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46. 아! 백남기 농민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46. 아! 백남기 농민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2.15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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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46. 바이크 장비 - 장갑과 신발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46. 아! 백남기 농민

2015년 민중총궐기

아스타나로 출발하기 전, 고급 식당에서 친구와 배를 든든하게 채운 뒤 돌아가며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었다. 먼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의 와이파이를 잡아 인터넷을 했다. 그리고 참혹한 소식을 접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사인은 병사. 믿을 수 없어서 여러 기사를 찾아봤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라는 서울대병원이 기록한 사인은 ‘병사’였다.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부검하려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그곳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그날의 광화문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나는 인천시청 앞에서 한 달이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국립대학법인 인천대학교의 문제였지만 대학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친 천막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후배들과 함께 대학로에 갔다. 

박근혜 정부 3년차. 청년들의 삶은 갈수록 어렵고 힘들었다. 미래를 꿈꾸거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지옥 같은 삶은 이어졌고, ‘헬조선’ 같은 자조적 유행어가 청년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자신들의 삶을 비웃듯 사용되고 있었다.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삶이 어려웠는지,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곳곳에서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고, 그들이 한 곳에 모이는 민중총궐기가 열렸다. 

대학로에서 청년 집회를 마치고 민중총궐기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마치 사냥감을 한 쪽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경찰들이 차벽을 쳐 길을 막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한 곳으로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농민들을 만났다.

가장 앞줄에서 행진한 나는 농민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 많이 왔네” “앞쪽은 위험하니까 우리가 먼저 갈게 뒤에 잘 따라와” “장하다 학생들, 파이팅” 농민들은 청년들을 응원하고 대열의 선두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행진거리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거대한 차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차벽  위에서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땅과 가로수, 사람들에게 내리 꽂혔다.

땅에 부딪친 물대포에서 피어오르는 최루액 안개로 숨을 쉬기도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물대포가 스칠 때마다 잎이 우수수 떨어져 나가 벌거숭이가 됐다.

물대포는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사람들을 집요하게 쫒았고, 물대포를 맞은 사람들을 퍽퍽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들은 물대포가 다른 사냥감을 향해 고개를 돌려야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청년은 심하게 다친 듯 고통을 호소했고, 잠시 후 구급차가 와서 들것에 실어 태우는데 물대포는 뒷문이 활짝 열린 구급차에도 내리 꽂혔다.

분노로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최루액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민중총궐기 이후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불법 집회라고 시위대를 비난했고, ‘빨간 우의 가격설’ 등으로 백남기 농민 사고의 진실을 가리며 그의 가족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사망하고 나니 부검을 하겠단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장면을 국민들이 봤는데도 사인을 ‘병사’라고 적은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말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니 경찰 등이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영안실을 지키고 있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이곳은 카자흐스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바이크를 타고 아스타나를 향해 출발했다.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로

콕셰타우에서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까지는 약 350킬로미터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지만 아침식사 등으로 시간을 많이 보냈기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

몸은 아스타나로 가고 있지만 마음은 서울에 머물렀다. 바이크를 타는 내내 가슴이 아파 여행은 전혀 즐겁지 않다.

콕셰타우에서 아스타나로 이동하던 중 찍은 노을
콕셰타우에서 아스타나로 이동하던 중 찍은 노을

계속해서 눈물이 흐른다. 나는 왜 여기서 여행을 하고 있을까. 당장이라도 서울로 가서 촛불을 들고 사과하고 책임지라고 따져 묻고 싶다. 민중총궐기에서 사람들에게 내리꽂히는 물대포를 볼 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잠시 멈춰서 바라본 초원 너머 노을도 슬프기만 하다.

어두운 밤이 돼서야 아스타나에 들어왔다.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만큼 고층 빌딩이 굉장히 많고 도로 폭도 넓다. 가로등도 많아 야간 라이딩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 길도 깨끗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 모습이다. 미리 검색해둔 호스텔에 들어갔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이 있다. 19층짜리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이라 테라스에 나가면 아스타나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백남기 농민의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단다.

이층 침대에 올라 천장을 보고 누웠다. 무력하고 기운 빠지는 아스타나의 밤. 나는 왜 이 여행을 하고 있고, 이 여행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게 대단한 것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여행을 시작한 이상,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내 세상이다.’ 다이어리에 꾹 꾹 눌러 한 줄 적고 잠을 청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내 세상

다음날 호스텔에 있는 빵 등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근처 마켓에서 라면과 술을 사서 다시 들어왔다.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테라스에서 먹으니 멋진 경치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내 세상에서 내 삶에 충실하기로 했다.

숙소 테라스에서 아스타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숙소 테라스에서 아스타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라면을 먹은 후 카메라를 챙겨 시내 구경에 나섰다.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원래 남쪽에 있는 천년의 도시 알마티였다. 1997년에 아스타나로 옮겼고, 이 때문에 아스타나는 도시계획으로 만든 신시가지와 기존 시가지로 나뉘어있다.

나가는데 숙소 주인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첫 번째는 길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 두 번째는 침을 함부로 뱉지 말 것. 둘 다 한 번 걸리면 벌금이 100달러란다.

바로 전날 머무른 콕셰타우만 해도 쓰레기가 엄청 많았는데, 아스타나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알겠다고 명심하겠다고 한 후 밖으로 나갔다.

긴 바지와 반팔티를 입고 겉옷을 챙겨 다니면 적당한 날씨다. 아스타나는 그동안 본 수많은 도시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깨끗하게 정돈돼있다. 길거리에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고, 곳곳에 화단과 꽃이 가득하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도 확실하고, 길도 어디 한 곳 깨지거나 상하지 않았다.

아스타나의 길. 공원이 아니라 그냥 인도인데도 깔끔하게 정돈 돼 있다.
아스타나의 길. 공원이 아니라 그냥 인도인데도 깔끔하게 정돈 돼 있다.

놀랍다. 아스타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은 도시다. 카자흐스탄의 수도이긴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수도였던 알마티에 모든 문화예술 등이 집중돼있고 인구도 알마티가 몇 배는 더 많다. 아스타나는 그냥 정치적 수도일 뿐,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알마티를 최고의 도시로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아름다운 도시를 만나니 즐거워진다. 맥주 등을 사와 테라스에서 마시며 여행에 조금 더 집중하고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스타나에서 며칠을 더 머무르며 곳곳을 살펴보기로 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48. 바이크 장비 - 장갑과 신발

바이크 여행을 할 때 준비할 장비를 알아보자. 헬멧과 슈트에 이어 이번에는 장갑과 신발이다. 장갑과 신발 역시 종류와 기능이 다양하다.

장갑은 보통 손등과 손가락 마디에 보호대가 들어있고, 손목까지 감싸주는 것도 많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여름에 가볍게 사용할 메쉬 소재의 장갑과 겨울에 쓸 수 있는 가죽 등 보온성 소재 장갑, 두 종류를 준비하는 게 좋다. 혹한이나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바이크 장갑 속이나 겉에 낄 고무장갑, 면장갑도 챙기는 게 좋다. 

신발은 발목 위까지 올라와 복숭아뼈 정도는 덮을 수 있어야한다. 정강이까지 보호하는 롱부츠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짐을 줄여야하는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바이크를 타지 않을 때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부츠를 추천한다.

다만, 가죽 등의 재질로 기본 방수기능이 있고 밑바닥(아웃솔)이 두껍고 단단한 부츠가 좋다. 겨울에 양말 등을 여러 겹 신을 것을 대비해 조금 넉넉한 사이즈가 좋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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