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62. 런던의 겨울 날씨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62. 런던에서 4개월

비 개인 날,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빅벤.

런던에서 4개월 동안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지냈다. 여행비를 모으기 위해 스텝 일 외에도 청소, 이삿짐 나르기, 구매 대행 등,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이 아닌, 한 곳에서 머물며 살아가는 여행.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여행을 하며 새로운 문화를 보고 느끼고 배웠다. 

겨울을 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키르기스스탄에서 급하게 결정한 런던 행. 런던에서 4개월 생활을 글로 다 쓰자면 책 한 권도 모자라겠지만, 바이크가 없는 여행인 만큼 짧게 소개한다. 

런던의 첫 인상

런던 히드로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어디론가 끌려가 취조실 같은 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직원은 내게 왜 여기에 왔고 어디를 갈 예정인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고 한국에서 직업은 무엇이고 소득은 얼마나 되는지, 여행비는 얼마나 갖고 있고 여행비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을 물었다.

한 질문을 또 하기도 했으며, 질문이 끝나면 대기실에서 한참을 대기해야 했다. 처음에는 전 재산을 걸고 온 런던행이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이 올라와 화를 내며 조사에 응했다.

가장 짜증난 것은 나와 함께 조사받으며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중에 백인은 한 명도 없다는 거였다. 내가 있는 동안에만 우연히 백인이 없는 것일까? 확실하지 않았지만 런던의 첫 인상은 굉장히 불쾌했다.

내가 일한 게스트하우스

내가 일한 숙소 위치는 타워브릿지와 더샤드, 버로우 마켓 인근이다. 숙소 근처에서 찍은 더샤드와 타워 브릿지.

스텝으로 일한 게스트하우스는 2층으로 나뉘어있다. 1층에 거실 하나와 주방, 화장실, 샤워실 등이 있고 2층에 방 세 개가 있는데, 한 번에 손님을 열 명 정도까지 받는다.

내가 할 일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식사 10인 분을 만들고 설거지 등 정리를 한 후 손님이 밖에 나가면 침구 정리와 청소를 하고 장을 봐온 후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손님들이 체크인할 때는 약속된 장소로 픽업을 나가고 숙박비도 받아야한다. 택시를 불러주거나 여행정보를 알려주는 등, 각종 문의에도 응대해야한다. 사장은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들러  수금만 할 뿐이다. 모든 일은 내가 다 해야 한다. 보통 오전 6~7시께부터 아침 준비를 시작해 오후 8시는 돼야 저녁 정리를 마무리한다. 

게다가 내 공간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손님들이 잠자리에 들면 거실 한 쪽에 이불을 깔고 자다가 손님들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야한다.

직원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인데, 한 사람은 아침 준비, 다른 한 사람은 저녁 준비 식으로 역할을 나눠 일한다. 각자 일주일에 이틀 쉬는데 한 사람이 쉬면 다른 한 사람이 이틀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 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직원이 잘 뽑히지 않아 처음 한 달과 마지막 한 달만 함께 일하는 직원이 있었고 중간 두 달은 나 혼자 일했다. 힘들긴 했지만 월급을 조금 더 받았으니 여행을 준비하는 내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런던 일본대사관 앞에서.

돈을 모아야한다

런던에 있는 동안 그 유명한 피카딜리 서커스의 뮤지컬 한번 못 봤다. 런던 행 비행기 표 값으로 갖고 있던 돈을 다 쓴 상태라 적은 월급으로 남은 여행 경비를 마련해야했으니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유료 관광지는 한 곳도 가지 못했다. 숙소에서 2분 거리에 있는 타워브릿지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고 5파운드(한화 7500원)에 달하는 런던 지하철 ‘튜브’ 요금을 아끼기 위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다.

그럼에도 돈을 많이 모으지는 못했다. 가끔 버스를 타기도 했고 맥주나 다른 음식을 사먹기도 했는데, 물가가 비싼 데다 버는 돈이 워낙 적다보니 월급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지출했다.

가장 자주 사먹은 음식은 근처 마트에서 정가의 10% 가격에 만날 수 있는, 유통기한이 ‘분’ 단위로 남은 요리다. 평소에는 숙소에서 밥을 먹고 숙소를 나갈 때는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만들어 싸갖고 다녔다. 

다행히 런던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라 그림 구경은 실컷 했다. 특히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숙소와 가까워 자주 갔는데,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백남준의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휴일이나 시간이 남을 때는 테이트모던 꼭대기 층 카페에서 템즈강을 바라보며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파리 일본대사관 앞에서.

런던에서 만난 사람들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인과 결혼했다. 깔끔하고 칼 같은 성격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세심하게 잘 챙겨줬다. 런던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기에 런던에 대해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볼 수 있었다.

처음에 함께 일한 스텝은 나와 동갑이다. 그 친구는 굉장히 재밌는 경력을 갖고 있었는데, 여행하다 우연히 ‘프리다이빙’을 알게 돼 이집트 ‘다합’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여자 친구가 있는 영국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일을 하게 됐다.

