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5. 해발 3615m ‘탈딕 패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5. 해발 3615m ‘탈딕 패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4.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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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55. 눈길에서 바이크 운전하기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5. 해발 3615m ‘탈딕 패스’

안녕 무르카

파미르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똑같은 상태로 가면 똑같은 상황만 벌어질 뿐이다. 더욱 철저한 준비로 다시 도전해야 한다.

짐을 잔뜩 싣고 가는 '티코' 키르기스스탄 오시를 돌아다니면 한국에서 수출한 중고차들이 많이 보인다.
짐을 잔뜩 싣고 가는 '티코' 키르기스스탄 오시를 돌아다니면 한국에서 수출한 중고차들이 많이 보인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스노우 체인을 사기 위해 바이크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마켓에 가서 길을 물어보고, 철물점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 물어봤지만 바이크에 쓸 수 있는 체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동안 돌아다닌 끝에 한 잡화점에서 근처에 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바이크를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샤슬릭을 먹은 후 적당한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체인을 찾았다.

눈에 보이는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음식을 주문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음식을 주문했다.
샤슬릭.
샤슬릭.

오래 걸리지 않아 바이크에도 채울 수 있는 체인을 발견했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맨땅에서는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덜컹거리지만 눈 위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 넘어지며 바이크에 깔린 발목이 좋지 않아 더 이상 돌아다니기 힘들어 체인만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욕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바닥에 앉아 한참 물을 맞고 나와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신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눈 섞인 비가 내린다. 방 안에 들어갈까 하다가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다. 

밖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고양이 ‘무르카’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온다. 추워서인지 몸을 오들오들 떤다. 등을 쓰다듬어주다가 겉옷 지퍼를 열고 옷 안에 품는다. 무르카의 체온이 전달된다.

내 무릎 위 고양이 '무르카'
내 무릎 위 고양이 '무르카'

이 고양이와 함께 여행하면 외롭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 욕심에 데려갈 수는 없는 일. 주변에서 박스와 천을 주워 무르카가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파미르를 향한 준비를 했다. 전날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라 별다른 것은 없다. 무르카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는데 출발 직전에 멀리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혼자말로 인사했다. 안녕 무르카.

숙소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 숙소의 모습을 담았다.
숙소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 숙소의 모습을 담았다.

다시 파미르로

이틀 전 돌아왔던 길을 다시 따라 간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서서히 오르막길이 시작되며 눈이 보인다. 산 위에서 또 고산병에 시달릴 것을 대비해 초코바를 먹는다. 초코바 하나를 다 먹고 물을 마신 후 마음을 다잡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 초코바를 먹기 위해 잠시 멈췄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 초코바를 먹기 위해 잠시 멈췄다.
살얼음이 생기기 시작한 물
살얼음이 생기기 시작한 물

양쪽 길가에서부터 가운데로 점점 영역을 넓히던 눈은 곧 내가 설 자리까지 모두 빼앗는다. 다시 만난 온통 하얀 세상.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이 강하게 불고 눈이 내린다.

눈길에 들어가자마자 바이크에서 내려 체인을 걸었다. 벨트처럼 된 체인 10여 개를 뒷바퀴에 집중적으로 달고 남은 몇 개만 앞바퀴에 달았다. 

체인을 달고 나니 확실히 눈길을 잘 딛고 나간다. 바퀴가 조금 헛돌다가도 눈을 뭉개며 앞으로 나간다. 하지만 옆으로 미끄러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해 또 몇 번을 넘어진다.

이틀 전과 마찬가지로 넘어질 때마다 아래로 한참을 밀려난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쁘다. 바이크를 겨우 일으켜 세우고 헛구역질을 한다.

바닥에 쌓인 눈을 장갑 낀 손으로 힘껏 긁어본다. 땅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잘 긁히지 않을 만큼 단단한 눈 때문에 여기가 포장도로인지 비포장도로인지 알 수 없다.

