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 선생의 인천 개항장 기행] 청국조계지 차이나타운③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ㅣ의선당에서 나와 다시 공화춘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연경(燕京, 북경의 옛 지명) 건물 바로 옆에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넓은 계단이 나온다.

예전에 인천역에서 내려 자유공원에 올라갈 때 주로 많이 다녔던 계단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변해 올 때마다 놀란다. 계단에 각종 중국식 석물들이 자리 잡아 중국 풍경을 연출한다.

석물들이 계단 곳곳에 배치돼 번잡하게 보이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석물들이다. 이곳 차이나타운은 우리나라 관광객뿐만 아니라 중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니 깔끔하게 보존하는 것도 그들을 맞이하는 예의일 것 같다.

‘돌사자’ 암수 한 쌍

계단 왼쪽 암사자, 오른쪽 수사자.
계단 왼쪽 암사자, 오른쪽 수사자.

계단 아래 좌우로 중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돌사자’ 암수 한 쌍이 놓여있다. 중국인은 돌사자를 신령스러운 동물로 간주하지만, 사자는 원래 중국 본토에는 없는 동물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자가 최초로 중국에 전해진 것은 서한 때로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처음으로 사자(獅子)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사자는 서방과 교역을 할 때 조정에 선물로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 중에는 불교 유입시기에 사자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사자가 고대 신화 속의 신수(神獸)인 산예(狻猊)와 비교적 흡사하다고 여겼고, 문수보살이 깨달음을 얻고 설법하러 다닐 때에 지혜의 용맹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자를 탔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사자를 좋아하게 되었으며 길상(吉祥,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의 상징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사자상은 최초에는 무덤 앞에 놓여 그 무덤 주인에게 사악한 기운과 화를 피하게 하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후에 사자상 크기가 점점 커져 그 주인의 권세와 부귀를 표현했는데, 통치자는 궁궐 문 앞에 사자상을 놓아 그 위엄을 과시했다.

이에 민간에서 사람들이 점차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돌사자는 사원이나 마을 입구, 다리 난간 심지어는 자기 집 문 앞 등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하면서 대중적인 건축 장식물이 되었다.

돌사자를 놓는 데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바라볼 때 왼쪽에는 암사자를 두는데 왼발로 새끼 사자를 쓰다듬는 것 같기도 하고 발톱으로 젖을 먹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암사자는 자손이 번성하는 걸 상징한다고 한다. 오른쪽에 있는 수사자는 오른발로 수구(繡球)를 밟고 있는데, 위엄과 권세를 상징한다고 한다.

세속에 전하는 말로 수구는 암수 두 사자가 서로 희롱하며 놀 때 털이 서로 얽히고 합쳐져 공이 된 것으로, 그 속에서 새끼가 튀어났다고 한다. 한편 어미 사자와 새끼사자를 나타내는 말인 태사(太獅)와 소사(少獅)가 주나라 때 3공(公) 중 으뜸 벼슬인 태사(太師), 그를 보좌하는 소사(少師)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관운 형통의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이런 까닭에 돌사자는 지금도 번화한 거리나 은행, 빌딩, 공원 대문 앞 등에 계속 설치되고 있다. 현재 중국인들은 사자상을 중국 고대 민족문화의 일부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중화민족의 공예와 예술의 정수로 인식하고 중요시하고 있다.

다양한 벽화와 드라마 촬영지

중국을 상징하는 각종 벽화와 석물들이 있는 계단.
중국을 상징하는 각종 벽화와 석물들이 있는 계단.

넓은 계단을 한 층 올라가면 옆의 건물 층수에 맞춰 수직으로 축대를 쌓고 가운데 계단을 만들어 돌난간을 세웠다. 왼쪽에도 좁은 계단이 위로 쭉 이어져있는데 수직 축대를 만들기 전 원래 있던 계단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각 층의 양쪽 수직 축대에는 자금성, 갑골문자, 경극가면 등을 그린 벽화타일이 붙어있다.

하나하나 보고 가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첫 번째 가운데 계단에는 자금성 중화전에 있는 황제가 앉는 옥좌(玉座)가 그려져 있어 옥좌의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황제의 기분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층 더 올라가면 왼쪽에 ‘KBS 다큐3일’에 옛날 짜장으로 촬영을 했던 ‘만사성’이라는 가게가 있다. 이 계단은 M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가화만사성’의 배경 촬영지로도 나온다. 풍경이 이국적이어서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것 같다.

한 층 더 위에는 오른쪽으로 ‘인천중화교회’ 건물이 계단의 층에 맞춰 길게 지어졌다. 이곳 축대에도 작년 3월까지만 해도 벽화타일만 있었는데 올해 와서 보니 말을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 청동상이 새로 놓였다.

관우 청동상.
관우 청동상.

백성들이 군주에게 간언했던 ‘화표’

한 층 더 위에는 천안문에서 보았던 ‘화표(華表)’가 세워져있다. 화표는 중국 고대 궁전과 능, 묘 등의 대형 건축물 앞 도로 양쪽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돌기둥으로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형식 중 하나이다.

