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③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멘탈(mental)은 얼럿(alert)한데 왼쪽 모터(motor)가 푸어(poor) 정도로 떨어져 있으셔.” 병원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의사들이 나누는 대사이다. “정신은 말짱한데 왼쪽 운동성은 부족한 상태”라고 말하면 되는 것인데 의사들은 이렇게 굳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렵게 이야기를 한다. 언어가 권력임을 잘 보여주는 대사이다.

언어와 문자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초창기 매체의 발달과정에서 살펴봤듯이, 문자와 매체는 지배계급의 사회 통치를 위한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그런 속성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정보이고, 누가 얼마나 더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세력이 가장 먼저 언론을 장악하는 이유이다. 언론을 장악한다는 것은 곧 정보를 통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미디어이고, 미디어는 언어와 문자를 이용해 정보를 전달한다. 따라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은 언어능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문자가 처음 사용된 것이 교역과 관련한 상업적 정보를 기록했다는 것은 문자 해독능력이 곧 돈과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자본과 권력을 가진 지배계급은 정보를 독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와 문자를 이용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해독하지 못할 언어와 문자로 정보를 기록하고 유통하는 것이다.

과거 문맹률이 높았던 이유는 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기도 했지만, 지배계급이 의도적으로 일반 대중들이 문자를 배우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속성은 일반 대중들이 누구나 쉽게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고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후에도 한글이 널리 보급되지 못한 이유는 지배계급이 의도적으로 한자를 사용해 정보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한글을 사용해 쉽게 고급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귀족계급이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유럽보다 훨씬 일찍 인쇄술을 발명하고 나서도 인쇄술이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정보의 대량 유통을 촉진할 이유가 없었다. 권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한자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1990년대 이후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한글이 전용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만큼 권력 유지를 위한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속돼왔다는 반증이다. 과거에는 한자를 사용해 일반 대중의 접근을 차단했다면, 현대 한국에서는 영어가 새로운 권력 유지 수단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한자는 습득하기 어렵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야만 터득할 수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자녀 교육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기에 지배계층 구성원들이 권력을 세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현대 한국에서 지배계급의 자녀는 영어권에 유학을 하거나 국제학교 진학 등의 방법으로 영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한다.

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외국어, 특히 과거 한자(중국어)나 현재의 영어 구사 능력은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사회 지배층 자녀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이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이 영어이고, 서울 명문대학 입학생의 절반가량이 소위 ‘있는 집’ 자녀라는 통계는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언어가 부와 권력을 세습하고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단순히 외국어가 아니라,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고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한 것이다.

상류 계급을 구성하는 직종인 법조계나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언어가 권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법조문은 생소한 용어로 구성돼있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법조문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만이 이해할 수 있게 의도적으로 생소하고 복잡한 용어를 사용한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법조문을 일반적이고 쉬운 언어로 고쳐가는 작업이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 불편함이 많다. 법이야 말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가장 쉬운 언어로 작성돼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특정 계층의 권력 유지를 위해 어렵게 만들어졌으니, 사법부가 권력의 핵심으로 군림할 수 있는 힘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의료계의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충분히 한국어로 표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낯선 영어가 대부분이다. 한국어로 번역이 어려운 의학용어도 있겠지만, 평이한 내용을 전달할 때도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학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각자 분야별로 특별한 용어를 사용해 타 분야의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학술 논문이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작성되는 이유이다.

개인의 지적 허영심으로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만의 배타적 리그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를 이용하는 목적이 강하다.

영어는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수단이 될 것이다. 환경이 변하면 새로운 언어와 문자가 부상하겠지만, 언어와 문자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이용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한글 창제의 목적에 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일반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한자의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글을 만들었다는 학설도 있다.

한글 창제의 원래 목적이 무엇이건, 한글이 매우 뛰어난 문자 체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그 혜택을 우리 후손들이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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