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47. 아스타나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47.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

거주지 등록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신도심은 계획도시인 만큼 정돈된 대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구도심은 예전에 카자흐스탄 북부지역 구심점이었던 만큼 많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아스타나에서 며칠 동안 돌아다니며 휴식 겸 여행을 하기로 했다. 하루 숙박비가 6600원 수준인 데다 묵고 있는 객실이 고층에 있어 도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에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다.

비가 오고난 뒤 숙소 테라스. 아스타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선 거주지를 등록하기 위해 아스타나 이민국을 찾았다. 과거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었던 국가들은 거주지를 등록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소련에서 국민들의 이동 등을 파악하고 통제하기 위한 제도였다고 하는데 여전히 남아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1주일 이상 머물 경우 거주지를 등록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출국 시 벌금을 엄청나게 뜯긴다는데, 기간 등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지만 수백 달러는 내야 한단다.

귀찮은 일이지만 등록이 어렵지는 않다. 호텔 급 숙소에서는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있다지만 내가 묵는 숙소는 호텔이 아니기에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마음씨 좋은 주인 아저씨는 이민국까지 가는 길을 알려주며 숙소에 있는 프린터로 신청서를 출력해 러시아어로 쓰여 있는 신청서를 영어로 번역하며 작성법을 알려준다.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민국에 가서 신청서를 제출하고 거주지 등록을 마쳤다. 겁을 먹었는데 별 게 없다. 줄서서 기다린 후 여권과 신청서를 제출하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이걸로 카자흐스탄에서 오래 머물러도 벌금을 물지 않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아스타나를 하나하나 즐기는 것뿐이다.

한식당과 소주 한 병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길에는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공원을 굳이 찾지 않아도 나무와 꽃 등이 길에 가득하다. 공원으로 들어가면 더 깨끗하고 맑은 자연이 펼쳐진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아스타나지만 딱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다. 바로 교통체증이다.

도로가 넓은데도 어느 시간대만 되면 차들이 꽉 들어차는데, 모든 차들이 경적을 마구 울린다. 도로가 막히는 시간에 인도를 걷는데 경적소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이 나라에서는 자동차를 팔 때 경적을 떼어버리고 팔아야할 것 같다.

이 때문에 차가 없는 광장이나 공원을 더 찾게 된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하며 여행을 즐기다 한식당을 찾았다.

아스타나 최고의 쇼핑몰이라는 ‘한 샤티르(Хан Шатыр)’를 들러 구경하다가 쇼핑몰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세계 여러 나라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줄지어서있다.

소라 껍데기 같이 생긴 한 샤티르. 안에는 온갖 명품점이 있고 고급 식당도 있다.

처음에는 신기하다는 생각만 하면서 걸었는데, 이곳이 여러 나라의 음식을 파는 식당가라는 것을 안 뒤에는 한식당을 찾기 위해 눈을 열심히 굴렸다.

한국 음식이 정말 먹고 싶다. 한국을 떠난 지 고작 두 달이 조금 넘었지만, 한국 음식이 매우 그립다. 가장 먹고 싶은 것은 바로 소주. 김치찌개는 물론 얼큰한 짬뽕이나 해산물 등도 먹고 싶지만 제일은 소주다.

한식당에 가면 소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찾다가 익숙하게 생긴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생김새는 조금 이상하지만 지붕은 분명 기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식당이다.

아스타나의 한식당.

짬뽕과 공기밥, 소주 한 병을 시켰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쓸 정도로 식당 규모가 굉장히 크다. 고급 식당인지 가격도 만만하지 않다. 소주 한 병이 약 1만 3000원. 손이 덜덜 떨리는 가격이다.

잠시 후 나온 짬뽕은 한국에서 먹던 것만큼 얼큰하지 않은 데다 향신료 맛이 강해 실망스럽지만, ‘향수’라는 조미료로 양념해서인지 맛있다.

그리고 대망의 소주. 웨이터가 쟁반에 들고 온 익숙한 초록빛 병은 에메랄드보다 더 영롱하다.

‘까드득’ 뚜껑 돌리는 소리와 소주를 잔에 따르는 소리. 친구와 건배하고 한 모금 마시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소주의 쓰디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병 속 소주가 점차 주는 것이 아쉬워 조금씩 나눠 입 안에서 돌려가며 와인을 먹듯 마신다. 한 병을 더 먹기에는 너무 비싸다. 아쉬움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산, 소주보다 절반은 저렴하고 두 배는 양이 많은 보드카로 아쉬움을 달랬다.

