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31 - 모터사이클의 종류(2) 아메리칸 바이크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1. 일본대사관과 눈물의 육개장

혼자하는 여행, 가장 먼저 신경 쓸 것은 안전

다음날 점심시간이 다 돼서 일어나 숙소에 구비 돼 있는 식빵과 우유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오아시스 게스트하우스에는 빵과 버터, 잼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식사를 마치고 노트북을 켠 후 한국에서 전범기(=욱일승천기)를 알리기 위한 등자보의 시안을 만들어준 친구에게 국제배송을 보내달라고 얘기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디자인이 잘 나왔다. 이정도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의미를 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는 독일인 부부가 있어서 시안을 보여주고 왜 이것을 만들었는지 설명해줬다.

전범기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만든 등자보 시안.

그들은 계속 굳은 표정으로 얘기를 듣다가 나를 응원한다고, 좋은 의미인 것 같다고 격려 해 줬다. 하지만 독일이나 유럽에 가면 하켄크로이츠 문장 때문에 테러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이유를 물으니, 독일인들은 하켄크로이츠를 굉장히 싫어해서 어떤 의미로든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잘 만들어진 등자보를 보고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 '수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기에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내 안전일 수밖에 없다.

일본대사관, 첫 번째 실천

일단 고민을 잠시 덮어두기로 하고 여행의 첫 번째 실천과제인 일본대사관을 찾아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검색해 위치를 봐둔 후 샤워를 하고 바이크를 타고 출발했다.

일본대사관에 가서 곧바로 평화의 소녀상과 자보를 펼칠 생각은 아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일단은 먼저 가서 주변 상황을 볼 생각이다.

대사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이다. 무장을 한 경찰들이 대사관 정문은 물론 그 주위를 순찰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바이크를 탄 채 주변을 돌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해 봤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몇 바퀴쯤 주변을 돌다가 경찰들이 나를 주시하는 게 느껴질 때 쯤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와서 멈춘 후 바이크에서 내려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봤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부딪칠 수밖에. 소녀상과 자보를 꺼내기 쉽게 앞쪽 가방에 넣고 다시 일본 대사관 앞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 일본대사관 앞에 선 내 바이크

대사관 앞에 바이크를 세울 때 까지는 제지가 없었다. 큰 길가 옆에 있는 곳이어서 잠시 정차 한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우선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상의 사진을 찍었다.

몽골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상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뛴다. 한국이라면 말이라도 통할 텐데,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만약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손에 땀이 흥건한 채로 소녀상 사진을 찍었다. 다음은 자보를 들 차례다. 핸드폰 카메라 타이머를 맞춰 바이크 위에 올려둔 후 자보를 펼치고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 섰다.

10초의 타이머가 10분 같다. 길고 긴 띠띠띠 소리가 끝나고 사진이 찰칵 찍혔다. 그때였다. 경찰 세 명이 나를 둘러쌌다.

이전부터 겁을 잔뜩 먹고 있었던 터라 헛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긴장된다. 경찰들은 나를 둘러싸고는 몽골어로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국인 여행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서로 이야기 하던 그들은 잠시 후 한명의 경찰을 더 불러왔다. 새로 온 경찰을 영어를 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뭐하는거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일단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했다. ‘말이 안통하면 그냥 보낸다’. 전에 러시아에서 경찰에게 걸렸을 때 배운 교훈이다. 나는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몸짓을 하며 ‘코리아, 모터사이클 투어리스트’만 연발했다.

내 여권을 요구한 그들은 여권에 찍힌 몽골 비자와 내 사진을 보고 무언가 말을 하더니 이제 가보란다. ‘살았다’ 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긴장한 모습을 모이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바이크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사이드미러에서 일본대사관이 사라지고도 한참을 더 가서 갓길에 바이크를 세웠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다리가 덜덜 떨린다.

몽골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공식사과와 법적배상을 요구합니다'

핸드폰을 켜고 사진을 보니 다행히 잘 찍혔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길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해냈다. 잔뜩 걱정하고 겁먹은 것에 비하면 특별히 위험하지도 않았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이 여행에서 꼭 녹여내고 싶었던 일을 해냈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감정이 생긴다.

눈물의 육개장

내가 너무도 대견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앉아서 시동을 걸고 500m쯤 앞으로 갔을까, 눈을 의심할만한 간판이 보였다. ‘인천식당’이다. 한국식당만 만나도 반가울 판에, 인천이라니. 바이크를 주차하고 한달음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몽골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인 울란바토르의 '인천식당'

좋은 인상의 사장님이 당연한 듯 한국어로 나를 맞이해주며 한국어 메뉴판과 한국에서 자주 본 물통, 물컵을 가져다 주신다. 너무 익숙한 느낌에 당황스러울 틈도 없다.

익숙한 물통과 컵, 수저

 

인천식당의 메뉴. 가격은 현지 단위인 '투그릭'인데, 당시 환율로 한화의 반 이하다.

