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7. 떠나지 말아야할 이유와 떠나야하는 이유

씻은 듯 다 나은 내 바이크

일행 두 명이 먼저 떠나기로 한 날이다. 마지막 만찬으로 한국 식당 ‘김치’에 가서 밥을 든든하게 먹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은 아마 모두 무사히 한국에 돌아간 이후 일 것이다. 이 넓은 대지 어딘가에서 각자의 여행을 할 친구들이 무사하길 바라며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한국에서 택배가 도착했다. 드디어 내 바이크를 고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젠 정말 혼자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이르쿠츠크의 바이크 수리점

간신히 움직이는 바이크를 호스텔 주차장에서 꺼내 미리 알아둔 수리점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수리점은 큰 창고 같은 건물인데, 기술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청년이 그 안에서 바이크를 고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바이크를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고장 난 여러 바이크에서 필요한 물품을 빼 내어 완성차 한 대를 만들어 내는 정도다.

수리점 내부에 가지런히 정리 된 공구들

먼저 일행의 바이크를 수리하는 동안 수리점 안을 천천히 구경했다. 벽에는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있고, 못이 촘촘히 박힌 타이어도 보인다. 처음 보는 모습이 신기해 직원에게 물어보니 ‘바이칼 호수가 얼면 그 위를 달리기 위해 못을 박아둔 것’이란다.

꽁꽁 언 바이칼 호수를 달리기 위해 못을 촘촘히 박아둔 타이어

겨울에 바이크를 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지만 꽁꽁 언 바이칼 호수 위를 바이크로 달리는 경험은 정말 멋질 것 같다.

수리점 안에는 바이크도 여러 대 있었는데, 연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된 바이크가 대부분이다. 배기량 등을 볼 때 처음엔 최고급이었을 이 바이크들에는 몇 사람이 앉았을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바이크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흔쾌히 친구가 될 수 있는 러시아 사람들이기에, 이 바이크들의 주인들도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리라.

잠시 구경을 하고 있으니 일행의 바이크가 고쳐졌다. 이제 내 바이크 차례다. 바이크를 수리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 직원에게 맡겼다. 내 바이크는 러시아에서 보기 힘든 기종인데, 그는 시동을 한번 걸어보더니 곧바로 증상을 알겠다는 듯 수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몽골의 오프로드로 들어가야 하기에 바이크 출력을 더 높일 계획이어서 준비해간 기어 등 다른 부품들과 함께 고장 난 부품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먼저 엔진오일을 다 빼낸 후 엔진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치타에서 벗어난 후 늪에 빠져 엑셀을 과하게 당겼다가 엔진 내부의 클러치디스크가 손상된 것이 고장의 원인이었다.

엔진을 열어보니 클러치디스크가 까맣게 타버릴 정도로 손상돼있다. 고장 난 부품을 빼내고 한국에서 받은 반짝이는 새 부품으로 갈아 끼웠다.

내 바이크를 수리해준 러시아 청년

몽골의 오프로드에 대비해 소소한 정비도 함께 했다. 직원은 처음 보는 기종의 내 바이크도 뚝딱뚝딱 잘 고쳤고, 잠시 후 엔진을 다시 조립하는 것으로 수리를 끝냈다.

바이크를 끌고 수리점 밖으로 나와 앞마당에서 시운전을 해보니 처음 샀을 때처럼 최고의 상태다. 저속에 특화된 상태로 기어를 바꿔 최고 속도는 조금 줄었지만 처음에 치고나가는 속도가 제법이다. 전에 운전하던 습관대로 출발할 때 스로틀을 감으면 앞바퀴가 들릴 정도로 힘이 좋아졌다.

성난 황소처럼 넘치는 활기를 되찾은 내 바이크. 기분이 너무 좋아 달려가 직원을 끌어안고 쓰바씨바를 연신 외쳤다.

치타에서부터 이곳까지, 정말 오랫동안 아팠던 내 바이크가 씻은 듯 다 나았다. 이제 다시 떠나기만 하면 된다. 오프로드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 바이크 상태라면 그 어떤 곳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뜻밖의 생일 축하 메시지들

숙소로 돌아오니 저녁이다. 와이파이를 연결하니,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잊고 있었던 내 생일이다. 오늘이 며칠인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신경 쓰지 않았더니 생일마저 까먹었다. 잊지 않고 연락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답장했다.

어두운 방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 위에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한참 하다 보니 눈물이 난다. 먼 곳에 있는 나를 생각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 마음이 고맙고 힘이 된다. 이제 혼자가 될 순간을 앞두고 큰 두려움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그리움이 몰려와 한참을 흐느꼈다.

다음날 출발을 위해 마음을 진정하고 잠시 앞마당으로 나가 기분을 전환한 후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은 큰 배낭에 넣고, 비교적 자주 쓰는 물건들은 바이크에 달아놓은 사이드 백이나 작은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방에 널브러져있던 짐들이 하나씩 배낭 안으로 들어가며 정리됐다.

짐을 다 싸고 나니 방이 휑하다. 일행 두 명이 먼저 떠나서 더 그런 것 같다. 남은 친구와도 마지막 밤이다. 근처 슈퍼에 가서 맥주와 과자를 사다 먹으며 서로의 계획을 응원했다.

