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41. 알타이공화국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41. 다시, 러시아

7시간 30분

몽골과 러시아 국경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줄이 줄어들길 기다린다. 앞에 대기하는 자동차가 별로 없는데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국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국경에서 절차는 몽골에 들어올 때와 비슷하다. 가지고 있는 서류를 몽땅 꺼내 준비한 뒤 여권과 함께 내밀며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알아서 가져가세요’ 하는 시늉을 하면서 절차를 하나씩 밟는다.
느릿느릿 절차를 밟다가 짐 검사를 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분명 우리 일행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먼저 검사를 마치고 가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그냥 ‘우리가 여행자여서 꼼꼼하게 검사하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짐 검사를 위해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우리 쪽은 거들떠보지 않고 다른 차량들만 검사한다.

직원에게 물어봐도 순서가 아직 아니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어디 가지도 못하고 바로 앞에서 대기하다가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짐 검사를 받는다.

다음에도 이런 일은 계속 이어진다. 서류를 검사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받고 끝난다. 항의해도 못 들은 척이다. 짜증이 슬슬 올라온다. 새벽에 숙소에서 출발해 아침 일찍 국경에 들어왔는데 오후가 되도록 서류 검사만 하고 있다.

가지고 있던 초코파이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항의하러 가겠다던 형님 한 분이 화가 잔뜩 나서 돌아온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우리보다 뒤에 온 사람들이 검사관에게 돈을 주고 새치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먼저 간 이유가 이거구나. 경찰 등 공무원들이 부패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국경에서까지 이런 행위를 할 줄이야. 해도 해도 너무한다.

국경에 들어선지 7시간 30분만에 만난 러시아. 간판의 아래 문양은 알타이공화국의 상징이다.

그 후로도 절차 하나를 통과하는 데만 한두 시간은 걸렸다. 결국 국경에 들어선지 7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검사가 끝났다. 오후 늦게야 겨우 러시아 땅을 다시 밟는다.

바이크를 타고 러시아로 가는 마지막 철문을 통과하며 온갖 욕은 다 했다. 그리고 스로틀을 잔뜩 감아 최대한 빠른 속도로 국경을 통과했다.

일리나의 집으로

원래 목적지는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시간이 늦어서 목적지까지 도저히 갈 수 없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나온 알타이자치공화국의 작은 마을인 코쉬-아가취에서 숙소를 잡았다. 주차하고 간단하게 짐을 푼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주변을 돌아다니다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라픽이 알려준 칸판이라는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고수향이 나긴 했지만 정말 맛있었던 칸판

칸판은 쇠고기와 감자, 당근 등을 볶아 국물을 내서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인데, 고수만 빼면 굉장히 맛있다. 러시아 음식은 다 좋은데, 이 고수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함께 여행하는 러시아인 라픽에게 부탁해 고수를 빼달라고 주문했는데도 조금은 뿌려져 있다.

김치찌개에 파를 빼고 달라는 것과 같은 느낌인가, 싶지만 그래도 고수가 입에 맞지 않는다.  밥 위에 올라가 있는 고수를 살살 긁어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음식을 마저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들었다.

코쉬-아가취의 여명

해가 뜨기 전 새벽에 일어났다. 9월 말인데도 새벽 공기는 굉장히 쌀쌀하다.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동네 산책을 나섰다가 너무 추워 바로 들어와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어서 전날 갔던 우즈베키스탄 식당에서 칸판을 또 먹은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다음 목적지는 형님들이 예전에 만났다는 일리나의 집이다. 형님들과 함께 여행하는 라픽이 통역해줘서 친해지게 됐다는데, 일리나는 알타이 지역 시골에서 사슴농장을 하며 녹용과 꿀 등을 팔며 살고 있다고 한다.

형님들은 그 곳에서 녹용을 구입할 생각이란다. 한의학 교수인 한 형님은 마록(말사슴) 또는 엘크 사슴이라 불리는 알타이 지역 사슴의 녹용은 원용이라고 불리는데,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효능이 좋은 최상품이란다.

길가에서 파는 기념품에도 사슴이 있다.

비가 올 것 처럼 구름이 잔뜩 낀 날씨. 라픽이 일리나에게 전화해 알아낸 주소를 향해 형님들이 차를 몰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출발 할 때.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처럼 흐린 하늘이다.

 

알타이 산맥를 따라 달리다 찍은 바이크.

 

알타이공화국

알타이의 자연은 몽골 초원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황금 산’이라는 뜻처럼 산이 굉장히 많은데, 한국의 산 모습과 굉장히 비슷해 보인다. 언어학적으로 한국어가 알타이어계에 속한다는 가설도 있다. 주어-명사-동사 순으로, 동사를 맨 마지막에 쓰기 때문이란다. 한민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 형님들에게 이 설명을 미리 들어서인지 한국의 산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더욱 들었다.

