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61. 게스트하우스 스텝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1. 혹한의 시베리아를 떠나 런던으로

다시 비쉬케크

산을 빠져 나오느라 죽다 살아났다. 산을 나온 후 바이크 속도를 높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에 톡토굴 호수 근처 마을에 도착했다. 전에 이 길을 지날 때는 캠핑했기 때문에 들리지 않은 마을이다.

산을 빠져나와 만난 톡토굴 호수.

마을에 있는 마켓에서 라면 등을 산 후 손을 포개 귀에 대고 자는 시늉을 하며 숙소를 물어보자, 마켓 주인은 바로 앞에 있는 불 켜진 집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숙소로 들어가니 깔끔하긴 하지만 굉장히 좁다. 하지만 많이 지친 터라 침대 하나만 달랑 있는 작은 방이 더없이 안락하게 느껴진다.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비쉬케크를 향해 다시 출발한다. 전에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이유 없는 검문에 통행료를 내느라 화도 나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비쉬케크를 떠나며 고생했던 첫 번째 산 앞에 도착했다.

다행히 정오를 조금 지난 때라 날씨가 따뜻하다. 길도 얼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산을 올랐는데 길이 멀쩡하다. 전에 그렇게 고생했던 산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긴장한 것에 비하면 허무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비쉬케크에 도착했다. 전에 묵은 숙소를 다시 들어가 짐을 푼 후 한국식당 ‘호반’으로 갔다. 현지인 직원이 안내해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사장님이 “무사히 왔구나” 하며 반갑게 맞이해준다.

파미르를 지나 전에 머물렀던 숙소에 도착했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따뜻한 국물과 흰 쌀밥을 먹으니 진짜 살아 돌아왔다는 게 실감난다.

다시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며칠 쉬면서 충전하고 파미르에서 고장 난 바이크 부품도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택배로 받을 생각이다.

‘호반’ 사장님은 자신의 친동생과 지인들을 한 명씩 소개해주셨는데,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모두 따뜻하게 맞아준다. 제약 관련 사업을 하며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을 오가는 분도 있고 한국 토종닭 사육 사업을 하는 분도 있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며 한국음식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신다. 아늑하고 안락하다. 사장님 동생인 승환 형님 집에 초대받기도 했다.

다음날 승환 형님 집에 가보니, 부인과 함께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며 한국에서 온 고등학교 유학생들 하숙까지 하느라 집이 북적북적하다. 승환 형님은 한국에서 온 내 택배를 대신 받아주시는 것은 물론 공원 나들이에도 함께 데려가주시는 등, 나를 각별히 챙겨주셨다.

비쉬케크에 있는 동안 키르기스스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이식쿨 호수로 1박 2일간 오리와 늑대 사냥을 가기도 했고, 국립공원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했다. 생에 처음으로 삭힌 홍어를 먹은 것도 이곳이다. 비쉬케크 한인 신문사와 인터뷰도 했다.

비쉬케크에서 차를 타고 30여 분만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국립공원.

이곳에 일자리를 잡고 눌러앉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만난 모든 분이 나를 친동생처럼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데다, 고생한다며 갖은 음식을 챙겨주셔서 여행하는 동안 가장 잘 먹고 다녔다.

11월 말의 시베리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숙소비만 해도 부담이라 얼른 출발해야한다. 택배도 도착할 때가 됐다. 부품을 받으면 수리한 후 바로 키르기스스탄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숙소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창밖이 온통 하얗다.

마당에 세워놓은 바이크에 눈이 잔뜩 쌓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다시 밖을 보니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 마당으로 나가보니 바이크에도 눈이 잔뜩 쌓였다. 큰일 났다. 눈이 너무 많이 왔다. 게다가 낮 최고기온이 영하 7~8도 이하일 정도로 갑자기 추워졌다. 눈이 전혀 녹지 않아 도로가 온통 마비됐다. 