메뉴를 한참 보다가 저녁을 안 먹겠다고 다짐하고 제육볶음과 육개장을 주문했다. 잠시 후 공기밥 두 그릇과 각종 반찬,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주문한 음식

먼저 숟가락을 들고 흰 밥을 듬뿍 떠서 입안에 밀어 넣고 음식을 하나씩 다 맛본 후 순식간에 밥 두 그릇을 비웠다. 육개장 국물이 남아서 밥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진짜 너무 맛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순간 울컥하고 목이 메어왔다. 익숙한 식기로 익숙한 맛의 밥을 먹는, 이런 익숙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내가 느끼고 있던 것 보다 그리움이 더 컸는지, 한 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육개장 대접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이 뚝뚝 떨어진 육개장을 울음과 함께 삼켰다.

그렇게 남은 밥을 다 먹고 앉아서 쉬고 있는데 내가 사연이 있어 보였는지, 처음에 나를 맞아줬던 사장님이 어떻게 여기에 왔느냐고 묻는다.

나는 인천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바이크로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는 중이라고,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고 방금 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고 내 여행을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사장님은 자신도 인천 출신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래서 식당 이름도 인천식당으로 지었단다. 그리고는 멀리서 오는동안 고생했다며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려서 밥을 먹고 가라고 말씀해 주셨고, 밥값도 받지 않으셨다. 사장님에게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한 후 울란바토르를 떠나기 전에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하고 식당을 나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식당에서 나와 사장님이 알려준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몽골 지도를 사기 위해서다. 그동안은 GPS와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아다녔지만 몽골 내륙으로 들어가면 GPS가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아예 길을 읽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지도를 꼭 준비해야 했다.

몽골 현지인들이 쓰는 지도는 비가 오거나 산사태가 발생해 지형이 변하는 것 까지 자세히 표시된다는 얘기를 들어서 미리 지도를 사오지 않고 울란바토르에서 구매할 생각이어서 식당 사장님께 미리 지도를 파는 백화점을 물어봐뒀다.

다행히 백화점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이크에 꼼꼼하게 잠금장치를 한 후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1층에 한국의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가 있다.

울란바로트에서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내가 여행하면서 먹고 싶었던 음식에 순위를 매긴다면 첫 번째가 소주고 두 번째가 밥, 세 번째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한국에서는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데다가, 한여름이라 날씨가 더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정말 먹고 싶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뜨거운 쵸르니 차이(=홍차) 밖에 먹을 수 없어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머리가 띵 해지도록 한 번에 마시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울란바토르에서 맛있는 한식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먹을 수 있다니. 감동적이다. 가장 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후 빨대로 쭉 빨아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카페에 앉아 와이파이를 잡고 여유를 즐기며 아메리카노를 다 마신 후 지도를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등자보는 결국 하켄크로이츠 문장을 모자이크 처리 하기로 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나 혼자 세상을 여행해야 하기에 혹시라도 생길 사고는 방지하고 싶었다.

아쉽지만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로 한 후 친구에게 바이크 부품과 등자보, 그리고 여행하며 읽을 책 한권을 부탁했다.

자투리 여행정보 31 - 모터사이클의 종류(2) 아메리칸 바이크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또는 다른 세계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여행을 책임질 모터사이클의 기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모터사이클 기종을 소개하려한다.

물론, 선택은 여행자의 본인의 몫이고, 정답은 없다. 스쿠터로 세계여행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본 결과 모터사이클 기종은 별로 상관없다는 게 내 경험이다.

아메리칸 바이크의 대명사인 할리데이비슨의 1200cc 바이크 'FORTY-EIGHT' (사진출처ㆍ할리데이비슨 코리아)

 아메리칸 바이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미국에서 시작 됐다. 쉽게 표현하자면 한국에서도 유명한 바이크 브랜드 ‘할리데이비슨’을 생각하면 된다.

다른 바이크보다 덩치가 크고, 앞 바퀴가 앞쪽으로 길게 나와있으며 핸들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 이 바이크의 특징이다.

일부 라이더들이 튜닝을 해서 벌을 서듯 손을 위로 들고 타야하는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라이딩 포지션은 편한 편이다. 시트고(=높이)가 낮고 허리를 크게 굽히지 않는데다가 다리고 어느정도 펴진 상태로 운전 할 수 있어, 장거리 여행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크지 않다.

하지만 시트고가 낮은 만큼 오프로드엔 굉장히 약하다. 게다가 앞바퀴가 튀어나와있고, 핸들이 높아 순간적인 방향 전환 등 조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다. 또 가격도 비싸서 내가 여행을 생각할 때 꿈도 꾸지 못한 바이크다.

이 바이크는 오프로드가 아닌 잘 포장된 도로 위주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짐을 가득 싣고도 충분한 힘과 안정적인 자세로 운전할 수 있어 편할 뿐더러 그 특유의 멋은 덤이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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