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기 선생의 인천 개항장 기행] 청국조계지 차이나타운(6)

인천투데이=천영기 시민기자│청국조계지 당시 가장 번화했던 거리인 가장 아랫길인 췌화가(萃華街)는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으며, ‘해안성당’과 ‘한중원(韓中園)’ 등이 들어섰다.

그리고 현재 인천화교협회 회장이며 3대째 중국요리를 이어오는 손덕준 씨가 운영하는 ‘태화원’과 2002년에 개업해 운영하고 있는 ‘태림봉’이 있다. 인천사람들이 자주 찾는 집이다.

‘해안성당’과 ‘제물진두 순교성지’

해안성당 전경.
해안성당 전경.

1950년대 선린동에 거주하는 화교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한 결과 소수의 천주교 화교신자들이 생겨, 이들은 답동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언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문화적 이질감으로 화교들만의 성당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에 미국 메리놀선교회에서 1960년 7월 17일 북성동에 방을 얻어 ‘북성성당’을 설립했으나 선린동에 사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선린성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초창기 성당 공문서 직인에는 ‘인천화교천주교’로 기록돼 있다. 아마도 방을 얻어 사용한 관계로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과 문서상의 이름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화교들을 위한 성당이기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신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 만주에서 사목 경험이 있고 중국어에 능통한 고요셉(맥코막) 신부를 초대 신부로 임명했다. 고요셉 신부의 부단한 노력과 메리놀선교회 본부의 원조, 중국인 신자들의 정성이 보태져 1966년 6월 9일 현재의 성당 건물이 완공됐다.

1969년 4월 3일 초대 고요셉 신부가 노환으로 귀국하고 1972년 10월 1일 5대 박요셉(파퀘트) 신부가 부임했으나, 1970년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화교들은 재산상 불이익이 심해져 1972년 화교인구는 정점을 찍고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 입구와 내부.
제물진두 순교성지 입구와 내부.

이런 까닭에 화교 신자들도 자연 감소하고, 구역 내 한국인 신자 수가 증가해 ‘해안성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한·중 합동본당으로 운영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인 성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해안성당은 제물진두(濟物津頭)에서 처형된 천주교인 10명을 기리는 ‘제물진두 순교성지’를 관할하고 있다. 해안 성당 뒤로는 5층 건물인 ‘제물진두 성지 순교자 영성관’이 있고,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한중문화관과 진원로푸상사 건물 사이에 끼인 듯이 들어가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곳은 인천지역 최대 순교지로, 인천교구는 제물진두 위치 규명에 이어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역화를 추진해 2011년 대지를 매입하고, 2014년 5월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에 건립된 15m 높이의 경당은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들을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이곳에서 1868년 4월,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과 유해 발굴에 큰 공을 세운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의 이모인 김씨와 남편 손 넙적이, 사위 백치문,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또 1871년 5월에는 이승훈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그의 손자 이명현, 신자로 추정되는 백용석과 김아지 등 6명도 체포되어 효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또한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곳이며, 1888년 7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명(프랑스 국적 2명, 중국 국적 2명)이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 천주교회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이다.

차이나타운의 쉼터 ‘한중원’

중국식 정원 한중원 입구의 조벽.
중국식 정원 한중원 입구의 조벽.

해안성당에서 태화원을 지나면 개항장 문화마당 중구 생활문화센터를 마주보고 관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인 ‘한중원(韓中園)’이 있다. 중국의 4대 정원 중 쑤저우(蘇州, 소주)에 있는 졸정원(拙庭園)과 유원(留園)을 모티브로 해, 청나라시대 중·후반기 쑤저우지역 문인들의 정원양식을 활용해 조성한 것이라 한다.

중국의 거대한 정원과 비교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중국식 정원을 약식으로 꾸며 실감나지 않지만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는 관광객에게 중국풍의 쉼터 역할은 할 것 같다. 입구에는 대문 밖에서 집안이 보이지 않도록 대문의 안쪽에 다양한 무늬를 새겨서 꾸민 벽인 조벽(照壁, 影壁 영벽이라고도 함)을 설치했다.

그 옆으로 들어가면 아치형의 중국식 돌다리가 있고 밑으로 인공으로 만든 개울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면 장기판이 그려진 돌탁자와 돌의자가 나오고, 안쪽으로 회랑과 육모지붕의 정자가 있어 쉴 자리를 제공한다. 사면으로 담장을 둘렀는데, 정면 담장 기와 위에 용머리를 올리고 기와는 담장에 굴곡을 주어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중국식 정원 한중원 내부 시설들.
중국식 정원 한중원 내부 시설들.

