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8. 몽골을 향해

얼마나 더 혼자서 여행해야 할까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도로 위를 달린다. 그동안 열심히 돌아다녀서인지 이르쿠츠크의 낯설지 않은 풍경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도시를 벗어나고부터는 온 세상이 처음 보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일행 없이 홀로 달리고 있다는 것이 새삼 막막하다. 멈출 때마다 일행과 얘기를 나누며 한참을 쉬곤 했는데, 이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혼자서 여행해야 할까.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을까. 잠시 쉴 때마다 바이크 엔진이 꺼지고 난 후의 적막함을 더욱 크게 느낀다. 

짧은 휴식을 몇 차례 하며 올란우데로 향한다. 비는 그치다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저렴한 우비는 비를 온전히 막아주지 못해 온 몸이 서서히 젖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체온을 빼앗아간다. 9월 초인데도 낮 최고기온이 8도밖에 되지 않는다. 춥고 비가 와서 사진을 찍을 정신도 없다. 손이 너무 시리면 잠시 멈춰 뜨거워진 바이크 머플러에 손을 녹이고 다시 출발하길 반복한다.

기온이 낮아서인지 핸드폰 배터리도 금세 닳아버린다. 늘 바이크 시거 잭에 충전기를 연결해 핸드폰을 충전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충전기를 꽂을 수 없다.

길게 이어진 길을 한참 달리다가 어느 순간 바이칼 호수를 만났다. 다시 만난 게 반가웠지만, 호수는 그렇지 않은 듯 잔뜩 성이 난 모습이다. 바다처럼 파도가 일고, 호수 위에는 검은색 먹구름이 가득하다. 알혼에서 봤던 아름다운 바이칼이 아니라 두려울 정도로 무서운 모습이다.

낯선 호의도 이제 제법 익숙하다

바이칼 호수를 따라 조금 더 달리니 호수 남쪽에 있는 도시 바이칼스크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식당도 있고, 잘 찾아보면 가스찌니차(여관) 하나 정도는 있을법한 규모의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멈춰 이곳에서 오늘 하루를 보낼까, 잠시 고민했다. 시각은 오후 4시를 넘기고 있고, 목적지인 올란우데까지는 아직 300여km가 더 남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리하지 않고 바이칼스크에서 하루를 보냈겠지만, 몇 주 동안이나 푹 쉬었기에 첫날은 무리해서라도 여행의 감을 다시 찾는 게 중요할 거라고 판단하고 올란우데를 향해 다시 스로틀을 감았다.

한참을 달렸다. 계속 달리기만 했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멈춘다고 해결되는 것도 없기에 온전히 이동하는 데만 집중했다.

바이칼스크를 지나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고 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더니 내 앞에 천천히 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멈추니,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나와 말을 건다. 아주 서툰 영어로 "여행하느냐,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와서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모고차, 치타, 이르쿠츠크 등을 거쳐 올란우데로 가고 있고 그 다음엔 몽골로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관심을 받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는 러시아어로도 어디를 여행했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문법은 하나도 맞지 않겠지만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

노부부는 내가 대단하다고 말하며 담배 한 갑을 꺼내 내밀었다. 남은 돈이 적어 부담을 느끼고 있을 때라 그들이 내민 담배를 감사히 받고 포옹한 후 길을 다시 나섰다.

낯선 호의가 이제 제법 익숙하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나를 속여서 뜯어먹으려 하나?’ 하며 경계했는데 이제는 내 여행을 인정해준다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감정 표현에 거리낌 없이 솔직한 러시아 사람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올란우데에 들어서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체온이 점점 떨어진다. 낮에 한국음식 식당에서 먹은 밥이 소화가 끝났는지 배고프다. 먹은 게 없으니 체온 조절은 더 안 된다. 밤이 되니 손발에 감각이 없어진다.

‘바이칼스크에서 멈출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한 선택이었지만 너무 춥고 힘들다. 핸드폰 배터리도 다 닳아 잘 읽지도 못하는 러시아어로 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으며 달린다.

기온은 더 떨어져 영상 1~2도 사이를 오간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온몸이 젖은 채로 바이크를 타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손가락이 얼어 라이터를 켜기도 힘들 정도니 말이다.

앞만 보며 한참을 달리니 고요한 도로에서 어느새 차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표지판엔 ‘올란우데’가 적혀있다.

드디어 올란우데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 바로 숙소를 찾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추워서 캠핑은 생각할 수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붙잡고 ‘가스찌니쨔’를 연신 외친 끝에 겨우 숙소를 찾았다.

힘든 하루 끝에 찾은 숙소에서

그렇게 찾은 숙소는 호스텔 형식이 아니라 방 하나를 혼자 쓰는 형식이었는데, 가격이 이르쿠츠크의 호스텔보다 2.5배는 비싼 1000루블(한화 약 1만 8000원)이나 된다. 비싼 가격에 잠시 고민했지만 다른 숙소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아 돈을 지불하고 바이크를 숙소 주차장에 세운 후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는 비싼 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듯 쾌적하고 깔끔하다. 침대도 넓고 침대보도 깨끗하게 세탁돼있다.