빗속 이별과 출발

날이 밝았다. 떠나기로 한 날인데 날씨가 심상치 않다.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도 매섭게 분다. 씻고 나오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하루만 더 있다가 출발할까? 하지만 이렇게 계속 출발을 미룰 수는 없다. 쉴 만큼 쉬었기에 이젠 정말 떠나야할 때다.

떠나기 전 호스텔 주인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일행과 함께 마지막 만찬으로 한국 식당 ‘김치’에 가기로 했다. 짐을 다 챙긴 후 숙소 주인에게 인사했다.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 비가 정말 많이 와 헬멧을 쓰고 샤워기 아래에 서있는 기분이다. 우비를 입었지만 곳곳에서 비가 새 서서히 옷이 젖어든다.

운전에 집중해 천천히 식당에 도착했는데, 뒤에 따라오던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식당 앞에서 기다렸지만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났나?' 하는 걱정에 바이크에 오르려는 순간, 멀리서 다가오는 일행의 바이크가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트램 레일에 걸려 넘어졌단다. 다행히 튼튼한 옷을 입었고, 바이크 속도가 빠르지 않아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일행은 다리를 다친 듯 통증을 호소했다.

일단 식당 안으로 피신해 잠시 진정한 후 밥을 먹었다. 일행은 오늘 출발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무릎이 아프고, 무엇보다 많이 놀라 비오는 날에 출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밥을 다 먹은 후 일행과 함께 숙소로 다시 돌아갔다. 숙소 주인은 다시 와서 반갑다며 미소로 맞이했다. 일행을 부축해 방으로 안내하고 안정을 충분히 취하고 출발 할 것을 권했다. 나는 몽골을 향해 먼저 떠나기로 했다.

여전히 비가 많이 온다. 조금 더 머물고 싶다. 남은 일행이 걱정되기도 하고, 이르쿠츠크에 정이 많이 들었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언제나 너무 많고, 떠나야하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이르쿠츠크공항에서 우리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안에 그리운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르쿠츠크에 있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행을 할 만큼 했고, 사람들이 너무 그리웠다. 짙은 향수에 시달려 밤새 울다가 다음날 아침 눈이 퉁퉁 부어 일어나기도 했다. 자면서도 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여기에 바이크를 맡겨두고 잠시 한국에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모두 뿌리치고 몽골로 떠나기로 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지금 발길을 돌리면 더 큰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생길 것 같았다.

일행의 사고를 걱정하며 떠날 채비를 했다. 보호대가 들어있는 바이크 재킷과 바지를 꺼내 입고 그 위에 우비를 입었다. 신발이 젖지 않게 덧신도 신었다. 비는 여전히 강하게 퍼부었고, 껴입은 옷은 한 걸음을 떼기도 힘들만큼 버거웠다.

한숨을 몇 번이나 쉬고 눈을 꾹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한 후 숙소 주인과 인사를 나눴다. 일행이 숙소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가자! 올란우데로

오늘의 목적지는 올란우데다. 올란우데는 러시아 부랴트 자치공화국으로, 부랴트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다. 몽골로 향하는 길목이어서 러시아에서 육로로 몽골을 가기 위해선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도시다.

바이크에 올라 GPS 좌표를 확인하고 키를 돌렸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와 손목을 통해 강한 진동이 느껴진다. 그래 너도 달리고 싶었겠지. 한참을 창고에만 있었으니 심심했겠지.

올란우데로 떠나는 순간 일행이 마지막으로 찍어준 내 모습

일행과 마지막 눈인사를 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충분히 서로 감정을 공유했기에 말은 필요 없었다. 빗소리를 이기려 크게 외친 ‘갈게’라는 말에 ‘가라’라는 한마디가 돌아왔다. 무지막지하게 비가 내리는 날, 그렇게 홀로 올란우데를 향해 스로틀을 당겼다.

자투리 여행정보 27 - 빗속에 라이딩

여행을 하다보면 비를 만나기 마련이다. 비가 온다고 바이크를 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가장 신경 썼던 것 중 하나가 ‘방수’다.

일단 방수 가방을 샀고, 커버도 준비했다. 특히 카메라나 노트북 등 전자기기는 가방에 넣기 전에 꼭 비닐 팩에 넣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전자기기가 고장 나지 않은 것을 보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핸드폰은 방수 케이스를 씌워 다녔다. 방수와 방진 기능까지 있는 케이스를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부피가 커지긴 했지만 여행 준비물 중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우비는 시중에서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는 3만원대로 선택했다. 일부 바이크 슈트는 방수 기능이 있기도 하고, 바이크용 우비가 따로 있기만 가격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싸다. 브랜드 정장 한 벌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저렴한 우비는 비를 ‘대충’ 막아줬다. 이음새 부분으로 비가 들어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몸이 다 젖어버렸다.

장갑은 ‘공업용 고무장갑’을 샀다. 손가락과 손등, 손목 등에 보호대가 들어간 바이크 장갑위에 덧씌워 다녔는데, 장갑 부피가 워낙 커 가정용 고무장갑은 들어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팔을 타고 들어오는 빗물을 막지는 못했다.

힘들지만 비가 오는 날에 달리는 자유로움은 또 다른 재미다. 한참을 달리다 손발이 쪼글쪼글해진 상태에서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앉아 이름 모를 러시아 담배 한 개비를 피웠던 기억은 지금도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

인천투데이 김강현 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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