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33 - 모터사이클의 종류(3) 레플리카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3. 몽골의 오프로드

사막에서 맞이한 아침

노을에 정신이 팔려 다 불어버린 라면을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먹은 뒤 텐트에 들어가 곧장 잠들었다. 하지만 추워서 몇 번이나 잠을 깼다. 낮에는 더울 정도로 날씨가 좋더니 밤이 되니 이가 달달 떨릴 정도로 춥다. 랜턴을 켜고 배낭에서 옷을 꺼내 있는 대로 다 껴입은 후에야 겨우 잠들었다.

따뜻해졌나 싶어 잠들었는데, 이번엔 온몸에 땀이 흥건해져 깼다. 너무 더워 급하게 옷을 벗은 후 밖으로 나가니 햇빛이 강하다. 반팔 하나만 입고 어제 라면 끓였던 코펠을 물티슈로 슥 닦아 다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노을로 붉던 하늘은 다시 푸른색을 되찾았다. 러시아와는 확연히 다를 몽골에서 여행이 더욱 기대된다.

아침에 만난 몽골 현지인

텐트를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멀리서 바이크 한 대가 다가온다. 처음엔 여행자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짐이 하나도 없는 게 여행자 차림이 아니다. 내가 전날 그렇게 고생했던 사막을 유유히 가로질러 내 근처에 온 라이더는 몽골 현지인이었다.

그는 내게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몽골어는 한 단어도 몰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혼자라는 것이 두렵기도 해 대충 웃어넘기며 자리를 얼른 떠났다.

바양홍고르의 Seoul(서울)호텔

도로를 건너는 양떼

출발하고 한동안은 도로가 이어져 있어서 이동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가끔씩 도로 위로 양떼들이 지나가서 한참을 멈춰 있어야 하는 것 말고는...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규모가 제법 큰 도시가 나온다. 지도를 보니 바양홍고르. 내가 달려온 포장도로는 아마 이 도시까지 이어지는 길인가보다.

아직 해가 떠있는 시간이어서 조금 더 달려보려고 마켓에 들러 물과 빵을 산 후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넣고 곧바로 도시를 통과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가 도시의 건물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 도로가 갑자기 끊겼다. 순간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생각했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는 없다.

아! 이제 진짜 몽골의 시작이구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려니 겁이 덜컥 난다. 게다가 바양홍고르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고 폭신한 침대가 있는 숙소도 있을 것 같다. 남은 돈 생각에 조금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지금 오프로드로 나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하루 쉬어 가기로 했다.

다시 바양홍고르로 돌아가 숙소를 찾는데 익숙한 영어 간판이 보였다. 영어라서가 아니라 그 단어가 너무나 익숙했는데, 숙소 이름이 Seoul, 서울호텔이다. 건물에는 식당도 있고 카페도 있다.

바양홍고르의 Seoul(서울) 호텔

한국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영업하는 건가? 반가운 마음에 바이크를 세운 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름만 ‘서울’일 뿐, 몽골 현지인이 맞이했다. 이름이 왜 ‘서울’인지 물어보려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포기하고 가장 저렴한 방을 하나 달라고 했다.

직원은 내게 영어가 적혀있는 가격표를 보여줬는데, 하룻밤에 우리 돈으로 5만원이나 한다. 몽골 물가를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가격표를 꺼낸 것 같다. 2만원(한화)으로 해달라고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너무 비싸 여기에서 못 있겠다고 나가는 시늉을 하자, 한숨을 푹 쉬더니 그냥 들어오란다. 가격흥정을 성공하니 이제 베테랑 여행자가 됐다는 생각에 으쓱해진다.

고맙다고 악수하곤 그의 안내로 방에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라면을 하나 먹고 나니 전날 추위 때문에 잠을 설쳐서인지 졸음이 쏟아져 씻지도 않은 채 잠이들었다.

제법 익숙해진 몽골의 오프로드

푹 자고나서인지 개운하다. 일어나 미리 사둔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후 샤워하고 숙소를 나왔다. 이제 진짜 몽골의 오프로드를 만날 때다. 긴장과 기대를 품고 짐이 떨어지지 않게 평소보다 더 꽁꽁 묶은 후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빨래판길이 나타난다. 몽골의 오프로드를 찾아볼 때 가장 걱정했던 던 것 중 하나인 빨래판길. 길이 빨래판처럼 돼있어 ‘덕덕덕’ 하는 진동에 손목부터 목까지 아파 올 정도다. 속도를 줄이면 오히려 중심 잡기가 더 어려워 적당히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몽골 대 초원의 오프로드. 정말 길이 험한 곳에서는 사진을 찍을 정신이 없었다. 이 사진에 나오는 길을 굉장히 양호한 길이다.

