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15)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편집자주>

언론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철학을 반영한다. 이것은 곧 문화와 직결된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 차이는 따라서 언론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미쳐서 서로 다른 언론관을 형성했다.

이러한 차이는 사용하는 언어에도 반영돼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의 언어는 저맥락(low context)언어이고, 동양권의 언어는 고맥락(high context) 언어이다.

고맥락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언어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반면, 저맥락 언어에서는 단어는 그 자체로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의미가 전달된다.

따라서 고맥락 언어에서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암시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저맥락 언어는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맥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사랑해”라고 말하지 굳이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전적으로 그 말이 나온 맥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반면 영어에서는 “I love you”라고 정확하게 대상을 지칭해서 표현한다.

대상을 생략하고 단순하게 “love”라고 하면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듯 고맥락 언어에서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기 때문에 문화적 배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정확한 의미전달이 가능하다.

고맥락 언어는 간결한 표현으로 의사를 전달하기에 효율적인 언어이다. 장황한 설명이 없어도 의미가 전달된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상대방이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고 맥락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제대로 소통이 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만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가 없다”는 변론으로 유명했던 나경원 의원의 발언이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굳이 “내가 BBK를 설립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맥락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 고맥락 언어의 특징이지만 그런 특징이 정확한 이해를 방해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나경원 의원의 변론처럼 악용되기도 하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저맥락 언어는 그런 모호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훨씬 줄어든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포함해야 하므로 고맥락 언어에 비해 효율성은 떨어진다. 이런 언어적 차이는 각각의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에 기인한다.

한국어는 영어 등 서양 언어와 비교하면 전형적인 고맥락 언어이고, 고맥락 언어의 특징 상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언어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커뮤니케이션과 언론은 이러한 사회 문화적 바탕위에서 발생하고 작동했다. 특히 조선은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설정했기에 인간과 인간 관계성을 중시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교는 인간과 사회 또는 집단 관계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관을 형성했고, 따라서 언론의 역할도 그 바탕 위에서 작동했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주지하다시피 고맥락 문화의 특징은 맥락이 중요하고, 그런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관계, 그리고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의 언론관은 이러한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유교에서의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지배계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관계가 중요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수반한다. 그런데 이렇게 경직된 커뮤니케이션 구조는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할 문제였다.

정도전이 태조에게 바친 문덕곡에서는 “군주가 언로를 크게 열어 사총을 통달해야 민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군주의 첫째 덕목은 언로의 개방에 있다”고 지적했다. 조광조도 열린 언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언로의 닫힘과 열림이 나라의 흥망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군주의 주요 덕목으로 언로를 열어 놓는 것을 꼽았고, 이는 곧 언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언관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설치해 제도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보장하는 기반이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교적 위계질서에 입각해 제도적으로 통제됐던 언로는 종종 그 기능을 상실하고 당파 정쟁에 이용되기도 했고, 지배계급 내부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작동했기에 일반 서민들의 언로와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부정적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일반 서민을 위한 신문고가 있었지만, 효과적인 언로로 기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반적으로 조선에서는 고맥락 문화 사회의 전통에 입각하여 인간관계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요인이었고, 이에 기반한 언론관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념적으로 강조했던 중요성에 비해 그 실질적 효용성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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