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긴 여행을 마치며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5. 마지막 이야기
또 한 번 긴 여행을 마치며
한 순간 사고로 내 여행은 끝났다. 2016년 7월 24일 한국을 떠나 282일 만인 2017년 5월 1일, 다시 돌아왔다.
바로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았다. 오른쪽 갈비뼈 세 개가 부러졌고 쇄골이 부러진 채로 다시 붙어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찍은 엑스레이로는 발견하지 못한 날개 뼈 골절도 발견했고 부러진 갈비뼈로 인한 폐 기능과 소화 기능 장애도 생겼다.
잘못 붙어버린 쇄골을 절단한 후 철심을 박아 고정하는 수술을 했다.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 전신마취가 아닌 수면마취로 수술했으며, 폐 기능이 돌아올 때까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도 빨랐다. 수술 이후로 1년 간 쇄골에 철심이 박힌 채 생활했지만 회복 후에는 취직해 기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하고 친구들을 만나며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여행은 환상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내 글을 읽다가도 ‘이게 진짜 내가 한 여행이 맞나, 내가 이걸 어떻게 견뎠지’ 싶을 만큼 아득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행은 내 삶 곳곳에 남아있다. 눈을 감고 그 때 들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와 비슷한 바람을 맞거나 그 때와 비슷한 풀 냄새를 맡으면 다시 그 곳에 있는 듯 설레기도 한다.
여행기를 연재하기 위해 여행을 복기하며 그 때 감정에 빠져서, 혹은 그 때가 그리워서 울컥 한 적도 많다.
282일, 1만 8000킬로미터 여행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65편으로 세상에 나왔다. 또 한 번 긴 여행을 한 기분이다. 내 여행을 응원해준 모든 분에게, 그동안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읽어준 독자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점이 아닌 선의 여행
내가 바이크 여행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이동수단에 올라타 한 곳에 가서 점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점의 여행이 아니라 내가 이동하는 것 자체가 여행인, 선을 그리는 2차원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 선택은 옳았다. 바람과 비를 온전히 맞았고 힘들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으며 넘어지고 구르며 온몸으로 세상을 누볐다. 바이크는 세상과 나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이동수단이었다.
이 여행기를 쓰는 동안 많은 사람이 물었다. ‘그 오래 전에 여행한 게 기억이 나?’라고. 가끔은 나도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다. 넘어지고 뒹군 그 순간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위험하고 질이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인종차별이 심하고 테러를 일으키며, 도둑질과 강도짓,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일 거라 생각했다. 직접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만들어낸 색안경을 그대로 받아 쓴 채 그들을 바라봤다. 그게 심각한 인종차별이지만 그 때는 그게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베리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난폭하지 않았으며, 중앙아시아에서 만난 무슬림은 친절하고 다정했다. 반면 ‘젠틀맨’이라고 생각했던 영국 사람들은 모두 신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다 그렇다.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어느 나라건, 어느 종교건 마찬가지다. 누군가 특정 집단을 겨냥해 그 안에 있는 나쁜 부분을 부각하며 손가락질하고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것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여행 이전에 그렇게 생각한 것이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내가 이전에 그랬듯, 많은 이가 자신이 하는 생각이 인종차별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꼭 얘기하고 싶다. 나처럼 한심한 짓 하지 말고 직접 만나보라고. 어떤 이들을 정의 하는 것은 직접 만나고 겪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떠나야하는 이유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동시에 이별했다. 누군가를 만나 같은 추억을 나눴고 그 기억을 간직한 채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어느 장소에 내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있었지만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만든다. 특히, 나는 이 여행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두고 떠나는 이별을 계속 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아닌, 내 선택에 의한 이별이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떠난 것부터 이별의 시작이었다. 내가 떠나야했던 이유는 별 것 없다. 반면, 떠나지 말아야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는 동안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는 항상 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그 반대 이유보다 훨씬 더 크고 많다.
그러나 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다. 모르고 살아도 무방하고 알고 난 후에는 ‘차라리 모르고 살 때가 편했다’는 생각도 가끔 하겠지만, 많은 이가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하지 말아야할 수많은 이유를 뿌리치고 도전했고 그런 도전들이 진화와 진보를 만들지 않았을까.
내가 떠나지 말아야할 수많은 이유와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도전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든 걸 버리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고 대단해”
여행을 이야기할 때마다 정말 많이들은 말이다. 절반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점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 시점에서 모든 걸 두고 훌쩍 떠나기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는 내가 생각해도 작지 않았고 그 도전으로 얻은 게 많으니 내 여행은 다른 사람들 말처럼 ‘대단한’ 여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 삶 역시 대단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은 많다. 또, 많은 사람이 공부하거나 회사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가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참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내가 낸 용기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행의 끝
자아를 찾고자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고 긴 여행을 마치면 그 끝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기대 하나로 무작정 떠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 예상과는 다르게 여행의 끝은 허망했다. 당연하다. ‘진정한 내 모습’이라는 모호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어느 섬에 가면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것처럼 환상에 불과했다. 여행의 끝에는 계속 이어지는 삶이 있을 뿐이다.
내가 ‘목숨 걸고 떠났다’고 말한 이 여행도 하등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조금 다른 한순간의 삶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여행이 내게 준 것은 적지 않다. 살면서 가장 무서웠고 가장 설렜던 것도 이 여행이었으며, 이 여행에서 가장 기쁘고 가장 반갑고 가장 그립고 가장 많이 울었던 순간을 맞았다.
처음 보는 도시와 길에서 때로는 두려움에 떨었고 때로는 외로움에 작아졌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는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했으며, 눈 속에 텐트를 치고 앉은 채 잠이 들 때는 내 심장소리가 온 세상인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두려움에 떨며 도망친 적도 있었고 온갖 욕을 해가며 그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기도 했다. 수도 없이 한계에 부딪쳐 무너졌지만 딛고 다시 일어날 때마다 세상은 그만큼씩 넓어졌다.
여행의 가치를 활자로 풀어내는 것은 내가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된다고 해도 불가능 할 것 같다.
다만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여행 덕분에 하늘이 여러 색깔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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