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50.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50. ‘아시아의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음악이 들리는 알마티의 밤

알마티에서 하루 더 있기로 했다. 볼 게 많은 아름다운 도시여서 이대로 지나치기엔 아쉬울 것 같다. 바이크 수리점도 찾아볼 생각이다.

알마티가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에 바이크 수리점이 있을 것 같다. 다음 목적지인 키르기스스탄에 들어가기 전 바이크를 수리해 파미르고원 등 산악지대를 대비해야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에서 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고 바이크 수리점을 검색하니 예상대로 몇 개 나온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막상 가보면 검색 결과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 최대한 많은 수리점을 알아뒀다.

알마티 천년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는 조형물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 밤의 알마티를 보러 친구와 나간다. 밤에 봐도 아름답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은 보이지 않지만, 낮과는 다르게 주황색 가로등 조명을 감싸는 차가운 공기가 겨울처럼 맑고 청량하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도시를 구경하고 돌아다니다 분위기 좋은 가게에 들어갔다. 물가가 싼 카자흐스탄답게 열빙어 등이 있는 모둠튀김이 9000원 정도다.

열빙어와 오징어 등이 들어있는 모둠튀김.

야외에 자리가 마련돼 있어 거리를 바라볼 겸 밖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괜찮더니 나중에는 너무 추워 못 견딜 정도다. 직원이 준 담요를 두르고 남은 맥주를 마신 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후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바이크 수리점에 들러 점검을 받은 후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전날 검색해둔 수리점들을 향했는데, 몇 군데 헛걸음 한 후 겨우 찾았다. 한국에서 바이크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자, 직원은 크게 반기며 차와 빵 등을 내온다.

수리점 직원이 빵과 차, 말린 과일 등을 내줬다.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과 사진으로 그동안의 여행을 설명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리의 여행 이야기를 들어준다. 바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바이크 여행을 얘기하는 데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바이크 점검을 마치고 나니 오후다. 이제 키르기스스탄으로 출발한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까지는 약 300km. 바이크로 하루 안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바이크 수리점에서 여유를 부렸더니 시간이 촉박하다. 국경 근처에서라도 캠핑할 생각으로 떠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다. 수리점 직원이 준 차와 빵으로 점심을 해결한 이후 아무 것도 안 먹고 바이크를 탔더니 배가 고프고 몸이 지쳤다.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서있는 휴게소에서 양고기와 빵을 먹고 밤 9시가 돼서야 국경에 도착했다.

다행히 수속을 밟을 수 있다. 국경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이 빨리 빨리 처리하고 퇴근하고 싶어서인지 검사를 꼼꼼하게 하지 않는 듯하다. 몽골에서 러시아로 나올 때는 오래 걸렸는데, 분위기가 딴판이다.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에 왔다. 이번 여행의 네 번째 나라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라 ‘아시아의 스위스’라는 불리기도 하는 키르기스스탄. 이번 여행에서 최고의 도전인 파미르고원을 품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새로운 느낌은 없다. 숙소를 찾는 게 급선무다. 알마티에서 검색해둔 숙소가 있는 비슈케크를 향해 바이크를 몰았다.

메모해둔 숙소 주소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없다. 도시 한복판에서 캠핑을 할 수도 없어서 바이크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며 숙소를 찾았다.

거리를 한참 돌아다니다 ‘트레블러 게스트 하우스’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을 찾았다. 우리가 검색해둔 곳과 이름이 같다. 주소가 잘못 나왔거나 건물을 이전한 듯하다.

벨을 누르고 철문을 두드렸으나 기척이 없다. 안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봐서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바이크 경적도 울렸다. 한밤중이라 주변에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참을 시끄럽게 하자, 안에서 젊은 사람이 나온다. 자고 있었던 듯 눈을 비비며 나온 그에게 철문 사이로 여행자들인데 숙박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문을 열어준다.

철문 안에 마당이 있다. 바이크를 끌고 들어가 세운 뒤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에 침대 세 개가 놓여있다. 다행히 다른 손님은 없어 나와 친구 둘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샤워를 하고 나와 컵라면을 하나씩 끓여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비슈케크에 트레블러 게스트하우스.

세계 최고의 식당 ‘호반’

다음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어서 비슈케크 관광에 나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설레는 여행이지만 특히 더 기대하는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서 본 ‘호반’이라는 한국 식당이다. 

주로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카페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다가 ‘호반’을 알았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한국인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한국인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 특히 한국 사람이 만들어주는 한식을 더 기대하며 숙소를 나섰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니 넓은 마당이 딸린 식당이 나온다. 태극기와 키르기스스탄 국기, 그리고 젓가락이 어우러진 마크를 달고 있는 식당의 이름은 ‘호반’이다.

한국식당 '호반'

마당에 들어서면서 “우와! 한글이다”라고 외쳤더니, 마당 한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장님이  “한국사람 오랜만에 보죠?”라고 자연스럽게 인사한다. 

바이크를 타고 여기까지 여행 왔다고 말하자, 고생 많았겠다며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바쁘니 저녁에 다시 와서 술 한 잔 함께 하자고 하신다. 

저녁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음식을 시켰다. 물통과 컵, 산삼이 새겨있는 숟가락까지, 한국에서 자주 봐 익숙한 식기들이 식탁을 채운다.

내가 주문한 음식은 내장탕. 이곳에서 과연 한국에서 먹은 것과 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잠시 후 나온 음식은 한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맛집에서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맛있다.

나중에 들었는데, 사장님이 한국에서도 식당을 하셨단다. 그 솜씨가 어디 가지 않은 듯, 반찬 하나하나 맛없는 게 없다. 친구와 공기밥을 세 개씩 비웠다. 든든하다. 샤슬릭을 배가 터지게 먹어도 느낄 수 없는 든든함이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밥을 다 먹고 나서 소화를 시킬 겸 도시를 돌아다녔다. 카자흐스탄과 별로 멀지 않은 도시인데도 느낌이 굉장히 다르다.

숲 속 놀이터
도시 한 복판에 있는 숲

카자흐스탄이 도시에 멋지게 공원을 만들어놓은 느낌이라면, 키르기스스탄은 숲속에 있는 도시 느낌이다. 도시 일부가 공원인 게 아니라, 숲 속 일부가 도시인 것처럼 자연과 도시가 잘 어우러져 있다. 

수도인 만큼 대통령궁 등 큰 건물도 많은데, 그 옆에는 어김없이 숲이 있다. 사람들은 초록이 가득한 숲에서 산책하고, 탁구 치고, 나들이한다. 곳곳에 동상이 있고 공원 한 쪽에선 그림을 판매하기도 한다.

그림시장.

도시를 둘러본 후 유성매직을 사서 숙소로 돌아와 내가 여행한 나라 이름을 바이크에 새겼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몽골과 카자흐스탄을 지나 키르기스스탄까지 오는 데 석 달 정도 지났다.

앞으로 이 여행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서너 달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한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여행에서 무언가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바이크에 지나온 국가의 이름을 적었다.

자투리 여행정보 50.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또는 키르기스공화국으로 불린다. 중앙아시아 북부 내륙에 있는 나라로 러시아 혁명 후 소비에트 투르키스탄 공화국의 일부가 됐다가 1991년 독립했다.

면적은 19만9951㎢로 한반도(22만㎢)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600만 명에 불과하다. 나라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3분의 2이상이 해발 3000m 넘는 고산지대인 데다 하천 등으로 인한 지형 변화가 많아 ‘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한다. 

목축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며, 몽골의 유목민족과 뿌리가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쪽으로 타지키스탄과 맞닿아 있는데, 그 지역에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이 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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