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63. 호스필드 거북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3. 천천히 눈이 감긴다

다시, 비쉬케크

영국 런던에서 4개월간 게스트하우스 스텝 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을 모은 후 3월 30일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숙소를 떠나는데 한국을 떠날 때보다 미련이 더 많이 남는다. 한국이야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곳이었지만, 런던은 그렇지 않다.

런던에서 쌓은 많은 추억을 차곡차곡 마음에 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스탄불에서 한 번 환승해야하는데, 런던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비쉬케크 행 비행기를 놓쳤다.

다음 비행기는 약 20시간 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영화 ‘터미널’ 주인공 빅터 나보스키처럼 공항 구석 벤치에서 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씻고 서점에서 책을 보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겨우 비쉬케크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새벽에 비쉬케크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런던을 떠나기 전 묵었던 숙소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니 자다 일어난 숙소 주인이 눈을 비비며 나오다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래 나 돌아왔다. 내 긴 여행의 두 번째 시작을 느낀다. 해가 뜰 때까지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바이크를 맡아준 승환 형님을 찾아가 인사했다. 손을 꼭 잡으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전해진다.

형님이 맡아둔 한국에서 온 부품들로 바이크를 수리했다. 수리하는 동안 유학을 하는 동갑내기 친구 도형이가 사는 집에 얹혀살며 형님들과 함께 비쉬케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비쉬케크에서 조금 떨어진 국립공원

 

봄에 접어든 비쉬케크

겨울이 아직 끝나지 않은 비쉬케크는 런던의 고상함과 우아함과는 사뭇 다른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을 뽐낸다. 바쁘게 걸어가는 런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느긋하게 바람을 맞는 비쉬케크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저절로 안정된다.

그렇게 비쉬케크에서 시간을 보내며 바이크를 수리하고 다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되찾은 자유

첫 번째 목적지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 한국에서부터 함께 출발해 몽골에서 잠시 떨어졌다가 키르기스스탄까지 왔던 친구 종선이가 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비쉬케크에서 내가 파미르를 향해 남쪽으로 내려갈 때 그 친구는 위로 올라가 트빌리시로 갔고, 내가 런던에서 일 하고 있는 동안 그 친구는 트빌리시에서 일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빨리 가면 열흘이면 도착할 거리. 그 친구를 만나 서쪽으로 계속 이동해 유라시아 대륙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인사하고 언젠가 꼭 돌아오겠노라 다짐한 후 출발했다.

첫날 목적지는 카자흐스탄 메르키라는 도시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국경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 있는 도시라 그곳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다.

런던 생활은 즐거웠고 만족스러웠지만, 바이크를 타고 아무런 계획도 걱정도 없이 자연을 누비다가 갑자기 일을 하니 그 답답함이 말이 아니었다.

일이 힘들고 문제가 생길 때는 바이크를 타고 여행하던 때가 더욱 그리웠다. 그 4개월 동안 그렇게 타고 싶던 바이크를 타니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같다. 영국에서 지내며 영어가 늘긴 늘었는지 국경에서 출입국 절차도 이전보다 빠르게 통과했다.

국경을 지나 작은 마을에서 손바닥보다 큰 케밥 두 개를 사서 하나를 먹고 한참을 달리다 경치 좋은 초원에 앉아 남은 하나를 먹었다. 넓은 초원에 앉아 주변에 졸졸 흐르는 얕은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설산을 보며 케밥을 먹으니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다.

식사 대용으로 먹은 케밥.

 

몇 개월 만에 본 카자흐스탄의 초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보는 대자연을 한껏 만끽한 후 다시 출발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큰 도로 한복판에 손바닥만 한 무언가가 있다. 처음에는 돌멩이인가 싶었는데, 옆을 지나치며 보니 느릿느릿 움직인다.

바이크를 유턴해 다시 가보니 거북이가 껍질 속으로 고개를 쏙 집어넣는다. 여행하면서 말이나 양, 소, 낙타, 뱀, 독수리 등을 만났지만 거북이를 만날 줄이야. 혹시 차에 치일까 걱정해 손으로 집어 길 건너 초원에 놓아주고 다시 출발했다.

어둑해질 무렵 메르키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마을 입구에 있는 숙소를 바로 잡을 수 있었고 숙소 근처 마켓에서 산 맥주와 과자로 끼니를 때우고 잠들었다.