화표는 일반적으로 기둥의 받침대인 대좌(臺座), 기둥의 몸체인 반룡주(蟠龍柱, 빙빙 둘러 감고 있는 용이 새겨진 기둥), 기둥의 윗부분에 있는 원형 석판인 승로반(承露盤, 이슬을 받는 쟁반)과 그 위의 준수(蹲獸, 웅크리고 앉아있는 짐승), 이렇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대좌에 쓰인 돌은 모두 팔각형으로 6개의 돌을 맞춰 쌓았다. 위아래에는 판석을 놓았는데 아래는 두 단이 놓여있다. 위 판석 밑에는 앙련(仰蓮, 연꽃이 위로 향한 모양), 아래 판석 위에는 복련(覆蓮·연꽃을 엎어놓은 모양) 문양을 새겼다. 대좌의 몸통에는 구름 사이를 날아가는 용이 새겨져 있어 화려하게 보인다.

기둥의 몸체인 반룡주는 원통이 아니라 육각기둥으로 머리를 하늘로 향한 용이 기둥을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다. 용의 몸통 사이에는 구름들이 조각돼있어 마치 용이 구름 사이를 뚫고 하늘로 승천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형식 중 하나인 화표.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형식 중 하나인 화표.

기둥의 몸체 윗부분에는 양쪽에 가로로 구름이 새겨진 운판(雲版)이 걸려있다. 이 운판은 요나라 때 나무기둥에 나무를 가로로 묶어 백성들로 하여금 관리를 평가하거나 견해를 제시해 군주에게 간언했던 것으로 ‘표목(表木)’이라 불렀다. 그런데 실제는 주로 남을 헐뜯는데 사용돼 ‘비방목(誹謗木)’이라고도 부른다.

반룡주 위에는 두 겹의 복련과 앙련 문양이 새겨진 승로반이 놓여있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한무제(漢武帝)가 신선술에 유혹돼 하늘에서 내린 감로수를 선인(仙人)이 받아서 건네면 불로장생한다고 해, 동으로 만든 쟁반에 이슬을 받아 마시며 선술(仙術)을 익혔다고 한다.

중국 역대 황제의 평균 수명이 41세인데 한무제가 70세까지 살았으니 비록 불로장생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장수를 한 것은 맞다.

승로반 위의 준수는 명나라와 청나라 때 작은 짐승을 조각해서 올린 것이라 한다. 승로반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짐승을 ‘조천후(朝天吼)’라 부르는데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신수(神獸)인 용의 아홉 아들 중 한 마리란다.

망을 보는 습성을 갖고 있으며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어 ‘망천후(望天吼)’라고 부르기도 하고 간단히 줄여서 후(犼)라 부른다. 하늘의 뜻과 지상의 민심을 전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십이지신상’과 ‘초한지 벽화거리’

십이지신상과 제3패루 선린문.
십이지신상과 제3패루 선린문.

십이지(十二支)는 자(子, 쥐) 축(丑, 소) 인(寅, 호랑이) 묘(卯, 토끼) 진(辰, 용)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 신(申, 원숭이) 유(酉, 닭) 술(戌, 개) 해(亥, 돼지) 12개를 말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시켜 놓은 열두 동물의 상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라 하는데, 중국에서는 '십이지생초(十二支生肖)'라 한다.

이 신상들은 얼굴은 동물상이고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민속에서는 십이지신상이 각각 시간과 방위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물리친다고 믿어 최근까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좌우 건물이 끝나고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한국과 중국 사람은 가까운 이웃이라는 의미를 지닌 제3패루 ‘선린문(善隣門)’이 화려한 단청을 하고 서있다. 선린문 뒤 좌우로 담장을 세우고 <초한지(楚漢志)>의 내용을 벽화로 그려 넣어 ‘초한지 벽화거리’를 조성했다. 비록 <초한지>를 읽지 않았어도 하나하나 살피다보면 의외로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나와 깜짝 놀랄 것이다.

초한지에 나오는 사면초가와 패왕별희 벽화.
초한지에 나오는 사면초가와 패왕별희 벽화.

<초한지>는 중국 진나라 말부터 한나라 건국까지의 역사를 소재로 삼은 대하소설이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분열된 제후국들 중 가장 강성했던 초나라 왕 항우와 이에 대립한 한나라 왕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다다익선(多多益善), 배수진(背水陣), 사면초가(四面楚歌), 토사구팽(兎死狗烹), 금의환향(錦衣還鄕)’ 등 한자성어들이 이 소설에서 나왔다.

그리고 패왕(覇王) 항우와 연인 우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패왕별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극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은 첸카이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장국영·장풍의·궁리 주연의 ‘패왕별희’를 다시 봐야할 것 같다.

※ 천영기 시민기자는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월 1회 ‘인천 달빛기행’과 때때로 ‘인천 섬 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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