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처음 시작한 만세운동

인천투데이=현동민 기자│1919년 3월 1일 일제치하에서 수탈당하던 한민족은 하나가 돼 대한의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인천에서 당시 계양(당시 부천군 계양면) 주민도 3월 24일 오후 2시경 심혁성(1888~1958, 향년 70세)의 주도하에 황어장터(계양구 장기동)에서 만세운동을 펼쳤다.

인천 계양구 장기동에 위치한 황어장터 만세운동 기념관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인천 계양구 장기동에 위치한 황어장터 만세운동 기념관  (사진제공 한국관광공사)

심혁성은 황어장터 장날을 이용해 민중 600여명의 참여를 이끌었고, 독립을 열망한 민중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은 인천지역에서 펼쳐진 만세운동 중 가장 대규모였다. 태극기를 들고 쏟아지는 민중에 일제는 심 지사를 체포하고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계양주민이 심 지사를 다시 풀어주기 위해 구출운동을 전개했다. 그러자 일본순사 하나가 선봉에 섰던 이은선(1876~1919, 향년 43세)을 칼로 베어죽이고 윤해영(1890~1957, 향년 67세)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계양주민 40여명은 운동을 전개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중 이담(1879~1955, 향년 76세)은 징역 2년, 임성춘(1869~1937, 향년 68세)은 징역 1년, 최성옥(1872~1929, 향년 57세)과 전원순(1874~1945, 향년 71세)은 각각 징역 10월, 심 지사는 징역 8월에 처해졌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중심인물 심혁성 지사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중심인물 심혁성 지사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심 지사는 1년여의 옥고를 치루고 논과 밭 그리고 집을 팔아 생필품을 장만하여 장터에서 빈민들에게 나눠줬다.

그는 처자를 거느리고 산골로 은신, 국내 곳곳을 30년 가까이 방랑하며 약초를 캐어 연명했다. 심 지사는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만주 등지를 오고가며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그들의 정신을 기억하며

황어장터의 만세운동은 계양 주민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인천지역, 나아가 국내 만세운동에도 마중물 역할을 하며 범국민적 만세운동에 크게 공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현재 인천 계양구 장기동엔 황어장터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추모 기념탑이 있다. 추모 기념탑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일제에 항거, 목숨을 바쳐 희생한 애국지사 선대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후대에, 특히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의 산교육의 장으로 삼아 민족의식을 고양하고자 여기 추모 기념탑을 세운다”

당시 암울한 일제 치하 속 독립을 위해 만세를 외친 순국선열들의 영혼과 정신은 현재까지도 인천 계양 시민에게 귀감이 돼 전해지고 있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순국선열들을 참배하는 시민들 (사진제공 계양구청)
황어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순국선열들을 참배하는 시민들 (사진제공 계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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