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4. 마음이 무너지다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34. 마음이 무너지다
  • 김강현 기자
  • 승인 2018.11.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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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사이에 있는 두 국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땅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4. 마음이 무너지다

끝도 없는 몽골의 대지
끝도 없는 몽골의 대지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문득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의식하고 뱉은 말이 아니다. 누군가 나한테 한 말처럼 멀게 느껴지며 내가 한 말에 놀라면서도 공감이 된다.

몽골의 오프로드는 끝도 없이 계속되고 저 멀리 지평선은 한참을 달렸는데도 가까워지지 않고 그 사이에 아지랑이만 일렁거린다.

아침에 텐트를 접을 때 바이크를 타고 다가온 현지인 이외에는 단 한 명도, 사람의 흔적조차 보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

나와 내 바이크, 세상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와 내 바이크,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풍경이 계속 같아 내가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땅이 밀려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잠시 쉬려고 멈췄더니 착시현상처럼 눈앞에 땅이 계속 일렁이며 다가온다.

빨래판길이나 모랫길 혹은 튀어나온 돌이라도 밝으면 바로 사고가 나기 때문에 온 정신을 집중해 바이크의 바로 앞, 길만 보며 달린다. 그럼에도 수도 없이 바닥을 굴렀더니 온몸에 흙이 가득하다.

몇 번이나 사고가 나서 굴렀더니 옷이 흙투성이다.
몇 번이나 사고가 나서 굴렀더니 옷이 흙투성이다.

멈춰서 물을 마시려보니 설상가상으로 물통 하나가 어느새 사라졌다. 단단히 묶는다고 묶었는데, 오프로드의 진동 때문인지 날아가 버리고 없다. 다행히 아직 한 통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 물통마저 없어지면 물을 구할 수 없을 테니 조금만 마신 후 특별히 신경 써서 더 단단히 묶고, 초코바 하나로 점심을 때운 뒤 다시 출발했다.

점심 대신 미리 사둔 초코바 하나를 먹었다.
점심 대신 미리 사둔 초코바 하나를 먹었다.

이제 낙타가 보여도 서지 않는다. 처음에나 신기했지 몇 번 보다보니 익숙해져 '그냥 낙타구나'하고 지나간다.

넘어지지 않으려 신경은 온통 날카롭고 엉덩이부터 다리, 허리, 어깨, 손목, 목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체력이 떨어지니 마음도 약해진다.

괜히 울컥하더니 눈물이 고인다. ‘길을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헬멧 쉴드를 열고 눈물을 닦으려다 또 넘어졌다. 이번에는 충격이 크다.

‘넘어지는구나’ 생각하며 넘어지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는데, 앞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넘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도도 줄이지 않아 바이크에서 날아가 땅에 곤두박질쳤다.

엄청나게 아프다. 헬멧을 쓰긴 했지만 머리를 강하게 부딪쳐 정신이 몽롱하다. 그 와중에 넘어진 게 왜 이렇게 서글픈지, 눈물이 줄줄 흐른다. 결국 땅바닥에 누운 상태로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우는 소리가 헬멧 안에서 울려 더 서글프다. 모든 것들이,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당연하게 보내왔던 나날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턱 막힌다.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을 때 위로해준 건 몽골의 자연이다. 뜨거운 햇빛이 달궈놓은 땅은 포근했고, 따뜻한 바람은 햇볕에 잘 마른 이불처럼 아늑하다.

울음을 그치고 기절한 건지, 잠든 건지 모르는 상태로 누워있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돼 눈을 떴다. 숨을 크게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바이크를 일으켜 세웠다.

다시 마음을 무너지게 한 시 한 편

눈에 보일 정도 거리에 낮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큰 바위가 있다. 이 상태로 더 이상 라이딩 하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바위 근처에서 캠핑하기로 했다.

바위까지 가는 길은 지금까지 온 길보다 더 험했지만, 멀지 않았기에 바이크를 끌고 천천히 이동했다. 혹시라도 현지인들이 지나가다가 텐트를 보고 습격할까 싶어 바위 뒤편에 텐트를 쳤다.

길에서 내 텐트가 보이지 않게 바위 뒤쪽에 텐트를 쳤다.
길에서 내 텐트가 보이지 않게 바위 뒤쪽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친 후 라면을 하나 끓여 바위 위에 올라가 먹었다. 눈 아래 거대한 땅이 펼쳐져 있다.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에 올라와있는 기분이다.

바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내 뒤에 날고 있는 매가 같이 찍혔다.
바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는데, 내 뒤에 날고 있는 매가 같이 찍혔다.

 

바위 위에 드러누워 몽골의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바위 위에 드러누워 몽골의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한숨을 크게 쉬고 소리를 한껏 지르고 따뜻한 바위에 누워 있으니 기분이 나아진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어느 영화에서 나올법한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말이다. 아쉽고 그립지만 어쩌겠나. 슬픔도 그리움도 온전히 느끼며 내 감정과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해는 저물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사막에서 봤던 하늘과는 조금 다른, 다시 볼 수 없는 오늘의 노을이다.