프리다이빙은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숨을 참고 하는 다이빙이다. 그는 숨을 참고 바닷 속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프리다이빙 경기에서 한국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숨을 참으며 6분 이상 잠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둘 다 영어를 못해 외국인 손님을 응대할 때마다 고생했는데, 마음이 잘 맞았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스텝 일을 ‘런던 식모살이’라고 불렀는데, 엄청난 노동 강도에 비해 받는 돈은 적다며 밤마다 신세한탄을 하곤 했다.

한 달간 함께 일한 그 친구가 가고 나서는 스텝으로 온 사람들이 하루 이틀 만에 나가는 바람에 두 달 동안 혼자 일했다.

쉬는 날이나 시간이 날 때는 지인이 소개해준 사진작가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바이크 여행을 하는 동안은 거의 꺼내지 않은 DSLR 카메라를 하나하나 배워가며 두 달 동안 런던 구석구석과 외곽 도시는 물론 프랑스까지 돌아다녔다.

사진작가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피렌체에서 몇 달간 사진을 찍다가 런던을 찍기 위해 왔단다. 친절한 성격의 작가 덕분에 영국 생활이 더 풍성하고 즐거웠다. 그때 배운 사진기술은 지금까지도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

개선문 위에 올라 찍은 에펠탑과 파리 시내.
빅벤 앞에서 동행한 작가가 찍어준 사진.

작가와 함께하는 동안 새로운 스텝이 들어와 한 달간 같이 일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여성이었는데 작은 거실에서 함께 생활해야 해서 불편함도 많았지만 털털한 성격에다 장난 끼가 많아 친동생처럼 대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을 런던에서 만났다. 영국에 여행 온 친구와 후배들이 내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기도 했으며, 숙소에 온 손님들과 친해져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 모두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그들 덕에 내 여행이 덜 외로울 수 있었다.

지금 여자 친구를 만난 것도 이 때다. 여자 친구는 친구와 둘이 여행 와서 내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에 일주일간 묵고 파리로 떠났는데, 같이 있는 동안 홀딱 반한 내가 파리까지 따라가 마음을 전했다.

부담이 될까봐 엄청 고민했지만 그 순간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SNS로 연락해 파리에 가겠다고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런던에서 밤에 출발해 파리까지 9시간 30분이나 걸리는 20파운드짜리 야간버스를 타고 갔다.

그날 아침부터 다음날 저녁까지, 꽉 채운 1박 2일 동안 내 마음을 정성을 다해 전한 끝에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그 이후 메일 수십 통을 주고  받고 메신저로 대화하고 수백 시간의 인터넷 통화 끝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정식으로 만나는 사이가 됐다.

정면보다 훨씬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의 뒷 모습.

외국어 능력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도 손님에게 숙소 사용법을 안내해주거나 런던 여행지를 소개하기도 했으며, 물건을 사고 환불하거나 은행에 가서 계좌도 개설했다. 러시아에서 느꼈듯, 대화는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아는 몇몇 단어만으로도 의사소통은 가능했다.

인종차별을 처음 당했을 때 회화능력의 필요성을 크게 느꼈는데, 나중에는 ‘어차피 뒤 없는 인생인데 무시까지 당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한국말로 욕을 하며 대응했다. 결론은 외국어 능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 물론 말이 잘 통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런던의 파업

런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다. ‘튜브’나 버스 노동자도 툭하면 파업해, 대중교통이 자주 마비되곤 했다.

내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맨션에는 지하철 노조원이 살고 있었는데, 파업이 시작되자 맨션 사람들이 그 집 앞에 파업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며 꽃과 쪽지를 뒀다. 한국에서 파업하면 ‘교통이 마비된다.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얘기가 언론과 SNS에서 판을 치는 것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충격을 받았다.

숙소 사장에게 물어보니, 영국에서는 자본가나 고용주에게 대항해 시민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뭉쳐서 싸운단다. 파업은 모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기에 파업해서 시민들이 불편을 겪으면 노조에 왜 파업하느냐고 따지는 게 아니라, 고용주에게 ‘너희 때문에 시민들이 불편하잖아. 빨리 해결해’라고 요구한단다.

자투리 여행정보 62. 런던의 겨울 날씨

내가 찍은 사진 중 이 사진이 런던의 분위기와 가장 비슷하다. 처음에는 매일 비 오는 날씨가 싫었지만 곧 비오는 런던 특유의 분위기에 빠졌다.

런던의 겨울은 아침 7~8시가 돼야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해가 지기 시작해 4시면 어둑해진다. 일주일이 넘게 부슬비와 안개가 가득해 해를 보지 못한 때도 있었는데, 진짜 우울증 걸리겠다 싶은 날의 반복이었다.

우스갯소리인지 사실인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우울증은 런던에서 굉장히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꽤 신빙성 있게 들렸다.  하지만 특유의 잔잔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덕에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기엔 더없이 좋다.

인천투데이 김강현 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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