담장의 중간에는 중국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 사각형, 부채꼴 등의 창문을 냈다. 창문을 통해 풍경을 조망하라는 의미로 만든 것인데, 아쉽게도 이곳에선 상상만으로 즐겨야 한다. 이외에도 중국의 전통수목인 대나무, 장미, 모란 등을 식재하여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조성했다.

왼쪽 담장에는 두보가 안록산의 난으로 유랑생활을 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귀안(歸雁)’이라는 시가 적혀있다. ‘春來萬里客(춘래만리객) 亂定幾年歸(난정기년귀) 腸斷江城雁(장단강성안) 高高正北飛(고고정북비)’ ‘봄에 와 있는 만 리 밖의 나그네는 난이 그치거든 어느 해에 돌아갈까? 강성(강가에 있는 성도성)의 기러기 똑바로 높이 북쪽으로 날아가니 애를 끊는구나.’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심정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한중문화관’과 ‘인천화교역사관’

한중문화관 전경.
한중문화관 전경.

중문화관과 인천화교역사관 앞에는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 온통 황금색으로 기둥을 치장한 제2패루인 인화문(仁華門, 어질고 밝은 빛이 퍼진다는 뜻으로 차이나타운의 번성을 기원하는 소망을 담고 있음)과 서성(書聖)으로 존경받는 동진(東晋)의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 석상(중국 산동성 임기시(臨沂市) 난산구(蘭山區)에서 2005년 봄에 기증)이 꼿꼿한 자세로 서있다. 그리고 석상 오른쪽에는 1883년 6월 16일 우리나라 관세업무가 처음 시작됐다는 ‘인천 해관터’ 표지석이 있다.

인천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도시이기에 대(對)중국 최대의 수출 도시이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의 친인척이나 친구들을 뒤져보면 누군가 한 명 쯤은 중국과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한중 교류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뱃길이 있었고, 개항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천항은 중국 교류의 첨단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한중문화관 바로 앞이 인천항 내항이다. 이곳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중국의 텐진, 웨이하이, 칭다오, 롄윈강으로 가는 화물여객선이 뜬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가 이뤄지고 한중 교류는 여러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교역규모는 1992년 63억8000만 달러에서 2019년 2434억 달러로 38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며, 사회적·문화적 교류도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발맞춰 2005년 4월 16일 차이나타운 활성화와 한중 문화·예술 교류 및 지역 예술 활동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중문화관(韓中文化館)’을 개관했다. 그리고 한중문화관 옆에 별관을 지어 2015년 6월 11일 ‘인천화교역사관(仁川華僑歷史館)’을 열었다.

한중문화관 3층 ‘우호도시 홍보관’에 전시된 원보.(중국 난산시 인민정부가 기증한 개관 축하 기념물)
한중문화관 3층 ‘우호도시 홍보관’에 전시된 원보.(중국 난산시 인민정부가 기증한 개관 축하 기념물)

‘한중문화관’에는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하고 있는데, 1층은 ‘갤러리’로 한국과 중국의 저명한 예술가를 비롯해 지역예술가들의 회화, 조각, 서예, 사진 등 다양한 작품들을 초청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 전시회를 보러 여러 번 갔는데, 이번에 갔을 때도 ‘중국원생태국제촬영대전’의 사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2층에는 ‘한중문화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중국의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생활상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해 중국을 특징짓는 다양한 용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중 문화교류와 관련된 한국의 유물들도 전시하고 있다.

3층은 ‘우호도시 홍보관’으로 인천과 우호교류를 하는 도시를 소개하고, 그 도시의 특색에 맞는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 치파오체험관이 있어 중국 전통의상을 실제 입어볼 수 있으며, 중국 전통놀이인 칠교놀이를 체험할 수도 있다.

2층은 ‘인천화교역사관’과 연결돼 있는데 연결부위 야외에는 진시황릉1호 청동마차가 전시되고 있다. 화교역사관 2층에는 인천 화교들의 정착 역사를 소개하고, 그들이 실제 사용했던 유물들을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갤러리로 주로 화교와 관련된 주제이거나 지역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중문화관’과 ‘인천화교역사관’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한나절 이상의 품을 들여야 한다. 인구 14억 명의 나라이며, 우리나라 제1위 교역국인 중국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알고 싶다면 주말 나들이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천화교역사관 전경.
인천화교역사관 전경.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