짐을 풀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문을 연 마켓이나 식당이 없다. 불이 켜져 있는 곳에 들어가면 장사가 끝났다고 주문을 받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라면 몇 개 챙겨놓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숙소 주인아주머니에게 받은 생선

혹시나 해서 숙소 주인에게 라면 등 먹을 것을 파냐고 물어보니, 맥주밖에 없단다. 일단 맥주를 한 병 사며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배가 고프다고 하니, 싱긋 웃으며 주방에 들어가 훈제 생선 두 조각을 꺼내 접시에 담아준다. ‘쓰바씨바’를 몇 번 외치며 감사를 표한 후 방으로 들어와 맥주를 생선을 먹었다. 생선이 너무 비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변기에 버렸다. 그나마 오른 취기에 금세 잠들었다.

복잡한 통관절차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몽골 국경을 넘어가는 날이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과정이 길고 사람도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출발 준비를 일찍 마쳤다.

전날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배가 무척이나 고프지만, 또 한밤중에 라이딩을 하기는 싫었기에 마켓에서 초코바를 사서 한입에 다 우겨넣고 바이크에 올랐다.

날씨는 흐리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이슬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는 지역도 있지만 우비를 입으면 문제되지 않을 정도다.

점심 무렵 러시아와 몽골 국경에 도착했다. 저 멀리 출입국사무소가 보이고 그 앞으로 차들이 길게 이어져있다.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몰려든 차들이다.

러시아와 몽골 국경을 지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차들

줄에 선 후 바이크에서 내려 필요한 서류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여권과 몽골 비자, 국제 바이크 등록 서류, 러시아 여행자 보험 서류와 국제운전면허증 등 서류만 해도 한 무더기다.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통관 절차를 위해 가입한 서류들은 죄다 러시아어로 돼있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모든 서류를 꺼내 출입국사무소에 보여줄 생각으로 갖고 있는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바이크에 앉아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먼저 가라고 손짓한다. 알혼섬에 들어갈 때처럼 바이크를 먼저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친절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맨 앞으로 들어가 국경 통과 절차를 밟았다.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선 여권으로 내 신분을 확인한 후 사무실에 들어가 몽골어와 러시아어가 잔뜩 쓰여 있는 서류를 받아 다음 장소로 가서 도장을 받는다. 도장을 받은 후에는 다시 처음에 여권을 검사했던 곳으로 가서 서류를 건네고, 세관으로 가서 또 통관 절차를 밟아야한다.

무슨 서류를 달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내가 가진 서류를 몽땅 책상에 펼쳐놓고 ‘알아서 가져가세요’ 하는 시늉을 하며 통관 절차를 밟았다.

바이크에 꽁꽁 묶어둔 짐들도 전부 풀어서 하나하나 검사받아야한단다. 짐을 풀고 다시 싸는 데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능청스럽게 웃으며 ‘이걸 어떻게 다 푸느냐, 힘들어서 안 된다. 봐줘라’라는 의사를 표했지만, 직원은 전혀 봐주지 않는다.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통관 절차를 하나하나 해쳐나갔고, 큰 문제없이 마무리했다.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

러시아-몽골 출입국사무소

 여권에 몽골 입국 도장을 받고 나가기 위해 줄은 서있으니, 가슴이 또 마구 뛰기 시작한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여행지가 바로 몽골이다. 광활한 초원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할 정도로 기대된다.

오프로드가 걱정이긴 하지만 어차피 제대로 고생해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기에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바이크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잠시 기다리니 출입국사무소 문이 열린다. 드디어 몽골이다.

잔뜩 흐린 하늘과 쌀쌀한 날씨. 통관 절차 때문에 떨어지지 않을 만큼만 아무렇게나 구겨 넣은 짐 가방을 바이크에 얼기설기 묶고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나라 몽골에 들어섰다.

자투리 여행정보 28 - 몽골

몽골의 밤하늘. 말 그대로 별이 쏟아져 나를 덥칠 것 같다.

몽골은 면적이 156만 4116㎢로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나라지만, 인구는 300만명 정도로 굉장히 적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나라. 국토의 평균 해발높이가 1600m에 달하는 고원에 위치한 데다 전체 국토 면적 중 약 0.76%만이 경작이 가능한 땅일 정도로 척박한 나라다. 이 때문에 정착해 농사를 짓는 등의 방식보다는 말이나 양 등을 몰고 다니며 유목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몽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미리 비자를 받아야 한다. 나는 서울에 있는 몽골대사관에서 미리 비자를 발급받았다.

몽골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는 밤하늘이다. 나라가 워낙 높은 곳에 위치한 데다 사방을 둘러봐도 지평선이 보일만큼 넓게 펼쳐진 초원이어서 하늘이 굉장히 넓고 가까이 느껴진다.

초원에 누워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