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9. 파미르를 지나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9. 파미르를 지나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5.1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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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59. 두샨베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9. 파미르를 지나다

와칸계곡을 따라

호루그에서 며칠간 휴식한 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로 떠날 채비를 한다. 두샨베까지 거리는 약 520km. 파미르고원의 오프로드를 감안하면 하루 안에 도착할만한 거리는 아니다.

캠핑이 불가피하기에 식량과 바이크 기름을 사느라 오후가 돼서야 호루그를 떠나 강 건너로 아프가니스탄 땅이 보이는 와칸계곡을 따라 달린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 닿은 와칸계곡. 강 건너는 아프가니스탄 땅이다.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 닿은 와칸계곡. 강 건너는 아프가니스탄 땅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무섭고 잔인한 사람만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어디를 가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고 나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거리가 50m도 채 안 되는 강 건너 땅을 갈 수 없다니 괜히 반감이 생겨 강을 슬쩍 건너가 흙이라도 한 줌 퍼올까 생각했지만, 그것 때문에 높은 절벽을 내려가 강을 건너기는 싫었다.

굉장히 좁고 위험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풀 한 포기 보기 힘들 정도로 삭막하다. 깨진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절벽을 끼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른다. 땅이 무너져 내려 차로는 운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도 있다.

산을 둘러 이런 길이 계속됐다. 땅이 무너져 내려 이보다 더 좁은 길도 많다.
산을 둘러 이런 길이 계속됐다. 땅이 무너져 내려 이보다 더 좁은 길도 많다.

옆으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강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절벽. 중간에 조금 넓은 자리가 나오면 멈춰서 물을 마시고 잠시 휴식한 후 다시 출발하길 반복한다.

불안한 캠핑

늦게 출발해서인지 해가 금방 떨어진다. 지도를 보니 도시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텐트를 치기 위해 길 옆 경사가 완만한 언덕 위로 바이크를 몰아 올라갔다. 
텐트를 가릴 나무나 바위 등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조금 걸리지만 이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는 황량한 언덕 위, 텐트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땅이 보인다.

어둑해진 저녁. 아프가니스탄 땅이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서 캠핑을 했다.
어둑해진 저녁. 아프가니스탄 땅이 정면으로 보이는 언덕 위에서 캠핑을 했다.

초코바만 먹으며 왔더니 힘이 나질 않아 우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라면을 코펠에 넣고 한참 끓이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갈색 SUV 차량이 다가온다. 이내 텐트 옆에 멈춘 차에서 군인 두 명이 내리더니 말을 건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캠핑하면 안 된다며 당장 떠날 것을 요구하는 게 분명하다. 힘들게 자리를 잡아 텐트를 쳤고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어딜 가란 말인가. 더구나 해도 저물기 시작했는데 말이다. 하룻밤만 여기서 자고 아침에 떠나겠다고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자, 반드시 떠나야한다고 거듭 말한다.

실랑이를 한참 한 뒤에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뢰가 묻혀 있다는 것. 강 건너 아프가니스탄과 분쟁이 있는 지역인 듯했는데, 땅에 지뢰가 있고 건너편에서 총을 쏠 수도 있으니 당장 떠나야한단다. 게다가 늑대가 있는 곳이라 위험하단다.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 나서 진짜 떠나야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끓고 있는 라면이 너무 아깝다. 하룻밤만 이곳에서 지내고 아침 일찍 떠나겠다고 애원하자, 여권을 보여 달란다. 보여주자 사진을 찍고 다음날 바로 떠나야한다며 돌아선다.

만찬을 망친 그들이 가고 난 후 불어터진 라면을 먹는다. 너무 많이 불어 씹지 않고 삼켜도 될 정도다. 라면을 먹는 동안 해가 지자 반대쪽 언덕에 군 초소처럼 보이는 희미한 불빛과 사람들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저들과 함께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군인들이 불안한 소리만 잔뜩 하고 가서인지 바람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오른손에는 도끼, 왼손에는 단도를 잡고 한참을 불안해한 뒤에야 잠들었다.

