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⑥
국내 해상풍력 2028년 증가...설치·유지·보수 전용항만 필요
덴마크 에스비에르, 유럽 해상풍력 80% 출하 세계 최고수준
독일 브레머하펜, 쇠퇴한 조선업 일자리 해상풍력으로 전환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국내 해상풍력 2028년부터 폭발적 증가 O&M 항만 필요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국내 풍력발전 설비는 오는 2030년까지 19.3GW, 2036년 34.1GW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지난 2022년 기준 누적 설치량 1.8GW 대비 각각 10.7배와 18.9배 수준이다.

연도별 신규 보급량은 올해 396MW를 시작으로 매년 수백MW 단위로 증가하다 2027년부터 GW 단위로 확대된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29년과 2030년에는 각각 4.7GW와 5.3GW에 달하는 신규 풍력설비가 유입돼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2036년까지 총 32.3GW 규모의 신규 풍력설비가 보급돼야 한다는 의미다. 연평균 2.3GW씩 늘어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선 해상풍력시설 확충이 중요하다. 정부는 2028년을 전후로 대규모 해상풍력단지가 대거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기반을 닦는 게 중요하다.

해상풍력 발전기(터빈)은 개당 8MW 용량 기준으로 높이가 약 230m에 달한다. 발전기 기둥과 날개를(블레이드)를 연결하는 너셀(Nacelle) 장치는 1000톤 이상의 중량화물이다. 해상풍력발전단지 인근에서 부품을 조립·설치하고, 이를 유지보수하기 위한 O&M(Operation & Maintenance) 전용 배후항만이 필요한 이유다.

덴마크 에스비에르 해상풍력 배후항만 전경.(사진제공 State of green)
덴마크 에스비에르 해상풍력 배후항만 전경.(사진제공 State of green)

덴마크 에스비에르항 세계 해상풍력 선도... 디지털트윈 등 첨단기술 도입

덴마크 남서부 윌란반도 서부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 에스비에르(Esbjerg)는 세계적인 해상풍력 거점 항구다. 인구가 11만명에 불과하지만 덴마크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에스비에르 항구는 1970년대까지 어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석유 등 화석연료 공급의 허브 항만으로 운영됐다. 2000년에 항만이 지방정부 소유로 이양됐다.

에스비에르시는 이 항만을 2003년 세계 최초 160MW급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인 혼스레브(Horns Rev) 지원항만으로 선정했다. 이후 북유럽 해안에서 해상풍력단지 조성산업이 활발해지면서 2017년까지 3000억원을 투자하며 에스비에르항은 세계 최고의 해상풍력 배후단지로 성장했다.

에스비에르 해상풍력항만의 전체면적은 450만㎡(136만평)에 달하며, 부두 면적은 65만㎡(20만평) 수준이다. 부두 선석은 최대 길이 225m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으며, 최대 흘수(선박이 잠기는 깊이)는 10.3m이다.

배후항만 인근 1km에는 고속도로가 있고, 철도는 1.5km 거리에 있어 물류접근성도 탁월하다.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한 덴마크 에스비에르 해상풍력 배후항만.(사진제공 State of green)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한 덴마크 에스비에르 해상풍력 배후항만.(사진제공 State of green)

지난 2020년까지 기업 200개가 참여한 55개 해상풍력 발전단지 프로젝트에 22GW용량의 발전기가 에스비에르 항만에서 출하됐다. 건설한 터빈은 4000개가 넘는다. 이는 유럽에 설치된 해상풍력 프로젝트 건 중 80%에 해당한다.

에스비에르 해상풍력 배후항만은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다. 전체 일자리 6만여개 중 1만5000여개에 달하는 25%가 에너지산업 관련 일자리이며, 이중 풍력발전 분야만 4200개다. 오스테드·바텐팔·MHI베스타스·지멘스-가메사 등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서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에는 점차 해상풍력발전기가 대형화되면서 이를 위해 항만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올해 초 에스비에르항은 항만을 가상세계로 구현한 디지털트윈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를 활용하면 해상풍력 부품 보관과 시설 운송에 따른 공간 활용부터 해안 만조 영향까지 모두 디지털로 분석해 항만을 운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에스비에르항에서 선적되는 해상풍력 터빈 용량은 연간 1.5GW에서 4.5GW로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독일 브레머하펜 해상풍력 배후항만 전경.(사진제공  Windenergie Agentur Bremen·Bremerhaven)
독일 브레머하펜 해상풍력 배후항만 전경.(사진제공 Windenergie Agentur Bremen·Bremerhaven)

독일 브레머하펜 조선업 노동자들 해상풍력 일자리 전환

독일 북부 브레멘주에 있는 브레머하펜은 인구 11만4000여명의 작은 도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 도시는 주선업을 주력산업으로 함부르크와 함께 북해의 대표적 항구도시로 번성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조선업과 어업이 쇠퇴하면서 침체 일로를 달려왔다.

2000년 초반 브레머하펜의 전통 제조업(조선·항만산업) 위기는 가속화됐고 실업률이 치솟고 있었다. 브레머하펜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해상풍력을 선택했고, 이를 위한 기업들과 전문가들이 브레머하펜에 오게 됐다.

이후 브레멘주와 브레머하펜시의 지원을 받아 풍력 관련 업체와 연구소 약 150개가 회원으로 참여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는 독일 북서지역을 대표하는 해상풍력산업협회(WAB, Windenergie Agentur Bremen·Bremerhaven)로 발전했다.

WAB는 해상풍력발전에 필수인 해운회사, 물류전문가, 항구, 연구기관 등이 350개 기업과 기관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해상풍력 관련 연구개발부터 생산, 설치, 유지관리에 이르는 모든 영역을 관할한다.

브레머하펜 해상풍력 항만은 연간 터빈 최대 640개와 기초구조물 처리가 가능하다. 전체 면적은 25만㎡(7만6000여평)이고, 최대 570m 길이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가 2개이다. 최대흘 수는 14m까지 수용할 수 있다. 현재도 부두 면적을 확장 중이다. 고속도로와 철도가 바로 인접한 것도 장점이다.

알파벤투스(Alpha Ventus) 해상풍력단지 조성 모습.(사진제공 Windenergie Agentur Bremen·Bremerhaven)
알파벤투스(Alpha Ventus) 해상풍력단지 조성 모습.(사진제공 Windenergie Agentur Bremen·Bremerhaven)

이를 토대로 브레머하펜항은 오는 2040년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오는 2030년까지는 25~30GW 규모로 해상풍력 시설을 보급할 예정이다. 지난 2010년 유럽 북해 해상에 60MW 규모로 조성된 알파벤투스(Alpha Ventus) 해상풍력단지를 지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에도 독일 전력기업 리파워(Repower)·알더블류이(RWE)·이온(E.ON),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폴(Vattenfall), 프랑스 전력회사 아레바(Areva) 등의 풍력시설 조립을 유치했다. 현재 프라운호퍼 해상풍력 연구소, 블레이드 성능센터 등 우수 연구 기관을 항만에 유치하며 관련 분야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WAB 관계자는 “브레머하펜은 지금까지 풍력산업으로 일자리 3000여개를 만들었다. 상당수는 해양연구·물류·환경·해양구조 등에서 생긴 일자리”라며 “지난 금융위기 당시 지역 소규모 조선소가 문을 닫으며 실직자 300명이 생겼지만 즉시 200여명이 풍력발전 제조업체에 재고용됐다. 풍력산업은 조선기술을 가진 노동자의 쓰임새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기획연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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