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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7년 전인 1917년 4월 22일 대한제국이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헤이그에 보낸 고종의 특사 중 한 명 이던 독립운동가 이상설(1871~1917, 향년 46세) 선생이 순국했다.이상설 열사는 헤이그특사[1907,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해 을사조약(1905)의 부당함을 폭로하고자 한 외교활동]로 파견된 적이 있으며, 연해주에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1914)해 정통령(正統領)에 취임하는 등 일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다. 또한, 그는 한국 근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4.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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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김도윤 기자│인천시는 지난해 시민 34명이 인천 문화와 역사가 담긴 유물 296점을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인천시립박물관은 지난해 유물을 기증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유물 기증식을 16일 개최했다.인천시립박물관은 매년 한국과 인천의 역사·민속·문화·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을 기증 받고 있다. 2023년에 개인 34명이 183건(유물 296점)을 기증했다.이날 인천시립박물관 해넘이방에서 개최된 기증식에서 인천시립박물관은 기증자에게 기증증서, 기념품, 기증유물 목록집을 전달했다. 박물관은 시민이 기증
문화
김도윤 기자
2024.04.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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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5년 전인 1919년 4월 15일 일제가 3.1대한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원 제암리에서 학살을 저질렀다.일제가 저지른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은 1919년 민족의 거족적 운동인 3.1독립만세운동을 향한 보복 행위다. 당시 일제 군경이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사는 민간인 20여명을 학살하고 민가 30여호를 불태웠다.1919년 3.1운동은 거족적 독립운동으로 국내 곳곳에서 독립을 향한 열망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1919년 3월 31일 수원 제암리 인근 발안 장터(경기 화성시 향남읍 위치)에서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4.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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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28년 전인 1896년 4월 7일 최초의 한글·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독립신문은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951, 향년 86세) 박사가 유길준(1856~1914, 향년 57세) 등 정부 개화파 인사와 합작해 창간한 신문으로 창간 당시에는 한글판(독닙신문) 3면과 영문판(The Independent) 1면으로 주3회 발행했다. 1897년부터는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분리되고, 1898년 7월 1일부터는 일간으로 발행됐다.독립신문은 가로제호, 한글전용, 띄어쓰기 등을 도입했고, 1면 머리에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4.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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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 4월 4일 독립운동가 서재필(1864~1951, 향년 86세)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됐다. 1948년 그가 미국으로 떠난지 46년만의 고국 귀환이었다.서재필 박사는 격동의 구한말 시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의 개혁과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1884년엔 김옥균(1851~1894, 향년 43세)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개혁을 단행하고자 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자 서재필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부모·형·아내는 음독 자살하고 두 살 아들은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4.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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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94년 전인 1930년 4월 2일 식민지 대한제국의 항공기 조종사이자 하늘을 날던 독립투사 안창남(1901~1930, 향년 30세)이 항공기 사고로 순국했다.안창남은 항일 독립 운동가이자 항공기 조종사였다. 그는 항공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1920년 일본 도쿄 오구리비행학교에 입학했다.입학 이후 안 열사는 1921년 3등 비행사 시험에 합격했다. 1922년엔 도쿄 비행대회에서 3등을 하는 등 뛰어난 항공 조종 실력을 보여줬다.또한, 그는 1922년 한국에 돌아와 '동아일보' 초청 ‘고국방문대비행’에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4.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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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김다언 작가|정지용의 ‘슬픈 인상화’는 인천항을 배경으로 쓴 시이다.1925년 일본 유학 중이던 정지용은 도시샤대학의 예과학생회지에 일본어 시 ‘仁川港の或る追憶’를 11월 발표했는데, ‘슬픈 인상화’는 1926년 ‘학조學潮’(재일본경도조선유학생 잡지)에 실린 한국어 제목이다.언뜻 보아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알쏭달쏭한 구절이 몇 곳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수박 냄새 품어 오는첫여름의 저녁때······먼 해안 쪽길 옆 나무에 늘어선전등. 전등.헤엄쳐 나온 듯이 깜박거리고 빛나노나.침울하게 울려오는축항의 기적 소리··
교양
김다언 작가
2024.03.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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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5년 전인 1919년 3월 30일, 일제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발생한 대한 독립 만세운동을 총칼로 무참히 진압하고 조선인들을 유린했다.당시 1919년 우리 민족의 거족적 독립 만세운동인 3.1 운동의 여파로, 국내 곳곳에서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외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 번졌다.평안북도 의주도 마찬가지였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와 독립통고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목사 유여대(1878~1937, 향년 60세)를 중심으로 대규모 만세운동이 발생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3.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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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송승원 기자|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로 독일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이미륵 박사의 74주기 추모제가 지난 16일 독일 그래펠핑(Graefelfing)시에서 열렸다.이날 추모제엔 박희석 본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와 쾨스틀러(Koestler) 그래펠핑시 시장 등이 참석했다. 제사는 한국식으로 치러졌다. 이미륵 박사 기일은 3월 20일이다. 추모제가 매년 기일이 가까운 토요일에 열리고 있다.이미륵 박사의 유족들이 인천에 터를 잡았고, 기념사업회도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다.유족대표인 이영재씨는 "해마다 추모제에 참석하는 대사관 관계자와
사회
송승원 기자
2024.03.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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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86년 전인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1878~1938, 향년 59세) 선생이 경성제국대학 병원에서 순국했다.도산 안창호 선생은 조선이 일제 침략과 지배로 고통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 일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다.안 선생은 1897년 독립협회에 가담해 조선의 자주독립을 주장했다. 1903년 미국 유학 시절엔 공립협회를 조직해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와 1907년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뒤에서 총지휘했다.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3.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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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인투아이(INTO-AI) 기자 | 인천시립박물관이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2024년도 유물 공개 구입을 진행한다.이번 유물 구입은 인천의 역사와 문화 보존을 목적으로,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천 관련 자료들을 대상으로 한다.시립박물관은 인천의 역사문화 자료 보존전승을 위해 매년 유물을 구입하고 있다. 올해 구입 대상은 조선시대 인천 연고 인물 자료, 근대 인천 공공기관 자료, 독립운동·상업경제사 자료, 근현대 도시사, 고미술 자료 등이 포함된다.유물 구입 절차는 개인 소장자, 문화재매매업자, 법인 누구나
