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①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지직거리는 음질의 오래된 구시대 미디어인 엘피(LP) 레코드가 다시 각광받고 있다. 제품의 불량이나 불법으로 복제된 LP의 특징이었던 잡음은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 최근 유행인 레트로 트렌드가 가져온 변화이다.

오래된 미디어뿐 아니라 좁고 오래된 골목길, 수십 년 자리를 지켜온 허름한 노포 등이 핫 플레이스로 각광을 받고 있고 과거의 향수를 담은 모든 것들이 재해석되고 있다.

디지털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문화가 오히려 생소하고 그래서 새로운 것이 된 현상이 이런 트렌드 저변에 깔려있다고 보인다. 낡고 오래돼 버려야 할 유물로 치부되던 것들이 어느 순간 정겹고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미디어는 기술의 진보와 발맞춰 변화하기에 항상 최신 기술의 집약체로 구현된다. 지금도 숨 가쁘게 발전하는 미디어 기술은 일 년이 멀다하고 새롭고 업그레이드된 통신기기를 내놓고 있다.

얼마나 더 빨라져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휴대전화 통신 속도는 이미 사람들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도 계속 더 빨라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최신 기술로 빠르게 진보를 거듭하는 한편으로 레트로 미디어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너무 빠른 변화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겠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Rudy and Peter Skitterians님의 이미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Rudy and Peter Skitterians님의 이미지.

비닐 혹은 바이닐(vinyl)로 불리는 LP 레코드는,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음성과 음악을 재생하는 미디어 중에서 비교적 오랜 기간 생명력을 유지했던 미디어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얇은 원판이 돌아가며 원판에 새겨진 홈의 떨림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LP는 수십 년간 음악애호가들이 음악을 재생하는데 사용한 대표적인 미디어였다.

더 높은 품질의 음원을 편리하게 재생하는 CD와 MP3,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의 발달로 거의 사라졌던 미디어인데, 최근 다시 LP 레코드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고 이런 추세를 반영해 새 음반을 LP로 발매하는 뮤지션도 늘고 있다.

LP는 사용하기 번거로운 매체이다. 관리가 까다롭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에 보관하기도 어렵고 음악 재생도 번거롭다. LP 표면에 지문이나 이물질이 묻지 않게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려놔야 하고, 톤암의 바늘을 정확한 위치에 맞춰 내려놔야 한다.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해야 소리가 재생되기에 매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비닐 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닳고 변형돼 지직대는 잡소리가 나고, 행여 긁히기라도 하면 바늘이 튀어 음악이 재생 도중 뛰어넘어가거나 아예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같은 구절만 반복하기도 한다. 음원의 품질 측면에서 최신 미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미디어이다.

그런데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LP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은 오래된 미디어가 가진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편리하고 뛰어난 품질의 최신 매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불완전성의 감성은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게 오히려 새롭게 다가가기 때문일 것이다.

LP를 뒤를 이어 한동안 음악 재생 매체로 인기를 얻었던 미디어로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LP 보다 다루기가 편했고 부피도 작아 휴대성도 뛰어났다. 소니에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을 발매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카세트테이프와 LP는 서로 다른 장단점으로 인해 공존했는데,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며 두 매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LP와 마찬가지로 카세트테이프도 복고 바람이 불며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소품으로 등장했고, 다시 부활하는 중이다.

이런 트렌드 배경에는 재해석된 아날로그 감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한 감성을 뛰어넘는 특정 미디어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개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LP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행위를 떠나서 음악 감상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경험으로 승화시킨다.

재킷에서 LP를 꺼내고, 조심스레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톤암의 바늘을 올려놓는 일련의 행위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음악 자체에 그런 경험이 덧씌워져 있기에 간단하게 버튼 하나를 눌러 재생하는 디지털 음악과는 차별화되는 경험을 주는 것이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Jenny Friedrichs님의 이미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Jenny Friedrichs님의 이미지.

가수 최백호는 LP음악의 매력으로 가수가 녹음할 때 마이크까지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누구나 그런 차이까지 느끼는 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에 관한 문외한이라도 LP로 재생된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감성과 경험은, LP가 가진 음질의 결함을 뛰어넘는 장점으로 기능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미디어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항상 진보하는 것만은 아니고, 사라졌다 싶은 미디어가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전자책이 나온 지 한참 됐고, 종이 책과 비교해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종이 책이 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종이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LP가 가진 고유의 매력과 마찬가지로 종이 책이 갖는 고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디지털 미디어가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유감스럽게도 종이 신문의 운명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같은 인쇄매체이지만, 신문의 특성은 책이 갖고 있는 특성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종이 신문은 사라지는 추세이고, 완전히 자취를 감출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인다. 더구나 유력 신문들이 그동안 관행처럼 발행부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할 것이다.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는 미디어가 있는 한편, 존재 이유가 사라진 미디어도 있고, 사라졌다가 다시 부활하는 미디어도 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가 미래에 등장할 것이고, 현재 대세인 SNS는 앞으로 또 어떤 미디어로 대체될지 모른다.

그러나 미디어가 전달하는 근본적인 감성은 인간 본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LP같은 매체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를 담은 매체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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