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 선생의 개항장 기행] 각국조계지 일대 탐방(8)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헨켈 주택 터(현 인천제일교회 교육관) 건너편으로 제물포구락부까지는 두 단의 축대가 길게 쌓여있다. 길 100여 미터로 봄에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오면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특히 낙조가 질 때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인과 함께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마음이 싱숭생숭, 연애하는 장면이 떠오른다면 아직 우리의 봄날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석양에 물든 축대길.
석양에 물든 축대길.

이곳에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길에서 보면 맥아더 동상의 측면 모습이 계단 끝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계단은 평상시 이곳 지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계단 위에서는 내려가는 계단이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행락객들은 잘 다니지 않는 길이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맥아더 동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계단인 것 같다.

길 왼쪽의 붉은 벽돌 담장을 따라 100여 미터 걷다보면 담장이 끝나는 곳에 ‘인천시민愛(애)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송학동 시장관사’로 알려진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

1967년부터 인천시장 관사로 쓰인 한옥. 현재 ‘인천시민愛집’으로 사용.
1967년부터 인천시장 관사로 쓰인 한옥. 현재 ‘인천시민愛집’으로 사용.

1981년 7월 1일은 인천이 경기도로부터 독립해 직할시로 승격한 날이다. 이에 올해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온라인 투표로 ‘인천시민애집’으로 새롭게 이름을 선정했다. 거의 3년 동안 정밀 진단과 리모델링을 거쳐 복합역사문화시설로 재단장해 시민 누구나 오갈 수 있게 개방했다.

이곳은 인천시민들에게 ‘송학동 시장관사’로 알려져 있었다. 정문은 중구청 직장어린이집과 마주하고 있는데 제물포구락부 맞은편으로도 문이 나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주로 출입한다.

이 건물은 용도가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코노 다케노스케(河野竹之助)의 개인 별장으로 지어졌다. 별장이 세워진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개항장 사진들로 추정할 때 대략 1901년에서 1916년 사이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인 코노 다케노스케는 1895년 평양에서 무역과 잡화상 운영을 하다가 동학농민혁명을 피해 1896년 인천에 와서 포목·석유·밀가루 등을 취급하는 잡화상을 열어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전형적인 일본 귀족의 대규모 저택을 지어 정원을 꾸몄다. 이에 사람들은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이라 불렀다.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 엽서(1930년대).
코노 다케노스케 별장 엽서(1930년대).

그 당시 엽서사진을 보면 2층 대저택으로 2층 지붕은 우리의 팔작지붕처럼 삼각형의 벽인 합각이 있다. 이런 형태를 이리모야 양식이라 한다. 건물 1층을 보면 주춧돌 위에 기둥이 올려져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마루를 받치기 위해 주춧돌 위에 짧은 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마루는 회랑처럼 방을 두르고 외부는 유리문을 달았다. 규모가 큰 일본 귀족의 집에서 많이 보이는 양식이다.

마당에는 일본 귀족들의 상징적인 나무 일본 남부에서만 자라는 희귀 수종인 금송(金松)을 풍치목으로 바깥에 돌려 심었으며, 마당에 넓적돌을 징검다리처럼 깔아 밟고 가게 만들었다. 비 오는 날 질척거리는 흙이 신발에 묻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각종 모양의 석물들도 마당에 배치했을 뿐 아니라 석등과 망주석, 멀리 석탑도 보인다. 이 석탑은 나중에 흩어진 것들을 모았는데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인천시립박물관 앞마당에 전시하고 있다.

광복 후에는 적산가옥으로 분류돼 서구식 레스토랑인 '동양장'으로 영업하다가 '송학장'이라는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출입하던 고급사교장으로 바뀌었다. 외부는 전형적인 일본 정원의 느낌을 살린 저택이었으나 내부는 일본식과 서양식이 공존했다고 한다. 당시 유명 국악인들이 인천에 공연을 오면 ‘송학장’에 들러 며칠씩 묶으면서 소리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실재 국악인 악사들이 상주했으며 남자방과 여자방이 따로 있었단다. 아쉽게도 정식공연이 아니기에 당시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떤 형태로 운영되었는지 추측만 할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송학동 시장관사’에서 ‘인천역사자료관’으로

팔작지붕을 얹어 앞으로 내부공간을 넓혔다.
팔작지붕을 얹어 앞으로 내부공간을 넓혔다.

