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2. 무슬림은 위험하지 않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2. 무슬림은 위험하지 않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9.03.29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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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여행정보 52. 무슬림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52. 무슬림은 위험하지 않다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

키르기스스탄에서 지내는 나날은 여유롭고 편안한다. 한국식당 ‘호반’이 있어,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매번 밥을 사먹기에는 남은 돈이 걱정이다. 그래서 점심으로 국밥 등을 하나 시켜 밥을 세 그릇씩 먹은 후 저녁에는 간단하게 빵을 먹는다.

며칠 동안 푹 쉬다가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미리 검색해둔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을 찾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상 사진을 찍은 후 현수막을 펼치니 곧바로 경비원들이 와서 막는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며 거칠게 막더니 급기야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모두 지워버렸다. 화가 나서 항의해봤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냥 숙소로 돌아올 수밖에.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난다. 폭탄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사진 좀 찍겠다는데 왜 이렇게까지 막아서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몽골에서 처음 경찰들에게 막혔을 때보다 겁이 없어진 것 같다. 그 때는 겁나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이제는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계획을 세웠다. 다시 가서 카메라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눈에 덜 띄기도 하고, 핸드폰은 사진 복구 기능이 있어서 삭제해도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일본대사관을 다시 찾았다. 경비원들이 다른 사람들로 바뀌었다. 친구에게 내 핸드폰을 주고 곧바로 현수막을 펼쳤다.

사진을 찍자마자 경비원들이 와서 막는다.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웃으며 ‘아이, 사진 한 장만 찍을게’ 하면서 버틴다. 아직 소녀상 사진을 찍지 못했기에 벌써 밀리면 안 된다.

친구에게 눈치를 줘 친구가 경비원들을 막는 동안 친구의 등 뒤에서 재빠르게 소녀상 사진을 찍었다. 또 사진을 찍자 경비원들은 핸드폰을 뺏으려했고, 나는 웃으며 ‘알았어. 지울게’라며 그들의 눈앞에서 사진을 지웠다.

그리고 왜 사진도 못 찍게 하냐며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소개한 후 담배를 건네 같이 피웠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대화를 조금 더 하다가 악수하며 인사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경비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사진을 확인했다. 다행히 복구할 수 있었고, 사진도 잘 찍혔다. 친구와 손뼉을 치고 기쁨의 축배를 들자며 맥주를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 앞에서.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 앞에서.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
키르기스스탄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

‘오시’로 가는 산길에서

다음날, 한국식당 ‘호반’에서 점심을 먹고 사장님께 인사를 한 후 떠날 채비를 했다. 나는 파미르고원을 향해 남쪽으로, 친구는 카자흐스탄을 향해 북쪽으로 이동한다. 헤어지는 게 아쉽지만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서로 상대방의 여행을 응원했다. 그리고 각자의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출발하기 전날 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날 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지붕에 눈이 쌓여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지붕에 눈이 쌓여있다.

오늘의 목적지는 키르기스스탄 제2의 도시인 ‘오시’. 북쪽에 수도이자 중심 도시인 비슈케크가 있다면, 남쪽에는 중심도시 오시가 있다. 거리는 약 600km. 전날 밤에 눈이 와서 흐리지만 다행히 길에 눈이 쌓이진 않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으니 저녁 전까지 오시에 가는 게 목표다.

키르기스스탄은 몽골과 러시아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만큼 길도 산을 끼고 꼬불꼬불하게 이어진다. 그동안 러시아와 몽골에서 만난 평야 위주의 도로와 전혀 다르다.

낙석을 피해 조심조심 달리는데 어느새 오르막이 이어진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더니 출발한지 한 시간이 조금 넘자 길옆에 쌓여있는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슬슬 걱정된다. 아직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데 눈이 보이다니. 이러다 위에서 고립되는 거 아니야? 잠시 쉬며 사진을 찍고 다시 오르막길을 달린다. 

산에 오르는 중 잠시 쉬며
산에 오르는 중 잠시 쉬면서.

