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④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가 서비스 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하고 있고, 현대 대중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각종 매체에 오징어게임 관련 보도와 글이 쏟아지고 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현상이다.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세계를 석권했으니 뿌듯한 일이다. 방탄소년단으로 대표하는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미국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에 이어 이제 한국 드라마까지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으니 대단한 일이다.

오징어게임의 국제적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곧 전문적 분석이 뒤따를 것이라 생각한다. 깊이 있는 분석에 앞서 얼핏 보이는 여러 이유 중 눈에 두드러지는 요인으로 넷플릭스라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매체 발달사의 측면에서 보면 의미 있는 현상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기록하는 기록 매체는 지속적으로 진화하며 발달했다. 동굴 벽에 그린 단순한 벽화에서, 석판, 파피루스, 종이로 진화했고, 최근에는 전자 매체가 다른 모든 매체를 대체하고 있다.

전자 매체도 여러 형태로 진화했는데, 자기 테이프와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해 기록하던 것이, 시디(CD)와 디브이디(DVD) 등의 매체를 거쳐 이제는 클라우드에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의 미디어 콘텐츠 기록과 유통 방식은 넷플릭스로 대표하는 스트리밍 기반의 서비스로 진화했다.

넷플릭스가 선점한 미디어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는 확산일로이고, 아마도 곧 지금 우리가 사용하던 기록 매체들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 같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CD와 DVD를 집에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자리만 차지하는 이런 미디어는 이미 장식장의 장식품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세계 어디서건 시간과 장소에 구애없이 별다른 도구 없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미디어 콘텐츠는 지구촌 어디서건 아무런 제약 없이 (물론 구독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면 국경을 넘어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구현되었다.

넷플릭스가 선보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선보인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출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으로 폭발했지만, 이미 꽤 많은 한국 미디어 콘텐츠가 넷플릭스 혹은 유사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다. 흔히 케이팝(K-Pop)으로 일컫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유튜브로 인터내셔널 스타가 됐다.

이제 미디어 콘텐츠는 더 이상 거실의 장식 선반에 있지도,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에 파일로 저장하지도 않는다. 미디어 콘텐츠는 거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의 클라우드에 존재한다.

이것은 일견 획기적인 변화이다. 거추장스런 장비나 재생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손가락 클릭 한번으로 무궁무진한 미디어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니, 혁신이라 하겠다.

이런 특징은 또한 미국과 극소수의 미디어 강국이 독식하던 미디어 콘텐츠 제작 시장이 다양화하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는 다양한 국가의 제작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국가의 뮤지션이 독점하던 대중음악 시장을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평정할 수 있었던 것도 유튜브라는 국경 초월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디어 기록 매체가 진화하며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이다.

물론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현실, 즉 미국에 기반을 둔 거대 자본의 초국적 미디어 기업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정 국가가 거의 모든 미디어 콘텐츠를 독점하던 것에 비하면 긍정적 효과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이런 긍정적 효과가 있는 반면, 미디어 콘텐츠의 제공이 중앙집중화돼 몇몇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미디어 콘텐츠를 기록한 물리적인 매체를 더 이상 개인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

거대 기업이 소유한 클라우드에 콘텐츠는 물론 다양한 데이터가 저장되고, 소비자는 일정 금액을 치르고 그런 정보에 접근한다. 어느 날 어떤 이유에서건 클라우드 서비스가 중단되면 소비자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먼 미래에 우리 후손들이 21세기에 살았던 조상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고 싶어도 물리적인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상상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수백 년, 수천 년전의 역사를 우리가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은 당시에 석판이나 종이와 같은 물리적인 매체에 저장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필름 카메라 시절의 사진은 세월이 오래 지나도 남아있지만, 지금 우리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아날로그 매체에 기록된 데이터에 비해 디지털 매체에 기록된 데이터는 그 보존성이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디지털 데이터는 세월이 지나도 원본이 전혀 손상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복제되고 저장된다는 장점이 있고, 그리고 중요한 데이터는 아마도 우리 문명이 지속되는 한 보존이 되겠지만, 사소한 기록은 그대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미처 대처하지 못한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서버가 손상돼 모든 데이터가 날아가 버릴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걱정은 기우일 뿐이겠지만, 이제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미디어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기 어려워졌기에, 무엇인가 허전하고 박탈감과 더불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지만, 미래에도 역시 거대 자본이 사회 구석구석, 특히 미디어 콘텐츠를 통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내 손에 잡을 수 있는 콘텐츠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넷플릭스가 작정만 한다면 언제든지 오징어게임을 삭제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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