두샨베를 향해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니 내가 왔던 길이 보인다.
산길을 올라 정상에 오르니 내가 왔던 길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짐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짐 정리를 끝내고 언덕을 내려가면서도 지뢰를 밟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이어진다. 파미르를 지나면서 단단해졌다고 자부했는데 군인들의 말 몇 마디에 이렇게 불안한 것을 보니 나는 여전히 쉽게 흔들린다.

다시 나선 길은 전날과 같다. 돌산을 둘러 만들어진 꼬불꼬불한 길. 스로틀을 최대한 감아야 겨우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언덕도 나온다.

높이 올라가니 ‘탈딕패스’처럼 눈이 잔뜩 쌓인 길도 나온다. 하도 많이 봤더니 이젠 별로 무섭지 않다. 대신 그동안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아름답고 장엄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눈 쌓인 산봉우리만 가득한 곳. 아마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이곳을 그리워하겠지. 다시 보기 힘든 풍경을 하나하나 새기듯 눈에 담는다.

눈이 쌓인 와칸계곡의 정상
눈이 쌓인 와칸계곡의 정상

그렇게 언덕 몇 개와 산을 넘으며 두샨베로 향한다. 오프로드 상태가 매우 나쁘고 산 정상에는 눈이 많아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저녁 무렵에야 포장도로를 만났다. 며칠 만에 만난 포장도로인가? 신이 나서 해가 지는 것도 무시하고 스로틀을 감는다. 아주 깜깜한 밤에야 미리 알아둔 두샨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파미르를 지나다

철문 안으로 바이크를 끌고 들어가 세운 후 가장 싼 다인실에 짐을 풀었다. 거실에는 두샨베에서 출발해 파미르를 여행하려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대화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슬쩍 껴서 내가 다녀온 파미르를 이야기해주며 맥주 한 캔을 얻어먹은 후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낮에 먹을 것을 살 겸 두샨베 시내를 잠깐 구경한 것 말고는 숙소에 계속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날 바이크 수리점을 찾아 나섰다. 수도여서인지 수리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 오일을 교환하고 수리를 마쳤다.

내친김에 수리점 옆에 있는 세차장에서 세차까지 했다. 체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진흙이 깨끗하게 씻겨나가자 바이크 곳곳에 난 상처가 보인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 모습과는 딴판이다. 너도 나만큼 힘들었겠구나. 친구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피어난다.

타지키스탄의 바이크 수리점
타지키스탄의 바이크 수리점
세차를 마친 바이크
세차를 마친 바이크

이번 여행의 최고 목적지인 파미르를 완전히 지났다. 이제 다시 계획을 세워야한다. 우즈베키스탄을 지나 러시아로 다시 나갈까, 아니면 키르기스스탄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하다  키르기스스탄을 택했다. 

우즈베키스탄을 가보고 싶지만 무비자 국가가 아닌 데다 비자 발급 비용이 만만치 않다. 파미르고원이 아닌 다른 길로 키르기스스탄 오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몽골과 파미르고원을 지나며 수도 없이 넘어졌고, 그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고 흔들렸다. 수도 없이 한계에 부딪혔고 그 한계를 깨고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한계를 경험해야 비로소 그보다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알았으며 그걸 넘어선다고 세상이, 내가 전과 다른 모습으로 한 번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겨우 내딛은 한 걸음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당장은 해석할 수 없는 그 경험을 머릿속에, 가슴속에 쌓아둔 채 두샨베의 나날을 보냈다.

자투리 여행정보 59. 두샨베

두샨베 광장
두샨베 광장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는 약 70만 명이 살고 있다. 타지크어에서 두(du)는 두 번째, 샨베(shanbe)는 토요일이라는 뜻이다. 토요일에서 두 번째 날인 월요일이라는 뜻으로, 월요일에 시장이 서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옛 소련 시절에 발달한 신흥 도시로,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스탈리나바드로 불렸다. 중앙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타지크ㆍ우즈베크ㆍ타타르ㆍ러시아ㆍ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타지크인이 주류를 이룬다.

여름 최고기온은 35도 정도, 겨울 최저 기온은 영하 2~3도 정도로 따뜻한 편이며, 타지키스탄 공업 생산량의 3분의 1이 두샨베에 집중돼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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