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여행정보 30 -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0. 울란바토르의 첫인상과 속 모양

어? 이게 아닌데? 

아침 일찍 다르항에서 출발해 점심을 먹은 것과 스쿠터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린지와 파올로를 만난 것 외에는 멈추지 않고 울란바토르를 향해 계속 달린다. 날씨는 조금 더울 정도지만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다.

다르항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거리는 약 230km. 무리하지 않아도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뻥 뚫려있는 도로에서 가끔씩 속도를 올린 것 말고는 시속 70~80km로 주변을 보며 달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주변에 차들이 많아진다 싶더니 건물이 한둘씩 나온다. 아! 이제 울란바토르에 도착했구나.

잠시 후 엄청난 차량에 가로막혔다. 이 여행에서 첫 번째 교통체증이다. 울란바토르로 들어가는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차가 꽉 들어차있다. 연식이 내 나이쯤은 돼 보이는 차들이 뿜는 검은 연기가 도시에 가득하다. 어? 이게 아닌데.

예상했던 몽골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검은 매연에 무방비로 노출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헬멧 쉴드를 내리고 벤틸레이션(환기를 위해 있는 구멍)을 닫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벤틸레이션을 닫았다고 해도 매연은 헬멧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고, 이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더해 더운 날씨에 도로 위에 멈춰있으니 땀이 흥건하다.

설상가상으로 운전자들이 어찌나 험하게 운전하는지,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나를 공격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정없이 끼어든다. 그렇게 기대했던 몽골이건만 이건 정말 아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클러치를 잡고 기어를 조절하는 것도 힘들다. 스쿠터를 타고 올 걸 그랬나?
린지와 파올로가 알려준 숙소가 그리 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전범기가 여기서 왜 나와

더운 데다 매연에 둘러싸여 가뜩이나 좋지 않은 기분에 이건 또 뭔가? 자동차 수리점으로 보이는 상가에 도로를 따라 전범기(=욱일승천기) 모양의 깃발들이 나란히 휘날리고 있다.

상가 앞에 휘날리고 있는 전범기 디자인의 깃발. 보자마자 너무 화가나서 바이크를 타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며 전범기 디자인을 본 게 처음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전범기를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의 옷을 입은 사람을 본 적 있고, 튜닝한 차량 번호판에도 전범기 디자인이 사용된 것을 봤다. 

그때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충분하게 설명을 할 수 없기에 그냥 넘어갔는데, 휘날리는 전범기 모양의 깃발을 보니 기분이 나쁘다.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기. 우리 민족의 씻을 수 없는 상처는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이 디자인을 교묘하게 또는 대놓고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도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으니 속이 뒤집힌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장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선명하다. 나치의 문장은 독일 등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하는 여행이어서인지 전범기가 더욱 밉게 보인다. 

이를 기분 나빠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 몽골을 벗어나기 전에 이와 관련해 실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몽골에서 만난 오아시스, 그리고 한국

오아시스 게스트하우스의 모습. 마당 뒷쪽에 있는 게르는 단체로 예약이 가능하다.

오아시스. 숙소 이름이 몽골과 아주 잘 어울린다. 2층 건물에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돼있는 다인실 방이 있고, 마당에는 몽골 전통 집인 게르로 된 1인실도 있다.

1층에는 시간에 맞춰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식당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바(BAR)가 있다. 바에선 맥주ㆍ음료 등을 판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인지, 자갈로 된 숙소 마당에는 바이크 5대와 캠핑카 2대, 차량 2대가 보인다. 오버랜더(=세계여행자)들의 숙소임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숙소의 1층 바. 맥주와 음료, 케익 등은 장부에 이름을 적은 후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다. 계산은 나중에 한 번에 가능하다.

바이크에서 내려 헬멧을 벗고 나를 보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당에서 바이크를 고치고 있는 백인 아저씨도,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동양 여성들도 내게 관심을 보이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간단하게 답변한 후 짐을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 직원이 독일어와 영어를 할 줄 알아, 안내를 받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다. 가장 저렴한 방은 약 1만 4000원으로 러시아에서 묵었던 호스텔보다는 조금 비싸다. 하지만 여러 정보를 얻고, 바이크 점검도 하기 위해 이곳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방값을 카드로 결제하려 하자, 주인이 카드가 안 된다며 현금을 달라고 한다. 다르항에서 출금한 돈이 얼마 남지 않아 일단 짐을 풀고 현금인출기를 찾으러 나섰다.

