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열전 총 3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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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열전-번외] 제물포로 들어온 조선 근대의학의 아버지 알렌
인천투데이=김갑봉 기자 | 1884년 9월 20일, 제물포항. 26세 미국인 청년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이 배에서 내렸다. 제물포는 2년 전 개항한 항구였다. 일본인 상점들이 해안가를 따라 늘어서 있었고, 조선인들은 언덕 위 마을에 살았다.알렌이 내린 1884년 조선은 격변기였다. 2년 전인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구식 군인들이 봉기해 일본 공사관을 습격했다. 청나라가 개입해 진압했고, 명성황후는 청의 위안스카이에게 의지했다. 일본은 제물포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세력을 키웠
인문학김갑봉 기자10-23 14:12 -
[인천열전②] 어재연 장군, 광성보에서 죽음을 택한 48년 인생
인천투데이=김갑봉 기자 | 1871년 6월 11일(음력 4월 24일) 새벽, 강화유수부 광성보. 강화진무영 중군 어재연(魚在淵, 1823~1871) 장군이 성벽 위에 섰다. 48세로 30년을 변방에서 보낸 무관이 마침내 도달한 곳이 한양 방어의 최전선이었다.강화해협 너머로 미국 함대의 윤곽이 어둠 속에 보였다. 미군은 군함 5척 (기함 USS 콜로라도, 알래스카, 베니시아, 모노카시, 팔로스)에 병력 1230명을 끌고 하루 전 초지진과 덕진진을 무너트렸다. 초지진은 저항 없이 점령당했고, 덕진진도 새벽에 함락됐다. 압도적인 화력 차
인문학김갑봉 기자10-17 10:24 -
[인천열전①] 성리학의 이단 강화학파 정제두, 조선을 일깨우다
인천투데이=김갑봉 기자 | 1736년 8월 11일, 강화도 하곡. 88세 노학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 1649~1736). 조선이 이단으로 몰아낸 양명학을 평생 연구한 학자였다.임종을 앞둔 정제두는 제자들을 둘러보았다. 평생 이단이란 평을 들었으나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였다. 주자학만이 정답인 시대에 '마음이 곧 이치'라는 양명학을 택했다. 출세를 포기하고 변방 강화도를 선택했다. 그곳에서 조선 사상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강화학파의 탄생이었다.병자호란 후 조선, 예송논쟁에 매달리다
인문학김갑봉 기자09-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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