다음날, 쉼켄트를 지나 크질오르다를 향해 끝없는 초원을 달린다. 군데군데 깨지긴 했지만 아스팔트길이 이어져 운행에 큰 문제는 없다.

카자흐스탄 유목민. 양치기는 당나귀를 타고 소나 말을 유목하는 사람들은 말을 탄다.

바이크를 오랜 만에 타니 정말 재밌다. 특별한 것 없이 달리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다. 4개월 만에 되찾은 자유를 온몸으로 즐기며 멈추지 않고 달려 크질오르다에 도착했다.

크질오르다는 1924년부터 6년간 카자흐스탄 수도였다. 그만큼 규모가 제법 크다. 알마티나 아스타나만큼은 아니지만 있을만한 건 다 있다.

숙소도 제법 괜찮다. 비싸지 않은 가격임에도 욕실에 욕조까지 딸려있는 쾌적한 방을 구할 수 있다. 2만 원 정도 가격에 잠시 고민했지만 조식까지 나온다니 다른 숙소를 찾기도 귀찮고 다음날 아침을 잔뜩 먹고 본전을 뽑으리라 생각했다. 

1리터짜리 맥주 두 캔을 저녁 대용으로 사와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서 한 캔을 마시고 나른한 몸으로 침대에 앉아 남은 한 캔을 마저 마신 후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당에서 빵과 계란, 씨리얼, 소시지 등 뷔페로 나온 조식을 목 끝까지 먹은 후 소시지 두 개와 삶은 계란 하나를 주머니에 몰래 챙겨 숙소를 나왔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또 멋진 하루의 시작. 이 속도대로라면 일주일 안에 친구에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카스피해를 둘러 조지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찾아 바이크를 몰았다.

천천히 눈이 감긴다

지도에 길 표시가 드문드문 있는 것을 보니 오프로드일 것 같다. 런던에서 너무 편했으니 고생하는 모험을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오프로드 걱정보다 지평선이 펼쳐진 초원을 다시 한 번 누빌 생각을 하니 가슴이 부푼다.

차츰 아스팔트가 깨진 길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트럭 운전사들의 휴게소 같은 식당이 나오고 그 뒤쪽으로 사막같이 건조한 땅과 뾰족한 사막의 풀이 펼쳐진 길이 보인다.

오프로드에 들어가기 전에 식당에 들어가 닭다리 요리와 밥을 먹었다.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다. 고생할 각오를 한 터라 빵도 추가해 든든히 먹었다.

오프로드에 들어가기 직전 먹은 닭다리 요리

그리고 캠핑하며 먹을 물과 라면을 샀다. 지도를 보니 어두워질 때까지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도 하고 오프로드에 들어서는 만큼 오랜만에 캠핑하고 싶기도 했다.

걱정 조금과 함께 기대로 잔뜩 부풀어 오프로드에 들어섰다. 길이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땅은 사막처럼 건조했지만 풀이 있어서인지 단단했다. 잔뜩 깨진 아스팔트보다 오히려 운전하기 쉽다. 속도를 제법 올려도 무리가 없다.

한참을 달리다 잠시 멈춰 시동을 끄니 타닥거리며 엔진이 식는 소리 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고 바쁜 도시인 런던에 있었는데, 갑작스레 느끼는 고요가 두려울 정도로 낯설다.

다시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오후, 정면으로 비추는 해가 눈부셔 헬멧 선바이저를 내렸다.

지는 해가 발하는 주황색 세상에 바이크 엔진소리와 바람소리만이 가득하다. 잠시 눈을 돌려 본 계기판에는 ‘80km/h’가 나타난다.

다시 앞을 보는데 몸이 붕 뜨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땅이 눈앞에 보인다. 쾅.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등 뒤로 돌아간 팔을 겨우 빼고 몸을 틀어 하늘을 보고 누웠다.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쉰다. 흩어지는 주황색 해를 마지막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이 감긴다.

자투리 여행정보 63. 호스필드 거북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거북이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거북이는 ‘러시아 거북’이라고도 불리는 호스필드 거북이다. 러시아 거북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딱히 많이 살지 않고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쪽에서 주로 서식한단다.

거북이 종 가운데 위도가 높은 북반구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다른 거북이들에 비해 낮은 온도에서도 잘 견디는 특성이 있어 반려동물로도 많이 키운다.

몸 길이는 20~25cm 정도이고 수명은 50년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하는 적색 목록(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고서)에서 멸종 위험인 ‘취약’으로 분류된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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