와! 진짜 시작이구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엉덩이가 너무 아파 일어나서 바이크를 탔다.

어느덧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이 보이는 대초원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한참동안 계속되던 빨래판길이 끝나자 이제는 모래밭길이다. 빨래판길을 달리기 위해 속도를 유지하던 상태에서 갑자기 나온 모래밭에 중심을 잃고 넘어져버렸다.

몽골을 통과하는동안 셀 수 없이 많이 넘어졌다.

몽골 여행의 첫 번째 사고.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넘어지면서 바이크에 다리가 깔려 오른쪽 발목이 조금 저릿하다. (이때 다친 발목이 1년이 넘게 괴롭힐 줄 이때는 몰랐다.)

신음소리를 내며 바이크에 깔려있는 다리를 겨우 빼내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괜히 서럽다. 우울함을 떨치려 소리를 크게 지르며 있는 대로 욕을 했다.

어차피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넓은 초원에 온전히 나 혼자다.

겨우 힘을 내고 일어나 헬멧을 벗은 후 바이크를 일으켜 세웠다.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메아리조차 없다.

기분이 이상하다. 더 이상 이대로 있다가는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아 이어폰을 끼고 다시  출발했다. 빨래판길과 모래길, 자갈길이 번갈아 나온다.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양과 말, 소들만이 여유롭다.

유유자적 여유로운 소

몇 번이나 넘어지길 반복하다보니 오프로드도 제법 익숙해졌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게 아니라 스로틀을 계속 감았다 놨다 반복해야 한다. 특히, 중심을 잃겠다 싶을 땐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스로틀을 더 감아서 빠져 나와야 한다.

몽골 초원에서 느낀 자연의 신비

잠시 쉬려고 바이크에서 내리면 메뚜기와 파리들도 보인다. 조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초원에도 생명이 있다는 게 신비롭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몽골 초원에 있는 풀은 굉장히 억세다는 것이다. 아마 물이 많이 없는데다가 소와 말, 양들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진화한 것이리라. 잠시 쉬기 위해 멈춘 것뿐인데 자연의 신비를 느낀다.

다시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 같기도 한 굉장히 구린 냄새.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게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조금 더 달리니 저 멀리 거대한 동물 한 무리가 있다.

처음엔 소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낙타다. 신기해서 바로 옆에 바이크를 세웠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꿈쩍도 안 한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쌍봉낙타'

이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데다, 크기가 소의 두 배는 돼 보인다. 낙타가 발차기라도 하면 죽겠구나. 동물원에서 봤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바로 옆에 있으니 무서울 정도다.

자세히 보니 귀에 번호표가 달려있는 게 야생낙타는 아닌가 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야생과 별 차이도 없겠지만 말이다.

낙타가 너무 커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 사진을 남겼다.

낙타를 뒤로하고 다시 오프로드를 달렸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이 넘어졌는데, 속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다.

조금씩 몽골에, 오프로드에,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지며 넓은 초원을 홀로 달렸다.

자투리 여행정보 33 - 모터사이클의 종류(3) 레플리카

가와사키의 NINJA H2(왼쪽), BMW 모토라드의 S1000RR(오른쪽)(사진출처ㆍ가와사키, BMW 모토라드)

레이서 레플리카, R차라고도 불리는 바이크다. 자동차로 치면 스포츠카라고 볼 수 있는데, 레이싱 경주에서 주로 쓰이며 빠른 속도를 내는 것에 특화된 바이크다. 가와사키의 닌자 시리즈, 혼다의 CBR 시리즈, BMW의 S1000RR, 스즈키의 하야부사, 야마하의 R1 등이 대표적이다.

큰 배기량의 레플리카 바이크의 경우 슈퍼카와 필적하는 성능을 자랑하기도 한다. 최고 속도가 300km/h를 훌쩍 넘는 바이크도 많다. 주로 경기용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코너링과 속도에 초점이 맞춰져있고, 라이딩 자세도 앞으로 엎드려 공기저항을 최대한 받지 않게 한다. 한마디로 가볍고 빠른 바이크다

그만큼 장거리 여행에는 가장 부적합할 수 있는 바이크이기도 하다. 자세가 불편하고, 연비도 나쁘며 짐을 많이 싣기도 어렵다. 오프로드에선 거의 달릴 수 없다.

하지만 라이딩을 온전히 즐기기에는 이만한 바이크도 없다. 짐이야 줄이면 그만이고 오프로드는 안 가면 된다. 뻥 뚫린 유라시아 대륙을 가장 빠른 속도로 가를 수 있는 바이크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