바이크를 타고 가기에는 무리다. 게다가 앞으로 가야할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날씨를 검색해보니 영하 30도 훌쩍 아래다. ‘한빙지옥’이 따로 없는 11월 말의 시베리아, 그 현실을 마주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이 눈길을 뚫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비쉬케크를 벗어날 수나 있을까? 벗어난다고 해도 영하 30도 이하인 벌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꼬리를 문다.

며칠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눈은 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도로는 여전이 마비상태다. 도로 제설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듯 나아질 기미가 없다.

비쉬케크 중심가 도로 상황.

결단해야할 순간이다. 남은 돈도 얼마 없어 겨울이 지날 때까지 비쉬케크에서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결국 일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현지인들도 일자리가 없는 데다,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다. 한 달 임금도 보통 한화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겨울을 날 곳, 런던으로

급하게 일자리를 알아보려니 선택지가 별로 없다. 워킹홀리데이를 알아보려해도 중앙아시아에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루 종일 숙소 안에서 인터넷으로 방법을 찾던 중 영국 무비자 체류 기간이 6개월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았다. 6개월이면 겨울이 지날 때까지 지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영어를 못하는 데다 취업비자가 아니어서 좋은 일자리는 찾을 수 없다. 계속 알아보다가 에어비엔비를 활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을 구한다는 글을 찾았다.

한국계 영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터라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고 투숙객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며, 외국인 손님들이 오긴 하지만 정해진 룰이 있기에 영어에 능통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곧바로 이력서를 적어 이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화상통화로 면접심사를 본 후 함께 일하기로 했다. 월급은 한화 50만 원 정도지만 숙식이 해결되기에 돈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겨울을 보내면 봄에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는 자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받아 3일 뒤에 있는 비쉬케크 마나스 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티켓을 예매한 후 남은 잔액은 약 8만 원. 가진 돈 거의 전부를 건 런던 행이 시작됐다.

바이크는 다시 돌아올 때까지 승환 형님이 맡아주기로 했다. 최소한의 짐을 꾸려 새벽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새벽 택시를 타고 비쉬케크 마나스공항으로 갔다.

군대 가기 전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본 후 첫 비행기를 키르기스스탄에서 탔다. 공항 출국심사를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 영어로 모든 과정을 거쳐야하니 직원도 나도 힘들었지만 어찌어찌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올랐다. 몇 시간 뒤 모스크바에 도착해 비행기를 갈아타고 길고 지루한 시간 끝에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지도 못한 비상사태

이제 입국심사만 받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국심사대에서 리턴티켓도 없는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방문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취업비자도 아닌데 ‘일하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는 터라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어서 직원은 어디에 갈 것인지, 무엇을 볼 것인지 등을 집요하게 물었고 정보가 별로 없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테러가 일어나 유럽 전역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이 닿아있는 나라를 여행하다 갑작스럽게 온, 영어도 잘 못하고 수염도 덥수룩하고 캐리어가 아닌 찢기고 구멍 난 배낭을 멘 동양인에게 공항 직원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답이 없는 상황이라 더 긴장해서 대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잠시 기다리라는 직원의 말을 따라 입국심사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공항경찰 두 명이 내 두 팔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도착한 곳은 티브이와 소파 등이 있지만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대기실 같은 곳. 핸드폰과 배낭을 모두 뺏기고 아랍인과 동양인, 흑인이 몇 명 있는 곳에 갇혔다.

자투리 여행정보 61. 게스트하우스 스텝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에는 한인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를 여행하는데 현지에서 살고 있는 숙소 주인이 한국인이면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많은 사람이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

숙소 주인 대부분은 현지에서 다른 직업이 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직접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인 여행자를 아르바이트 개념의 스텝으로 뽑기도 한다. 현지에서 오랜 시간을 생활하며 숙식을 해결할 수 있고 여행 경비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어 일하려는 사람이 많다.

오랜 시간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데 비용이 걱정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봐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법적으로 노동자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 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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