카자흐스탄의 노래방

다음날은 숙취에 시달리며 일어나 숙소에서 낮 시간을 보냈다. 라면을 끓여서 테라스에서 아스타나의 경치를 바라보며 먹은 후 그동안 찍은 사진 등을 정리했다.

테라스에서 끓여 먹은 라면. 경치가 아주 좋다.

그동안 낮에 많이 돌아다녔으니 오늘은 야경을 보러 돌아다닐 차례다.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할 무렵 밖으로 나갔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단도도 챙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위험한 일은 없었다.

조명이 어우러진 아스타나는 낮에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화려하다. 조명을 잘 활용해 화려하면서도 요란하지 않은 우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시 아스타나는 멋지다. 나중에 꼭 다시 와야겠다.

아스타나의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하는 다리. 아래로는 이심강이 흐른다.

미리 봐둔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는데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알마티가 굉장히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었다.

갑자기 참석하게 된 파티. 내 앞자리에 있는 인도 아저씨는 보드카 몇 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금세 취해서 곯아 떨어졌다.

술집 사장은 우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일도 함께 놀지고 한다. 그러자고 약속을 잡았다. 다음날 다시 찾은 술집에서 피자와 생선, 고기 등 온갖 음식을 대접받고 함께 노래방에도 갔다.

카자흐스탄의 노래방은 우리나라처럼 한 방에 한 팀이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넓은 홀에 테이블 여러 개가 있고 테이블마다 돌아가며 한 곡씩 부른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거라 어색할 법도 하지만, 노래가 끝나면 모든 테이블에서 박수를 쳐주며 함께 어우러진다.

카자흐스탄 노래방의 모습. '카라오케'라고 부른다.

외국 노래뿐이라 내가 부를만한 노래가 없어서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부른 노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모든 사람이 이 노래를 안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이 노래를 완벽한 발음으로 부르는 내가 신기했는지, 다 부르고 나니 박수와 함께 엄청난 환호를 보낸다. 나와 인사하기 위해 여러 테이블에서 모여들 정도다. 갑자기 주인공이 됐다.

함께 온 술집 사장이 ‘한국에서 바이크를 타고 온 사람들’이라고 우리를 소개하자, 우리에게 관심을 더욱 보인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서 한 번씩 우리 테이블을 들렀다 가는 바람에 술을 계속 마셔서 만취 상태로 숙소에 겨우 들어갔다.

아스타나 일본대사관에서 소녀상을 들다

다음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종일 시간을 보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일기도 썼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하루를 더 쉬고 호스텔을 나왔다.

숙소 주인 부부

이르쿠츠크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호스텔만큼 정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아스타나에 온다면 꼭 이 호스텔을 이용하겠다고 다짐하며 숙소 주인들과 인사하고 나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아스타나 일본대사관. 몽골에 이어 두 번째 일본대사관 방문이다. 몽골에서는 혼자였지만 아스타나에서는 함께하는 친구가 있어서 덜 떨린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아스타나를 달려 일본대사관으로 갔다.

아스타나 일본대사관은 몽골 일본대사관처럼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큰 건물 하나에 여러 나라 대사관이 모여 있다. 휴일이라 그런지 철문이 닫혀있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철문 앞에서 피켓과 소녀상을 들었다.

아스타나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에서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치운다는 얘기가 한참 나오고 있다. 누군가는 잊히길 바라는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아무리 소녀상을 치우려 해도 소녀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스타나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상

 

자투리 여행정보 47. 아스타나

아스타나의 조형물. 뒤에 보이는 건물은 국제무역센터 같은 기능을 한단다.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는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6도로 세계에서 가장 추운 수도 중 하나로 꼽힌다. 현지에서 만난 술집 주인의 말로는 추울 때는 영하 60도에 이를 때도 있단다. 날씨가 추운만큼 2010년에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리기도 했다.

알마티가 수도이던 시절 불리던 이름은 첼리노그라드였는데, 수도가 바뀌면서 아스타나로 이름도 바뀌었다. 1997년 수도로 지정되며 계획된 신도심과 그 이전 구도심의 조화도 잘 이뤄져있다. 직접 경험해본 아스타나는 굉장히 깨끗하고 잘 정돈된 모습이다.

아스타나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머물렀던 숙소에도 있다. 저렴한 가격에 깔끔하고 경치 좋은 숙소를 이용할 수 있어서 아스타나 여행이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숙소 이름은 ‘호스텔 아스타나’다. 아스타나 방문 계획이 있다면 이 숙소를 이용해보길 추천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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