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대에서 SNS까지, 인천언론을 중심으로 번외편 ⑤

인천투데이=전영우 객원논설위원│

인천투데이는 매주 인천미디어변천사를 연재합니다. 원시 부락을 이루고 살던 시절 연기와 불을 피워 위급한 소식을 알리는 봉수대(烽燧臺)에서부터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르기까지 미디어(매체) 변천사를 기록합니다.

인천 언론을 중심으로 미디어 변천사를 정리해 인천 언론의 발달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연재글을 쓰는 전영우 박사는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이번에 쓴 글은 번외편입니다.<편집자주>

헐리웃 영화나 미국 드라마의 상상력에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문화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의 참신한 상상력과 반지의 제왕이나 아바타 같은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영상 기술은 넘사벽으로 여겨졌다.

대중음악은 미국의 팝 음악이 세계의 표준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강 국가의 문화 경쟁력에 감히 도전하고, 곧 뛰어넘을 것 같은 기세를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선보이고 있다.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다.

미국의 대중음악 차트인 빌보드에 한국 가수 노래가 1위를 한다는 것은 불과 얼마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미국의 로컬 영화제이지만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기에 권위를 인정받는 영화제인 아카데미상에서 한국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고 한국 배우가 조연상을 수상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이 모든 일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모두 이뤄졌다.

이제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를 평정했다. ‘오징어게임’이 세계를 사로잡더니,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지옥’은 공개되자마자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 1·2위를 모두 한국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고 10위 안에 한국 드라마 3편이 자리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명실상부 문화 강국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고 보겠다. 이미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최상위권에 진입한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강국의 면모도 갖췄다는 의미이다.

가난한 최빈국에 태어나서 서구 선진국 문화를 동경하며 성장했던 기성세대의 눈에 작금의 현상은 경이로움이다. 문화 강국을 염원했던 김구 선생의 소망이 실제로 이뤄졌는데, 이 소망이 불과 1세기만에 실제로 이뤄지리라고는 선생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경제와 사회 모든 분야가 발전하면 문화도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선진 문화강국을 뛰어넘는 최근의 한류 열풍은 분명히 특별한 일이다.

사회 역량이 그만큼 충분하였기에 가능한 일이겠고, 여러 원인을 분석할 수 있겠지만 일련의 한류 작품에서 보이는 원인을 단편적으로 짚어보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이 그 원동력의 한 축이 아닐까 한다.

기생충은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한국 사회는 특히 더 심한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 간 단절과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 사회적 측면이 영화 제작의 동력을 제공했고, 마침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계급 갈등의 트렌드 속에서 국제적으로 어필하는 힘을 갖추게 됐다고 본다.

오징어게임도 마찬가지로 빈부격차에 의한 사회 모순을 그리고 있다. 심화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낙오된 군상들의 처절한 투쟁기이고, 극소수 부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서민들이 느끼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역시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감정이기는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 이런 아이디어로 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한국인들이 더욱 날카롭게 느끼고 있는 감정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희망이 사라진 사회가 됐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압축 성장을 거치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희망이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희망이 사라진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더 심할 수밖에 없고, 그런 민감성이 드라마와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인다.

희망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까. 종교가 힘을 얻게 된다. 기댈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피난처를 제공하고, 하나의 세력으로 자라난다. 오징어게임이 보여주는 종교에 대한 시각은 그런 현상을 짚어내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연상호 감독의 ‘지옥’에서는 누가 언제 지옥행 고지를 받고 처참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로 가득한 암울한 사회에서 종교 집단이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비슷한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특히 종교의 세력이 상당히 큰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물론 드라마의 주제가 종교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점을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그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 드라마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모순과 어두운 측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비판적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경쟁력을 갖추는 중요한 요인이기에 긍정적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콘텐츠는 그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류 열풍이라 할 만큼 경쟁력을 갖춘 것은 좋은 일이나, 그 경쟁력의 바탕을 구성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측면도 돌아보며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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