일단 무작정 걷기로 했다. 장소를 미리 찾아보고 출발할 수도 있었지만 처음 와본 도시인만큼 천천히 걸으며 곳곳을 보고 싶었다.

일부러 큰 도로로 바로 나가지 않고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옛날 우리나라와 많이 닮은 도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우리나라 1960~70년대 골목길처럼 정감 있다. 내 고향인 강원도에서 장날에 할머니 손을 잡고 읍내에 나가 걸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우리 모습과 닮았다.

울란바토르에 처음 들어올 때 느낀 짜증은 어느새 사라졌다. 괜스레 흐뭇하다.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띤 채 큰 길로 나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순간 내 다리에 무언가 부딪쳐 아래를 보니 손바닥 크기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더니 이내 배를 뒤집고 누워 애교를 부린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강아지

‘와! 너 뭐야. 아가야 여기서 뭐해’라는 소리가 웃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쭈그려 앉아 배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영화 ‘모터사이클다이어리’에서 체게바라가 여자 친구에게 주기 위해 함께 여행한 강아지 ‘컴백’이 떠오른다. 나도 이 강아지와 함께 여행하고 싶다.

하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데 또 다른 생명까지 감당할 수는 없는 일. 잠시 더 쓰다듬어 준 후 발길을 돌렸다. 강아지는 한참을 쫄랑쫄랑 따라오는가 싶더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상태로 길을 걷다가 큰 마트를 발견했다. 대게 마트에는 현금인출기가 있다. 들어가 보니 밖에서 봤던 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마트 먼저 구경하기로 하고 매장 안에 들어갔는데,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산 물건이 많다. 각종 라면부터 김치, 국수 등 먹거리뿐만 아니라 섬유유연제까지. 심지어는 홍삼과 ‘때 비누’도 있다.

마켓에서 만난 반가운 한글. 한인마트는 아닌것 같았는데도 한국 물건들이 굉장히 많았다.

한참을 구경하고 저녁으로 먹을 잔치국수와 김치를 사며 직원에게 현금인출기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익스큐즈 미. 웨어 이즈 더 에이티엠?”

몽골 젊은 여성인 직원이 놀랍게도 한국말로 대답한다.
“여기 없어요. 나가서 조금만 옆으로 돌아가면 나와요”

“아…땡큐. 아니 아니 감사합니다”

당황한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트를 나왔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몽골 사람들은 한국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단다.

한국과 가까운 나라 몽골. 이곳에서 남은 여행이 기대된다.

Same! Don't use.

마켓에서 사온 저녁.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은 인스턴트임에도 너무나 맛있었다.

현금을 뽑고 숙소로 돌아와 숙박비를 낸 후 밥을 먹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범기’가 얼마나 나쁜지 세상사람 단 한 명만에게라도 알리고 싶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일제의 전범기가 같은 것’이라고, ‘사용하지 말라’고 알릴 수 있는 ‘등자보’를 만들기로 했다.

몽골을 통과하며 바이크 부품을 한국에서 받을 생각이었다. 부품 고장을 대비한 것이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라 배송이 러시아만큼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부탁해놓은 상태였다.

부품과 함께 등자보를 받을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포토샵이나 관련 프로그램을 전혀 다룰 수 없어, 디자인은 구상했지만 그 구상대로 만들 수가 없다. 밤늦게까지 노력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한국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부탁했고, 시안을 받아본 후 잠들었다.

전범기의 의미를 알리기 위해 만든 등자보 시안. 한 눈에 봐도 의미를 알릴 수 있는 등자보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쳐 디자인을 생각해냈다.

자투리 여행정보 30 -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

'붉은 영웅' 수흐바타르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몽골의 체게바라라는 수흐바타르를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수흐바타르는 1893년에 태어났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그는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인민의용군을 결성하고 몽골의 독립을 선포한 뒤 몽골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을 쫒아내고 조국을 해방시켰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공산국가가 된 몽골에서 그는 초대 국방장관을 맡았으나 결핵으로 1923년에 세상을 떠났다.

몽골 동남부에 있는 수흐바타르 아이막, 북부에 위치한 수흐바타르(러시아 접경 도시)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이다.

울란바토르 중앙 광장 이름도 수흐바타르 광장이었으나 현재 공식 명칭은 칭기즈칸 광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수흐바타르 광장이라고 부른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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