 잡이 배를 몇 년간 타서 한국말을 할 줄 알기에 그의 고향인 아제르바이잔까지 함께 가며 통역을 부탁하고 여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말 오랜만에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없는 대화를 하며 점심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내 바이크 뒷바퀴 바람이 전부 빠져 있다. 형님들은 자기들이 왔을 때부터 빠져 있었다고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여행하는 도중에 무언가를 밟아서 바람이 빠진 것 같다. 바이크는 보지도 않고 방에서 쉬기만 했으니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타이어 튜브를 여분으로 가져온 게 있다. 바이크에 남아있는 짐을 전부 풀고 숙소 주인에게 수리점을 물어보니 바로 앞에 자동차 수리점이 있단다.

수리점 직원이 펑크 난 타이어를 바이크에서 분리하고 있다.
수리점 직원이 펑크 난 타이어를 바이크에서 분리하고 있다.

바람이 완전히 빠져버린 바이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숙소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곳에 수리점이 있다. 자동차 수리점이라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수리점 직원은 펑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바이크를 눕힌 뒤 타이어를 금방 분리해낸다.

자세히 보니 타이어에 철사가 밖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타이어에 철사가 밖혀 있었다.

확인해보니 아주 작은 철사가 바퀴에 박혀있다. 새 튜브로 바꾸지 않아도 될 정도다. 펑크 스티커를 붙인 후 바람을 넣고 비눗물을 뿌려 확인했다.

저녁에는 바이크를 타고 형님 한 분이 더 왔다. 숙소에 자리가 없어, 형님들은 게르 앞 마당 한쪽 구석에 텐트를 쳤다.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밤을 보냈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형님들과 함께 숙도 마당에서 캠핑을 했다.
한국인 형님들과 함께 숙소 마당에서 캠핑을 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38. 몽골 캐시미어

몽골의 주요 수출품은 캐시미어가 아닌 광물이다. 2012년 기준, 몽골의 주요 무역 품목은 광물이 82%로 압도적이고 그 다음이 캐시미어(6%)다. 광물자원이 매우 풍부해 세계 10대 자원부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몽골 여행을 다녀올 때 면세점에서 석탄을 사서 오진 않을 터. 몽골 여행객들이 주로 사오는 캐시미어를 소개한다. 

몽골에는 유목민족이 많은 만큼 양이 많고, 양의 털과 가죽을 이용해 만든 캐시미어 제품도 많다. 연간 생산량은 약 2500톤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 절반가량은 흰색이고 나머지는 회색과 갈색 등을 띈다.

몽골 캐시미어는 울 섬유의 신축성 등을 봤을 때 세계적으로 고품질로 평가받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리고 비싼 브랜드도 있다.

울란바토르에 있는 국영 백화점이나 칭기즈칸공항 면세점에서 여러 브랜드의 캐시미어 제품을 만날 수 있고, 작은 마을 시장에서도 현지인들이 직접 만든 가죽 제품이나 캐시미어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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