매우 어둡고 좁은 터널을 지나 절벽 옆으로 난 코너를 타며 산을 오른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진다. 심지어 산소가 모자란 것인지 머리도 아프다. 길에도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얼어붙은 길이 나온다. 눈도 조금씩 내리고 바람도 강해 눈보라가 친다. ‘이러다가 진짜 사고 나겠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퀴가 미끄러지며 바닥을 굴렀다. 길가로 바이크를 끌고 와서 보니 오르막이 거의 다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리막길인 데다 추워진 날씨에 길이 얼어붙었다. 해가 떨어져 어둡다. 다행히 보름달이 떠서 아주 깜깜하지는 않지만 운전을 하기에는 지장이 있을 정도다.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갔다. 달빛에 반짝거리는 길 위의 얼음조각들을 보며 온몸에 긴장을 유지한 채 운전에 집중했다.

내리막 경사가 심해 브레이크를 잡으며 조절해도 속도가 자꾸 붙는다. 브레이크를 세게 잡으면 바로 바퀴가 미끄러진다. 두 번을 더 넘어지고 나니 바이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없다. 온힘을 다해 들어 올리다 바이크와 함께 주저앉았다.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더 위험해질 것을 알지만 힘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을 앉아있었다. 몸에서 열이 다 빠져나가 추워질 때 쯤 이러다가 진짜 조난당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어났다. 

바이크를 세우려고 한참 힘을 쓰고 있는데, 뒤에서 자동차 한 대가 온다. 차를 향해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했다. 차에서 내 또래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내린다. 남자 두 명과 힘을 합쳐 바이크를 일으켰다.

악수를 청해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먼저 가라고 손짓하니, 자기들 앞에서 먼저 가란다. 내가 또 넘어지면 도와주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들 앞에서 천천히 운전했다. 뒤에서 차 라이트를 비춰주니 시야가 확실히 좋다. 내려오는 동안 한 번 더 넘어졌는데, 역시 그들이 차에서 내려 도와줬다. 

무슬림은 위험하지 않다

그들 중에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 대화가 가능했다. 그들은 나와 함께 가다가 기도를 해야 하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작은 건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그들은 타지키스탄 사람이고 무슬림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무슬림은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니 겁먹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겁먹을 리가. 이들이 없었다면 저 산에서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겁나는 대상이 아니라 은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아마 외국인들이 무슬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리라.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내 마음을 표현하니, 잠시만 기다리라며 차에서 사탕 한 줌과 잇자국이 남은 먹다 남은 빵을 준다.

무슬림 친구들이 준 잇자국이 선명한 빵. 내 생에 가장 고맙고 따뜻한 빵이다.
무슬림 친구들이 준 빵. 내 생에 가장 고맙고 따뜻한 빵이다.

사실 나는 무슬림이라는 종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무슬림이 테러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심심하지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내가 모르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만나본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나를 돕느라 번거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길을 떠나는 나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이었고, 따뜻하게 포옹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내게 있던 편견은 그들을 만난 후 모두 사라졌다. 물론 그 종교의 교리가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내 시선으로 바라볼 때 잘못된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기준에서 이야기다. 그렇게 태어나고 살아온 그들에게 내 기준을 적용해 ‘너희는 잘못 됐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한 번 모자란 나를 탓하고 그들과 포옹한 후 길을 나섰다. 길에서 적당히 벗어난 곳에서 캠핑할 생각으로.


자투리 여행정보 52. 무슬림

이슬람교 모스크. (사진출처ㆍpixabay)
이슬람교 모스크. (사진출처ㆍpixabay)

무슬림은 이슬람교도를 말한다. 정확한 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세계 인구의 20%가 무슬림이라고 추정한다.

이슬람교는 여성 인권이 없다거나 독재의 성격을 갖고 있어서 믿지 않으면 죽인다는 등의 소문을 많이 들어봤지만 내가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외부인과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위기에 처한 자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으며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한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슬림에 대한 대부분의 나쁜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악의적으로 퍼진 거짓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도 일부 있겠지만 심한 과장이 더해졌을 것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며 편을 갈라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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