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44. 바이크 여행 장비-헬멧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44. 가자!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찾아온 이별

형님들과 술자리에서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한여름에도 눈이 내린다는 해발 4000미터가 훌쩍 넘는 파미르고원을 지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움직여야한다.

다음날 아침, 호텔 뷔페식을 먹는다. 라픽도 여기서 돌아간단다. 아쉬움이 가득한 식사가 끝나고 라픽이 먼저 떠난다. 라픽이 버스를 타는 곳까지 짐을 들고 배웅했다. 그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그의 어설픈 한국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라픽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안 돼’와 ‘머리 없어’다. 생각이 없다는 뜻인데, 내가 바이크를 타고 파미르에 간다고 할 때 라픽은 “너 머리 없어. 겨울에 거기 가면 죽어. 안 돼”라며 고개를 젓곤 했다.

방을 같이 쓰며 러시아 문화와 일상을 배우기도 했고, TV에서 나오는 러시아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기도 했다.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그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라픽을 배웅해주던 버스정류소에서. 라픽은 SNS도 하지 않고 내 연락처도 모른다. 이날 이후로 연락을 한 적도 없고 소식을 들은적도 없다. 어떤모습으로 어디에 있던, 그가 행복하길 바란다.

라픽과 악수하고 인사한 뒤 그가 버스에 타는 모습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다.

배낭에 짐을 차곡차곡 챙겨 넣고 밖으로 나오자, 형님들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형님들한테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함께 있는 동안 먹은 음식과 숙소비만해도 굉장히 많은데, 떠나가기 전 녹용주와 함께 5000루블(약 9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어 주신다.

값으로 따져도 굉장하지만 그보다 형님들의 마음이 더 고맙다. 함께 한 시간과 우정은 비례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만나서 어떤 것을 함께 했는지에 따라 그 깊이는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형님이 주신 편지를 들고.

몽골에서 우연히 만나 노보시비르스크까지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형님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려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야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이제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현지인들은 카자흐스탄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카작스탄’이라고 말한다. 알파벳을 보니 ‘kazakhstan’이다. 라픽이 알려준 발음대로 나도 ‘카작스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카작스탄을 지나 키르키즈스탄과 타지키스탄을 잇는 파미르고원으로 갈 계획이다. 파미르고원은 평균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자 몽골과 함께 내 여행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한여름인 8월에도 눈이 내린다는데, 지금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도착해야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약 650킬로미터 떨어진 옴스크라는 도시다. 카작스탄과 국경이 가까운 곳. 하루 만에 가기에는 조금 무리해야하는 거리지만 노보시비르스크에 들어올 때 1000킬로미터도 이동했던 터라 이정도면 가뿐하다.

한국에서 650킬로미터라면 아마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가 400킬로미터니 그보다 훨씬 더 먼 거리다. 하지만 이 거리를 바이크를 타고 하루 만에 이동하는 게 익숙해졌다. 물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며, 두려움이 생기기도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형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다. 해가 쨍쨍하고 따뜻한 날씨라 달리기 적당하다. 아침으로 먹은 조식뷔페에 배도 든든하겠다, 기름도 가득이고 좋은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에 컨디션이 좋다.

옴스크로 향하는 길, 비슷하지만 또 새로운 자작나무 숲이 반긴다.

옴스크의 ‘도스토예프스키 호스텔’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달렸다. 한국에서 같이 출발해 초반에 러시아 여행을 함께한 동갑내기 친구 한 명이 카작스탄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시간대가 맞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옴스크로 달리는 길이 더 즐겁다.

그 친구가 옴스크에서 머물렀다는 숙소의 좌표를 알아뒀다. 그 친구나 나나 돈이 없어 가격을 가장 우선으로 숙소를 고르기에 그가 머무른 곳이라면 나에게도 알맞은 숙소일 것이다.

엉덩이와 손목을 거쳐 온몸으로 전달되는 진동을 느끼며 바람을 가로지른다. 몸의 중심을 조금씩 바꿔 코너를 돌고 손목의 작은 움직임으로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게 속도를 올리기도 한다.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던 비오는 길에서는 바이크 여행이 힘들기만 했지만, 차를 타면 맛볼 수 없는 바이크만의 매력에 다시 흠뻑 빠진다. 그 덕에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노을이 질 때 쯤 옴스크에 도착했다.

노을이 지는 옴스크.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지나가서 멈춰있는 중에 찍은 사진.

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오후에 도착한 숙소 이름은 러시아의, 아니 세계적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을 그대로 딴 ‘도스토예프스키 호스텔’이다.

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공장에 다니다가 공과대학에 진학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나에게도 아주 익숙할 만큼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가인 도스토예프스키.

최고의 과학자라는 아인슈타인도 ‘어떤 과학자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정도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미뤄 짐작한다. 작은 마을에 있는 호스텔까지 그의 이름을 딴 걸 보면, 러시아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나보다.

옴스크의 도스토예프스키 호스텔 간판.

