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서거 86주기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오늘로부터 86년 전인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1878~1938, 향년 59세) 선생이 경성제국대학 병원에서 순국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조선이 일제 침략과 지배로 고통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 일평생 조국 광복을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다.

도산 안창호 선생 (공훈전자사료관)
도산 안창호 선생 (공훈전자사료관)

안 선생은 1897년 독립협회에 가담해 조선의 자주독립을 주장했다. 1903년 미국 유학 시절엔 공립협회를 조직해 국외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와 1907년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뒤에서 총지휘했다.

이어서 1919년 민족의 거족적 독립운동인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에 건너간 그는 임시정부의 기초를 확립하고 국민대표회를 여는데 힘썼으며, 한국독립당(1930)을 만들었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본격적인 반일투쟁을 위해 좌우익 연합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하려고 노력하던 중, 불행히도 이듬해 일제 경찰에 체포당해 국내로 끌려왔다.

안 선생은 국내에서 두 차례의 옥고를 치른 끝에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순국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날 방안이 무엇이며 더 나아가 살기 좋은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항상 연구했다.

먼저, 그는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주독립을 위해 민족 개개인의 ‘인격 혁신’을 강조했다.

안 선생은 개개인의 인격 혁신은 곧 자기개조이며 자기개조가 곧 민족개조, 발전으로 이어져 자주적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안 선생은 독립을 이루고 민주국가를 세워 번영을 누리기 위해선 민족을 위해 헌신할 지도적 인문들의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민족운동 간부의 양성을 위한 흥사단(1913)을 설립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절한 시기에 일제와 전쟁을 해 승리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안 선생은 최소한의 근대적 무력을 준비해 두자는 독립전쟁준비론을 정립했다.

또한, 그는 독립을 이룬 다음에는 모든 국민들이 자유롭고 고르게 잘 살 수 있게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민주국가건설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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