1966년 인천시는 송학장을 매입해 새롭게 112평(약 370.24㎡) 규모의 한옥 건물을 짓고 ‘인천시장 관사’로 이용했다. 인천시장들은 그동안 신흥동에 있는 ‘인천 부윤 관사’를 사용했는데 1960년대부터 반일감정이 치솟아 관사를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당시 인천시청(현 중구청)의 뒤에 있던 ‘송학장’ 자리는 시장관사로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을 것이다.

1967년부터 2001년까지 시장 17명이 이곳을 관사로 사용했다. 관사로 사용하려 건물을 짓다보니 공간의 활용을 위해 왼쪽 측면을 팔작지붕으로 하고 정면의 중앙부와 오른쪽 끝 부분도 건물을 앞뒤로 돌출시켜 팔작지붕을 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내부공간을 넓혀 집무실과 접객공간을 마련했다. 마치 집 두 채 반을 연결한 구조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985년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자 1998년 지방선거에서 '시장관사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최기선 시장이 당선된다. 공약대로 인천시는 2001년 10월 15일 인천시민의 날을 맞아 이곳을 ‘인천역사자료관’으로 새롭게 단장을 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때 몇 차례 자료를 찾으러 역사자료관에 갔다. 한옥 속의 서고와 조용한 분위기가 어울려 조심조심 소리를 삼키며 자료들을 열람했다.

‘인천역사자료관’은 2020년 9월까지 운영됐는데 인천시의 시사편찬업무를 중심으로 인천의 역사 자료를 발굴, 수집하고 연구를 통해 기록을 축적하는 일을 했다. 주요시설로는 시사편찬위원회 사무실과 자료실, 열람실, 역사사랑방(세미나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인천지역의 자료만이 아니라 타 지역의 자료와 서적, 고문서 등을 수집했으며 특히 향토자료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복도 공간을 활용해 사진전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특히 인천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내는 인천역사문화총서 발간과 인천의 주요한 역사적 이슈들을 중심으로 한 학술대회, 인천 시민들에게 인천의 역사를 알리려고 90여 차례가 넘는 향토사 강좌 등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인천역사자료관 복도 사진 전시.(인천역사자료관 홈페이지)
인천역사자료관 복도 사진 전시.(인천역사자료관 홈페이지)

인천과 관련된 사료와 논문, 단행본 등 약 1만5000종을 모아 소장하고 있으며, 사진자료들도 매우 많이 소장하고 있어 아카이빙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하면 좋을 것 같다.

이곳 ‘인천역사자료관’이 문을 닫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천시는 자료관을 폐쇄하고 이곳을 외국 관광객의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지역 역사를 천대하는 몰역사적 밀실행정이라고 지탄받기도 했다.

시사편찬팀을 시청으로 옮긴다거나, 자료들 중 인천 역사에 관련한 책은 미추홀도서관으로 옮겨 시민들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가 시민사회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인천시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신흥동에 있는 ‘인천 부윤 관사’를 리모델링해 시민개방형 역사자료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정밀안전진단 결과와 구조적 특성상 역사자료를 비치하거나 연구공간을 조성하기가 불가능하기에 이 계획도 역시 무산됐다.

결국 ‘인천역사자료관’은 아직도 대책이 없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천 역사의 산실 역할을 수행해온 역사자료관의 향방에 인천시민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인천시민愛(애)집’ 둘러보기

주춧돌 없이 장대석 위에 올린 기둥과 빗물받이.
주춧돌 없이 장대석 위에 올린 기둥과 빗물받이.

‘인천시민애집’ 공간은 '제물포 한옥 갤러리'로 명명된 본관동과 '역사전망대'가 위치한 관리동, '제물포 정원'과 ‘제물포 잔디 광장’이라 이름이 붙은 야외공간으로 구분된다. 이 공간들이 가진 특징을 적극 활용한 전시와 콘텐츠 개발을 통해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항장의 상징적 복합역사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본관동은 ‘인천역사자료관’에서 ‘인천시민애집’으로 바뀌면서 건물에 현판을 달은 것 외에는 외관상 별로 바뀐 것이 없다. 다만 본관동은 2벌대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는데 주춧돌을 사용하지 않고 건물 외형에 맞춰 전체에 넓은 장대석을 깔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렸다. 그래서인지 지붕 처마에 빗물받이를 달고 배수관을 길게 뽑아 장대석 바깥으로 빗물이 떨어지게 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역사북쉼터’가 나온다. 이곳은 천장을 들어내 서까래와 대들보 등 한옥 목구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 예술 관련 도서를 편히 앉아서 볼 수 있게 창문 쪽으로 긴 의자를 설치했다. 이곳을 나오면 좁은 복도가 연결되는데 '역사회랑'으로 좌우에 개항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천역사 타임라인을 전시하고 있었다.