전시
인투아이(INTO-AI) 기자
2024.03.0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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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재중앙아시아와 재러시아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던 동포의 후손인 고려인들이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거주자의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일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 인구는 1만2800여명이며 이 중 이주민은 8300명으로 6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주민 중 고려인은 함박마을 전체 인구 중 7000명으로 나타나 인구 절반 이상이 고려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등 과거 소비에트연방 지역에 거주하는 한민족 동포들의 후손을 의미한다.19세기 말
사회
박규호 기자
2024.03.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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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박규호 기자│인천 대표 정치인으로 꼽히는 죽산 조봉암도 105년 전 3.1 만세운동에 가담했다. 보훈부는 지난 죽산 조봉암에 독립운동가 서훈 추서도 검토한 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보훈부 관계자는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이 죽산 조봉암에 서훈 추서 시사한 이후로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사전 조사 단계”라며 “심사(심의) 단계 조차도 올라가지 못했기에 언론에 ‘이렇다’고 공개할 게 없다”고 밝혔다.죽산, 3.1 만세운동 격문 배포하다 1년 수감죽산 조봉암은 1899년 인천 강화군에서 태어난 항일 독립운동가다. 1
사회
박규호 기자
2024.03.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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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김도윤 기자│1919년 3월 1일, 9년전 일본제국주의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은 독립을 요구하며 만세운동을 벌였다.3월 9일 인천에서도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만국공원(현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서 일어났다.국내 13도 대표, 만국공원에서 정부 수립 논의3.1운동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서울 탑골 공원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성별, 신분, 종교, 지역 등의 차이를 초월하고 궐기한 만세운동이다.특히 3.1 운동에서 선포된 독립을 구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독립정부가 필요했다.이에 만세운동이 국내 각지로 빠르게
사회
김도윤 기자
2024.03.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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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김도윤 기자│일본제국주의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5년 뒤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이 시기를 전후로 한인들은 일제 식민지배와 감시, 수탈을 피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동북지역의 한인 수가 크게 늘어난다.동북지역 이주민 중에는 독립운동의 본거지를 해외로 옮겨 활동을 전개하는 독립운동가들도 적지 않았다.이상설, 민족교육의 산실을 북간도에 세우다이상설은 1870년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1906년 4월
사회
김도윤 기자
2024.03.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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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105년 전인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하나가 돼 ‘대한 독립 만세’를 목놓아 외쳤다.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전 우리 민족이 봉기한 항일독립운동이다.독립을 향한 열망이 들끓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일제는 헌병을 동원한 무단 통치(한병 경찰 통치)로 우리 민족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탄압했다.일제의 정치적 탄압을 비롯해 경제적 약탈로 민중의 삶은 악화돼 갔으며, 일제 식민지 지배를 향한 민중의 분노와 저항 의지는 높아져 갔다.이로 인해 우리 민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3.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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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4.19 혁명으로 민중이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린 친일독재자 이승만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을 퍼뜨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이승만은 독립운동자금을 횡령해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탄핵 당했으며,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3.1운동 정신에 배반하는 행적을 비판해도 모자랄 이승만을 건국전쟁은 3.1운동에 기여한 장본인으로 묘사하고 있다.하지만 영화 내용과 달리 이승만은 3.1 만세운동 당시 그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사회
이종선 기자
2024.03.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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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이재희 기자│올해로 3.1절 105주년을 맞이한 가운데, 대한독립의 주역인 백범 김구의 흔적이 남아있는 인천 중구의 ‘백범 청년 김구 역사거리’를 소개한다.백범 김구거리는 인천 중구 내동 신포동 문화의 거리 로터리에서 위로 올라가 성신아파트까지 이르는 약 200m 구간이다.백범 김구 선생과 인천의 인연은 1896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군인을 살해해 해주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다 1896년 인천감리서로 이송됐고, 여기서 2년간 옥살이를 했다.그뒤 김구는 1898년 3월 9일 인천감리서에서
사회
이재희 기자
2024.03.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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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1919년 3월 1일 일제치하에서 수탈당하던 한민족은 하나가 돼 대한의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을 전개했다.인천에서 당시 계양(당시 부천군 계양면) 주민도 3월 24일 오후 2시경 심혁성(1888~1958, 향년 70세)의 주도하에 황어장터(계양구 장기동)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심혁성은 황어장터 장날을 이용해 민중 600여명의 참여를 이끌었고, 독립을 열망한 민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황어장터 만세운동은 인천지역에서 펼쳐진 만세운동 중 가장 대규모였다. 태극기를 들고 쏟아지는 민중에 일제
인문학
현동민 기자
2024.03.0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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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박길성 PD | [앵커 - 인천투데이 인투아이(INTO-AI) 기자] 민간이 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발굴과 포상 신청을 해도 포상이 수년째 지연되는 주된 이유가 정부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정부가 포상 신청자의 사후 행적 조사와 객관적 자료 확보 책임을 유족과 포상신청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이 문제는 105주년 3.1절을 앞두고 인천대학교 학산도서관에서 28일 열린 ‘제11차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설명회’에서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에 의해 지적됐습니다.이 행사는 광복회와 인천대가 공동으로
인천TV
박길성PD
2024.03.01 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