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6. 알혼이여 안녕


어느새 익숙해진 알혼

알혼에서 며칠이나 흘렀을까. 전기를 거의 사용할 수 없어 핸드폰은 꺼진지 오래고 딱히 날짜를 세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며칠이 지났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한 곳에서만 캠핑을 했기에 주변에 사는 러시아 친구들도 제법 생겼다. 지마와 그의 누나 미야와는 종종 만나 같이 밥을 먹기도 했고, 배가 볼록 나온 몸에 삼각팬티만 입고 우리 바로 옆에서 며칠을 캠핑하는 아저씨와도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며칠 전 우리 텐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쿠츠크 대학생 예닐곱 명이 캠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밤에 자기들끼리 싸우는 등 조금 시끄럽긴 했지만 그들과도 대화하는 사이가 됐다.

시간이 넉넉하고, 근처에 마트도 있어서 요리도 해먹었다. 가장 큰 발전은 라면죽이 아니라 쌀밥을 먹었다는 것. 처음에는 밥을 좀 태우기도 했지만 실력이 늘어서 이젠 코펠과 버너로 쫀득한 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가져온 씻어 나온 쌀이 큰 역할을 했다.

낮에는 주로 냉동 팰메니로 만둣국을 해먹었다. 뜨거운 물에 마늘을 다져 넣은 후 양파와 계란, 펠메니를 넣고 끓이면 제법 그럴듯한 만둣국이 된다. 간이 안 맞으면 라면 스프를 조금 넣기도 했고, 마트에서 사온 사각형 고체 조미료를 조금씩 잘라 넣기도 했다.

밥을 먹은 후에는 호수에서 떠온 물로 코펠을 대충 헹구고 휴지로 닦아 기름기를 제거했다. 완벽하게 닦이지는 않았기에 밥을 해먹은 코펠에 차를 우려내면 기름기가 둥둥 떠 있기도 했다.

미야가 준 차는 굉장히 맛있었다. 다 먹을 때쯤이면 또 가져와 우리에게 건네곤 했는데, 박하향이 몸에 퍼져 나른해지는 맛이다. 입도 상쾌해진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에는 그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고, 저녁식사를 위한 장작과 고기 등을 준비했다.

저녁은 역시 샤슬릭이다.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 등을 마트에서 아주 저렴하게  살 수 있었고, 꼬치에 끼워 구은 후 술과 함께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었다.

알혼의 자연과 하나가 된 듯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때가 됐다. 한국에서 오고 있는 내 바이크 부품이 이르쿠츠크에 도착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알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밤이다. 처음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시 이르쿠츠크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짐을 하나씩 챙겼다. 가방에 있던 짐들을 다 풀어놓으니 처음보다 더 늘어난 듯, 한 가득이다. 라면을 끓여 먹으며 정리를 겨우 마치고 텐트를 접었다. 이제 정말 알혼을 떠날 때다.

다른 곳에서 떠날 때는 ‘이젠 다시는 오지 못하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에는 ‘꼭 다시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하늘과 눈을 시리게 만드는 푸른 호수. 갈매기와 다람쥐, 먹이를 찾아오던 강아지와 소. 그늘을 만들어주던 고마운 나무와 따스함을 전해주던 불까지. 모든 것이 함께한 벗이었다. 

백사장으로 가 바이칼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바이크에 올라 이르쿠츠크로 향한다. 올 때와 같은 길로 돌아가는 경험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오는 동안 곁눈질로 한두 번 봤던 풍경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알혼섬 선착장

알혼에 들어온 첫 날 소똥을 모아 불을 피우던 장소를 지나니 곧 선착장이다. 배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근처 마트에서 고기가 들어간 튀긴 빵을 하나 사먹었다.

머지않아 배가 선착장으로 들어왔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바이크 우대’를 받아 가장 먼저 탑승했다. 이내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알혼은 점차 멀어졌다. 

배에서 내려 곧장 이르쿠츠크로 향했다.

10여분의 짧은 항해 끝에 배에서 내려 곧장 이르쿠츠크의 숙소로 향했다. 올 때 봤던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서낭당 나무도, 길가에 있는 방목된 동물들도, 잠시 쉬었던 식당도 그대로다.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기분일까.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호스텔 주인이 반겨준다. 그녀는 우리와 가볍게 포옹한 후 전에 묵었던 방으로 안내해줬다. 주문한 바이크 부품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짐을 풀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온 후 일단 컵라면을 하나씩 먹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아주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온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 방으로 들어와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다가, 피곤했는지 금세 잠들었다.

러시아에서 머리 깎기

다음날, 이전처럼 아침에 일어나 홍차와 빵으로 요기를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젠 길을 다 외워버린 동네이기에 특별할 것은 없지만 이벤트가 남아있다. 바로 이발.