넘어지고 숨을 고르고 바이크를 일으키고 또 숨을 고르길 반복한다. 이틀 전 느낀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산은 여전히 나를 덮칠 듯 거대하고 위협적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싶어 소리를 질렀는데 뇌에 실핏줄이 터지는 것처럼 찡 하더니 눈앞이 가물가물하다. 가만히 있으면 머릿속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오르고 떨쳐버리기 위해 소리를 지르면 몸이 아프다. 이를 악 물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넘어지고 나가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날씨는 점점 더 흐려진다. 강한 바람에 날카로운 눈발이 날리고 굵은 눈송이가 내린다. 마치 불교의 한빙지옥 같다. 얼마나 더 가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해발 3615m 탈딕 패스

이를 악물고 온갖 욕을 해대며 앞으로 나가길 반복한다. ‘이 고지를 기필코 넘으리라. 또 다시 부끄럽게 도망가지 않으리라. 그래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만 한다.

그렇게 오기로 악으로 얼마를 더 갔을까. 가로 1미터 정도 크기의 알루미늄 팻말이 보인다. ‘3615m TALDYK PASS’. 지옥의 끝이다.

3615m TALDYK PASS
3615m TALDYK PASS
탈딕패스, 그 정상에 올랐다.
탈딕패스, 그 정상에 올랐다.

바이크에서 내려 팻말 앞으로 간다. 울면 눈물이 얼굴에 얼어붙을까봐 팻말을 잡고 차오르는 눈물을 삼킨다.

해냈다. 아니, 일단 올라오는 것에는 성공했다. 기뻐하기보다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살아서 이곳을 내려가야 한다. 오르막길이야 넘어지면 제자리에서 조금 미끄러지는 정도지만 내리막길에서 넘어지면 낭떠러지로 직행할 수도 있다.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바이크에 오른다. 내려가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초반에는 2~3m에 한 번씩 넘어진다. 바이크를 타고 내려간다기보다는 미끄러져 내려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진짜 이러다 죽겠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씩 적응한다. 나중에는 체인을 아예 빼버리고 스로틀을 당기지 않고 뒷 브레이크를 잡았다 놨다 반복하며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빙지옥’에서 만난 구세주

속도가 너무 더디다. 해가 지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하는데... 그러가다 또 넘어져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데 뒤에서 트럭 한 대가 온다.

아주 낡은 한국산 1톤 트럭이 내 옆으로 오더니 멈춘다. 그 안에서 중년남성이 내려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을 도와준다. 해발 3000미터를 훌쩍 넘은 곳에서 만난 그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나를 위한 구세주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한 후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소개하니, 산 아래까지 태워주겠다며 바이크를 트럭에 싣고 함께 가잔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이라 더 이상 바이크를 일으켜 세울 힘도 없고 빨리 내려가야 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을 수 있다. 그의 도움을 감사하게 받기로 했다.

함께 힘을 합쳐 바이크를 트럭 짐칸에 올린 후 차에 올라탔다. 히터도 나오지 않는지 찬 기운이 밖과 별반 다르지 않다. 

통하지 않는 대화를 하며 산을 내려간다. 차 역시 미끄러지긴 마찬가지지만 굵은 쇠사슬 체인을 쓴 덕에 어렵지 않게 내려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없는 길에 도착했다.

나를 선뜻 도와준 그가 정말 고맙다. 뭐라도 주고 싶지만 갖고 있는 게 없다. 주머니를 뒤져 나온 한국산 라이터와 내가 가진 담배를 몽땅 줬다.

맨 땅에 도착해 바이크를 내리고 그의 손을 잡고 몇 번이나 고개 숙여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내게 엄지를 추켜세운 후 떠났다. 

뒤를 돌아보니 방금 넘어온 산이 보인다. 이틀 전 도전에 실패하고 내려와서 올려봤던 산의 뒷모습. 그 때는 산이 나를 덮칠 것처럼 두려웠지만 넘고 나니 밟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도전했고, 성공했다. 두 번의 도전 만에 해발 3615m 탈딕패스를 지났다. 그만큼 내 한계도  넓어졌다.

자투리 여행정보 55. 눈길에서 바이크 운전하기

바이크 여행을 하다보면 눈이 쌓인 곳에서 운전해야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가능한 그런 상황을 피해야한다. 눈 위에서 운전은 바퀴가 두 개뿐인 바이크에는 치명적이다. 작은 사고라도 날 수밖에 없고,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운전해야하는 상황을 대비해 스노우 체인을 준비해야한다. 체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탈딕 패스’를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리고 옷을 많이 껴입어야한다. 추운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옷을 두툼하게 껴입어야 넘어져도 별로 아프지 않다. 물론 보호구 등 안전장비는 필수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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