역사회랑.
역사회랑.

회랑 오른쪽으로도 ‘역사북쉼터’가 있다. 이곳도 팔작지붕을 만들어 공간을 밖으로 뽑았는데 삼면을 창으로 둘러 마당의 수목들이 한눈에 들어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옆으로 공(公)과 사(私) 그 경계의 공간에 가기 전에 창문 쪽으로 ‘제물포 한옥 갤러리’를 색칠해보는 체험학습 공간이 있다. 자녀와 함께 오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그 뒤쪽으로 다이닝 룸으로 사용되던 공간은 '디지털 갤러리'로 꾸몄다. 컴컴한 공간에 사방의 벽면에서 별이 쏟아지는 인천 섬의 아름다운 장면들이 천천히 바뀌면서 전시되고 있다. 거기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나니 장면을 따라 밤바다로, 고인돌로, 강화 돈대 등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사진 정말 잘 찍었다. 양쪽 끝에 의자들이 있으니 잠시 쉬면서 감상하기를 권한다.

안채로 사용하던 방들은 ‘기획 전시실’로 조성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천직할시 승격 40주년 기념 전시 '어서오십시오. 인천직할시입니다.'라는 주제로 인천직할시 승격 과정과 인천의 변화상과 관련된 것들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주제별로 내용을 바꾸며 전시할 계획으로 어제 방문했을 때는 인천의 바다, 하늘, 도시 등의 특징을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안쪽 방에는 세면대와 욕조가 있는데 목조구조의 특성상 벽면은 큰 타일을 붙였으며 환기를 위해 쪽창을 냈다.

역사전망대로 이름이 붙은 관리동.
역사전망대로 이름이 붙은 관리동.

'역사전망대'로 이름이 붙은 관리동에는 바다와 개항장 일원을 조망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장점을 살려 조망 데크를 설치했으며, 건물 안에는 인천 개항장의 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것과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에 실린 그림의 인쇄본 등 서적, 컵과 캐릭터들을 판매하고 있다. 건물 바깥으로는 나무데크를 둘러 이곳에서 인천 앞바다를 조망하게 했다.

아쉬운 것은 인천항 앞의 ‘하버파크호텔’과 러시아영사관터 옆에 지어진 고층의 오피스텔로 인해 바다 조망권이 가려진 것이다. 누가 이런 고층 건물들을 짓도록 승인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본관동에서 야외정원인 '제물포 정원'과 정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른쪽과 가운데에 설치된 작은 돌계단과 왼쪽에 설치된 큰 돌계단, 모두 3군데가 있다.

정원에는 금송 외에도 다양한 나무들을 심었을 뿐만 아니라 돌계단 곳곳에는 일본이 원산지로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 일부 지역에서 서식한다고 알려진 방울 철쭉(낙엽 철쭉)을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정원을 꾸몄다. 이 때문에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수림이 우거져 마치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현관 정문을 달은 석주는 코노 다케노스케가 별장을 지을 때 만들었던 석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각기둥이어서 투박해 보이지만 견고하기에 긴 세월을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제물포 잔디 광장.
제물포 잔디 광장.

 

정문에서 왼쪽 계단으로 오르면 관리동 건물보다 층이 낮은 곳에 ‘제물포 잔디 광장’이 있다. 한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이다. 그리고 관리동 축대 위 하얀 담장에는 인천의 대표적인 나무와 근현대사를 증언해 주는 건축물들을 새긴 ‘역사담벼락’을 설치했다.

비록 처음 별장을 지었을 때와 똑같지는 않지만 본관동과 관리동만 관람하지 말고 야외공간도 반드시 들러 여유를 가지고 앉아서 쉬어가기를 권한다. 나무들이 우거져 밖이 거의 보이지 않아 설치한 의자에 앉아 한적하게 쉬기에 좋은 공간이다. 이곳을 관람하는 인천시민 모두가 ‘내가 시장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잠깐의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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