숙소 안으로 들어가니 커플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나를 맞는다. 숙소는 적당히 깔끔하고 그만큼 저렴하다. 방 몇 개가 있고, 그 안에는 2층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침대는 싱글사이즈보다 작아보였지만 사방이 막혀있어 오히려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간단하게 샤워한 후 근처 마트에서 라면과 맥주를 사와 저녁을 해결하고 곧장 잠들었다.

옴스크에서의 저녁. 저 맥주는 같은 브랜드라도 한국에서 먹는것과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러시아쪽이 훨씬 진하고 맛있다.

카작스탄 국경 관문은 어드메뇨?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한다. 카작스탄 국경을 넘어 ‘콕셰타우’라는 도시로 갈 예정이다. 친구도 같은 날 그곳에 도착할 예정이라,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거리는 약 450킬로미터로 멀지는 않지만 국경을 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일찍부터 준비했다. 친구가 도스토예프스키 호스텔에 놓고 갔다는 신발도 챙겼다.

친구가 호스텔에 놓고왔다는 신발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바이크에 짐을 동여매고 카작스탄 국경을 향해 출발했다. 국경까지는 150킬로미터 정도로 쉬엄쉬엄 가도 두 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다.

가는 길에 주유소에서 멈춰 기름을 넣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핫도그 세트를 아침으로 먹었다. 여기 편의점도 할인행사를 많이 하는지, 핫도그를 먹으면 콜라를 50% 할인한단다. 콜라까지 곁들였다.

콜라 50%할인 행사를 하는 핫도그

핫도그 양이 넉넉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마음이 급해 서둘러 출발했다. 잠시 후 멀리 국경의 모습이 보인다. 드디어 국경이구나. 또, 새로운 나라 카작스탄으로 들어가는구나. 가슴이 설레면서도 걱정도 된다. 몽골과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떡하지.

설렘 반 긴장 반의 기분으로 닫힌 국경 철문 앞에 서니 무장한 군인들이 다가온다. 준비해둔 여권을 꺼내 ‘한국에서 온 여행자이고, 카작스탄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가 출입국 심사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젊은 군인은 내게 러시아어로 뭐라고 설명하더니 여권을 갖고 초소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과 내 여권을 들고 얘기한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슬슬 불안해진다. 잠시 후 그 군인이 내게 오더니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이곳은 러시아와 카작스탄 현지인들만 통과할 수 있단다. 

150킬로미터를 달려왔는데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니. 몇 번을 사정해봤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지도를 꺼내 내가 갈수 있는 가장 가까운 국경을 알려줬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짜증났지만, 그가 친절하게 설명해준 덕에 화를 삭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가 알려준 가장 가까운 국경은 옴스크로 돌아가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왕복 300킬로미터를 오가는 시간을 허비하게 됐다. 기다릴 친구를 생각하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옴스크로 이동해 아침에 나온 호스텔로 갔다. 호스텔에서 와이파이를 잡고 친구에게 내 사정을 전달한 다음 ‘아마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다. 콕셰타우의 코파호수 근처로 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낸 후 국경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약속 장소까지는 조금 더 먼 500킬로미터 정도 거리다. 아침 일찍 출발해 300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해는 하늘의 가운데 떠있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 연락이 없는 친구를 뒤로하고 국경을 향해 달렸다.

자투리 여행정보 44. 바이크 여행 장비-헬멧

내가 선택한 헬멧. MT helmet의 Blade SV 모델. 내가 여러번 사고가 났음에도 안전하게 나를 지켜줬다. 환기 기능과 이너바이저가 있고, 김서림방지 필름을 따로 부착했다. 가격은 10만 원 후반대.

바이크 여행을 준비한다면 바이크가 첫 번째 고민일 것이고, 그 다음은 장비일 것이다.

바이크 기종은 지난번에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장비를 알아보자. 우선 바이크 여행의 필수품인 헬멧이다. 헬멧은 가장 중요한 안전장비이자, 늘 착용해야하는 장비이기에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바이크 헬멧에는 머리와 안면 전체를 감싸는 ‘풀 페이스’ 헬멧과 턱과 안면부가 노출된 ‘오픈 페이스’ 헬멧, ‘반모’라고도 불리는 ‘하프 페이스’ 헬멧 등이 있다.

헬멧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안전이기에 풀 페이스 헬멧을 추천한다. 오픈 페이스 헬멧까지는 괜찮을 수 있지만, 하프 페이스 헬멧은 절대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안전 이외에 여러 기능을 고려해야한다. 특히 환기 기능과 김 서림 방지 기능, 이너 선바이저 기능(선글라스 기능)은 필수다. 아울러 풀 페이스 헬멧을 하루 종일 쓰고 있으려면 환기가 잘돼야한다.

비오는 날에 헬멧 안에 김이 서리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한다면 매일 오후마다 따가운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달려야한다. 이너 선바이저를 선글라스로 대체할 수 있겠지만 헬멧에 선글라스까지 쓰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비싼 헬멧은 가볍고 안전하며 기능이 많지만, 가격이 수백만 원까지 하기에 선택이 쉽지 않다. 꼼꼼한 제품정보 검색으로 좋은 헬멧을 선택하길 바란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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