머리를 자르지 않은 지 한 달이 넘다 보니 짧게 자르고 온 머리가 제법 자랐다. 머리가 길면 여러모로 귀찮다. 멋 부리거나 잘 보일 것도 없는 여행. 아주 짧게 자르기로 하고 미용실을 찾아 나섰다.

시장 근처를 돌아다니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미용실을 발견했다. 러시아에서 첫 미용.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손짓을 하며 옆머리와 뒷머리는 짧게 자르고 앞머리와 윗머리는 조금만 남겨달라고 했다.

내 말을 알아들은 듯, 미용사는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그의 손길에 잠시 겁을 먹었지만 ‘망하면 뭐 어때’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내가 먼저 머리를 자른 다음 일행도 이곳에서 머리를 잘랐다.

잠시 후 목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 때 눈을 뜨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러시아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인 듯, 그의 거침없는 바리캉은 제법 멋진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줬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며 의자를 뒤로 눕히곤 따뜻한 크림을 내 턱과 볼에 잔뜩 바르고는 면도칼로 수염도 다듬어줬다. 머리를 감고 나니 더 마음에 든다. 짧게 잘라서 앞으로 한동안은 머리를 자를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한국 음식

개운한 기분으로 주변을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역시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다. 식당 이름이 ‘김치’다.

여행 이후 처음으로 만난 한국 식당이 매우 반갑다. 샤슬릭을 비롯한 러시아 음식들도 맛있지만 한국 음식만한 것은 없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주방에 있는 직원도, 서빙 하는 직원도 러시아인이다. 우리를 맞이한 직원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한국인이 하는 식당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의 할머니가 까레이스키고, 요리사는 자신의 오빠란다. 한국인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메뉴판을 보니 익숙한 한국 음식 사진이 있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신이 난 우리는 비빔밥과 된장찌개, 삼겹살 2인분을 주문했다. 아쉽게도 삼겹살은 테이블에서 구워먹는 게 아니고, 주방에서 구워 나온단다. 

한국식당 '김치'에서 먹은 음식들

잠시 후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삼겹살을 싸먹을 상추와 쌈장도 나왔다.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르긴 했지만 생각보다 맛있어 깜짝 놀랐다. 특히 쌈장이 맛있다. 밥을 비벼먹어도 될 정도다. 밥도 러시아 특유의 느낌이 없이 한국의 밥처럼 쫀득하다.

우리는 ‘하라쇼(=좋다)’를 연신 외치며 순식간에 주문한 밥을 다 비우고 추가로 두 공기나 더 먹었다. 식당 종업원들과 주변에 앉아있는 러시아인들이 우리가 먹는 것을 보고는 놀라며 웃을 정도로 엄청난 양을 순식간에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나서야 식당 밖으로 나왔다.

이별을 앞두고

오랜만에 먹는 익숙한 음식에 기분이 좋은 나머지 너무 많이 먹었다. 밖은 어느새 쌀쌀하고 깜깜하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일행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일행 중 두 명은 다음날 떠날 계획이다. 나와 바이크 부품을 주문한 다른 한 친구만 남는다.

나와 함께 남는 친구도 바이크를 고치고 나면 가는 방향이 나와 다르다. 나는 몽골을 향해 남쪽으로, 그 친구는 모스크바와 유럽이 있는 서쪽으로 향한다. 내심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 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에 아쉬움이 크다.

우리 넷은 언제가 될지 모를 먼 훗날 다시 만나 지금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밤새 떠들 순간을 기대하며 꼭 소주 한잔 하자고, 각자 사는 동네까지 바이크를 타고 가 지금처럼 캠핑을 하자고 약속했다.

한 달 만에 수년을 만난 친구처럼 가까워진 우리. 속 깊은 곳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이 친구들이 아닐까. 

자투리 여행정보 26 - 알혼

알혼은 바이칼호수 안에 있는 섬들 중 가장 큰 섬이다. 바이칼호수가 경상도만큼의 크기고, 알혼은 제주도의 약 40% 크기라고 한다. 이 섬 안에 있는 후지르 마을은 인구가 3000명쯤 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랴트인인데, 매우 친절하다.

알혼은 포장된 도로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집이나 건물도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다. 캠핑을 하다 만난 이르쿠츠크 대학들에게 들은 바로는 러시아 정부에서 이곳 개발을 막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곳. 그래서 전기를 쉽게 사용하지 못하고 길도 험해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잠시 불편해도 괜찮다. 먼 훗날 다시 알혼에 가도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길 바란다. 

인천투데이 김강현 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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