몽골의 노을
몽골의 노을

잠들기엔 아직 이른 시간. 텐트에 들어가 랜턴을 켜고 책을 펼쳤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바이크 부품과 함께 받은 시집이다. 무게와 부피 때문에 책을 많이 가지고 다닐 수 없기에 여러 번 봐도 괜찮을 시집을 부탁했다. 

텐트 안에서 읽은 시 한 편에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 와르르 무너져 내려 또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몽골 야생에서 캠핑

다음날 아침, 거울을 안 봐도 눈이 퉁퉁 부은 게 느껴진다. 간밤에 바람이 엄청나게 매섭게 불어 이러다가 텐트가 날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에는 저 멀리 어디선가 늑대 울음소리도 들려 도끼를 꼭 쥔 채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혹시 늑대가 오면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놈만 제압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겨우 다시 잠들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텐트 지퍼를 열었는데, 텐트 앞에 무언가 있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뱀이다. 크기는 작지만 머리가 뾰족한 게 독이 있을 것 같다. 머리를 내 쪽으로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텐트를 열자 바로 앞에 뱀이 있었다.
텐트를 열자 바로 앞에 뱀이 있었다.

강원도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뱀을 잡아다 읍내에 있는 가게에 팔곤 했다. 사실 나는 아버지를 따라다녔을 뿐, 잡고 포대자루에 넣어 집에 가져온 뒤 장날에 내다 파는 것은 아버지 몫이었다. 그때 아버지가 알려준 게, ‘머리가 뾰족한 뱀은 독뱀’이라는 것이다. 잠이 덜 깨서인지 별로 무섭지 않아 텐트 폴대를 이용해 뱀 머리쪽을 잡아 저 멀리 던졌다.

뱀은 하늘을 날아가더니 퍽 소리와 함께 바위가 있는 곳에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잠이 확 달아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뱀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가다가 가만히 서있었을 뿐인데, 죽임을 당한 것일 수 있다. 미안하다. 사과하며 죽지 않았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한 후 출발 준비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기름, 주유소는 어디에

또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린다. 빨래판길과 모랫길, 자갈길이 번갈아 나온다. 힘들고 외로운 라이딩을 한참 하고 있는데 문제가 생겼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경고등이 들어온 바이크를 멈춰 하나 남은 예비 기름통에 있는 기름을 마저 넣었다. 5리터가 내가 가진 마지막이다. 몽골의 오프로드에 나빠진 연비를 생각했을 때 대략 100km 정도 갈 수 있는 양. 그 안에 주유소가 나오지 않으면 나는 이 낯선 몽골의 대지에서 시체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 함께 여행했던 친구들과 농담 삼아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혹시 여행을 하다가 누군가 한 명이 죽으면 그곳에 비석을 세워주고, 매해 바이크를 타고 찾아오겠다.’ 러시아 잔나에서 현지 라이더들의 추모제에 다녀온 후 했던 말이다.

농담 삼아 했던 말이 떠오르니 왠지 더 불길하다. 한국, 아니 러시아만 해도 100km면 기름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하루 종일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한 이곳에서는 걱정이다.

일단 내가 지나온 뒤쪽으로는 한동안 주유소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앞으로, 떠오르고 있는 해를 등지고 서쪽으로 스로틀을 감았다.

자투리 여행정보 34. 모터사이클의 종류(4) 투어러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또는 다른 세계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여행을 책임질 모터사이클의 기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 모터사이클 기종을 소개하려한다.

물론, 선택은 여행자의 본인의 몫이고, 정답은 없다. 세계여행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본 결과 모터사이클 기종은 별로 상관없다는 게 내 경험이다.
혼다의 골드윙 (사진출처ㆍ혼다)
혼다의 골드윙 (사진출처ㆍ혼다)

투어러 바이크. 이름처럼 여행을 위해 태어난 바이크다. 대표적으로 혼다의 골드윙, BMW 모토라드의 K1600GT 등이 있다.

배기량 1000~1800cc로 출력에 부족함이 없고, 정속 주행이 가능한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나 에어백, 히터, 방수기능이 있는 오디오 등 자동차 수준의 편의기능을 갖추고 있다. 짐을 잔뜩 실을 수 있는 넉넉한 적제 공간과 소파 수준의 안락한 시트로 장거리 여행에 피로감도 적다.

자동차로 친다면 고급 세단이나 리무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을 위해 태어난 바이크로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확연히 드러난다.

첫 번째 단점은 가격이다. 굉장히 비싸다. 판매되는 바이크 종류 중 가장 비싼 편이다.

두 번째 단점은 크기와 무게다. 가장 크고 가장 무겁다. 타다가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혼자 일으켜 세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바이크를 컨트롤하기도 힘들어 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달리기에는 부적합하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잘 포장된 도로 위주의 여행을 한다면 투어러 바이크의 편의성이 여행을 한층 더 수월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인천투데이 김강현기자

김강현은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인천투데이>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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