차를타고 앞서가던 형님이 찍어준 사진.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거의 없다.

오전에 비구름이 가득해 ‘비가 오는 것 아닌가’ 걱정하며 출발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하늘은 맑아진다. 푸른 하늘과 오랜만에 보는 산을 눈에 담으며 알타이를 달린다.

구름이 걷힌 알타이산맥

점심 무렵에 일리나의 집에 도착했다. 큰 길에서 벗어나 비포장 길을 조금 달리니 넓게 펼쳐진 초원과 작은 강이 흐르는 곳에 일리나의 집이 있다. 

그림 같은 곳이다. 울타리가 쳐 있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창고와 집, 러시아식 사우나인 바냐 등, 건물이 몇 채 있다. 그리고 좋은 인상의 일리나가 환영해준다.

일리나의 집 앞 초원

바이크를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일리나와 인사한 후 형님들이 녹용을 보는 동안 주변을 산책했다. 넓게 펼쳐진 초원을 가로지르는 시냇물과 그 뒤로 보이는 산. 주변에는 칠면조와 거위, 오리, 닭, 양 등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고 일리나가 키우는 고양이 ‘무르카’가 내게 다가와 머리를 비빈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일리나가 키우는 고양이 무르카. 넓은 초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거위나 닭들을 괴롭히는 개구쟁이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어떨까. 심심하겠지만 나쁘진 않겠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고양이의 골골대는 소리를 들으며 뒤뚱거리는 거위 떼를 볼 수 있으니. 

거위들이 사이좋게 몰려다닌다.

내 생에 가장 비싼 라면

천천히 주변을 산책한 후 숙소로 돌아오니 형님들이 녹용과 꿀을 조금 샀다. 라픽은 구석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 일리나가 갖고 있는 녹용은 얼마 되지 않아 조금만 구입했고, 내일 녹용 농장에 가서 조금 더 살 생각이란다. 나는 사실 녹용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지만, 형님들의 말로는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엄청나게 싸다고 한다.

녹용 중 최고라는 알타이 녹용

형님들은 ‘구매한 녹용 일부를 달이고 있으니 한 번씩만 확인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한 뒤 녹용주를 만들기 위해 보드카를 사러 나갔다. 

녹용이 끓으니 사골국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한참 기다리다가 배가 슬슬 고파질 때쯤 형님들이 보드카를 잔뜩 사서 돌아왔다.

플라스틱 통에 피가 흐르는 생 녹용을 넣고 보드카를 채우고는 나에게 한 통을 주신다. 하루에 한 잔씩만 마시면 앞으로 만날 러시아의 추위에서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신다.

녹용에서 나온 핏물이 베여 빨개진 녹용주. 형님들의 마음이 고마워 감사히 받았지만 내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녹용 분골 몇 조각을 넣고 세 시간 이상 푹 달여 라면을 끓였다.

잠시 후 형님들은 녹용을 고아낸 물에 라면을 끓였다. 한국에서 이렇게 먹는다면 과연 얼마짜리 라면일까? 맛은 굉장히 좋다. 라면에 사골국물을 한 국자 넣은 맛이다. 아마 내 생의 가장 비싼 라면일 ‘알타이 녹용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형님들과 함께 근처 마트에 가서 저녁으로 먹을 샤슬릭과 술 등을 사왔다.

형님들과 함께 여행하니 혼자 할 때보다 굉장히 여유롭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경험한다. 라픽이 있어서 언어도 통하니 현지인들과 대화도 가능하다. 혼자 여행하는 것만큼 자유롭지는 않지만 더 풍성하다.

정말 맛있게 먹었던 샤슬릭.

잔뜩 사온 고기를 일리나가 해준 양념에 잘 재워뒀다가 샤슬릭을 해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샤슬릭이다. 게다가 현지인이 직접 양념해준 것이라 더욱 맛있다. 구름이 잔뜩 껴서 더 어두운 밤, 모닥불을 앞에 두고 형님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일리나의 집 마당에서 본 밤하늘

자투리 여행정보 41. 알타이공화국

알타이공화국은 해발 4000m에 이르는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인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 있다. 남동쪽으로는 몽골ㆍ중국과 접해있다.

과거 중가리아(Dzungaria) 칸국의 일부였으나 18세기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다. 알타이공화국의 인구는 2006년 기준 20만여 명이고, 수도는 고르노알타이스크다.

알타이는 고대 튀르크어로 ‘아름다운 금’이란 의미이고, 몽골어로는 ‘황금 산’이라는 의미다.

알타이는 ‘알타이어’ 덕분에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단어다. 알타이 지역에서 전쟁이나 기후 변화 등으로 이동하던 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해 지금의 한민족을 이뤘다는 가설도 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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