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➂
독일 연방정부 강력한 탈원전 정책, 재생에너지 확대 이끌어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 주민소통 지역상생 약속 신뢰 확보
주민소득 증대ㆍ관광객 증가ㆍ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력
태양광·바이오매스 등 재생에너지원 다양화 전력생산 2배로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독일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
독일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

독일 올해 4월 마지막 원전 폐쇄... 재생에너지 비중 50% 육박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재생에너지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로 꼽힌다. 지난 2000년 이미 원자력 발전 폐지를 결정했으며, 올해 4월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오는 2038년까지는 석탄화력발전을 모두 종료하는 게 목표다.

그 결과 지난 독일은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50%에 육박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사를 보면, 지난 2000년 독일의 전력소비량 중 재생에너지 비율은 6.3%였는데, 2019년 42.1%까지 증가했다. 오는 2030년 50%, 2040년 65%, 2050년 80%까지 달성할 계획이다.

독일의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대는 2000년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합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있다. 당시 독일은 원자력발전소가 37기로 원전이 국내 전체 전력소비량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후 2010년 정권이 바뀌면서 잠시 원전 수명 연장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메르켈 정부는 다시 탈원전 정책을 채택했다.

이를 뒷받침 한 건 재생에너지법(EEG, Erneuerbare-Energien-Gesetz)과 전기매입법(Stromeinspeisungsgesetz)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20년간 전력판매 가격을 보장 받고, 지역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지역 전력회사가 의무 구매하는 게 핵심이다.

독일 작센주 다르데스하임 마을 전경.(사진제공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
독일 작센주 다르데스하임 마을 전경.(사진제공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

풍력발전기 1대로 시작, 에너지자립도 1만% 달성

독일 작센주의 다르데스하임(Dardesheim)은 인구 8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은 에너지자립도 100%를 넘어 1만%를 자랑한다. 다르데스하임 연간 전력소비량은 150만KWh인데, 생산량은 연간 1억5000만KWh에 달한다.

다르데스하임 주변 마을주민 4000여명까지 이곳에서 생산한 전력을 모두 공급받으며, 남는 전기는 다른 지역에 판매하기도 한다. 여기서 얻는 수익은 풍력발전시설 확충에 재투자되거나 지역에 환원된다.

현재 다르데스하임에서 운영되는 풍력발전기는 총 37대, 총 발전용량은 82.6MW이다. 처음 시작은 1994년 한 마을주민이 설치한 작은 풍력발전기였다. 당시에는 독일에도 풍력발전시설을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기후위기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감대가 적었기 때문에 모험적인 시도였다.

이후 풍력발전기는 조금씩 늘어 다르데스하임의 전력을 책임질 수 있게 됐고, 2008년에는 에너콘(EnerCon)이라는 풍력발전 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또 같은해 작센주 최초로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전기자동차 충전소가 설치되면서, 다르데스하임은 독일 내에서도 재생에너지로 유명한 마을이 됐다.

독일 다르데스하임 에너지파크 전경.
독일 다르데스하임 에너지파크 전경.

매해 약 1억원 환원 배당금 최대 6%...지역경제 활성화까지

다르데스하임은 처음부터 주민들과 대화로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풍력발전을 시작한 1994년 당시에는 풍력발전소가 환경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민들이 발전소를 활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는 수익의 1%를 매해 지역사회에 기부한다. 연간 대략 6만~8만유로(한화 1억원 상당)에 달한다. 여기에 주민들이 발전소에 지분을 투자하면 연간 4~6% 수준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풍력발전소로 인한 지역경제 효과도 따라왔다. 우선 발전소를 운영하기 위해 고용 인원은 대부분 지역주민들로 채워진다. 이는 일자리 창출로 젊은 층이 마을을 떠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를 견학 온 학생들.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를 견학 온 학생들.

또한 학생·주민들은 언제든지 발전소를 방문해 견학할 수 있게 하며 소음과 전자파 배출에 대한 걱정을 해소시켰다. 이는 다르데스하임 관광산업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풍력발전소 운영총괄(PM)을 맡고 있는 랄프 보이그트(Ralf voigt) 다르데스하임 시장은 “그동안 53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다르데스하임을 찾았다. 마을 명소가 된 에너지파크(Enegy Park)에선 5~9월 둘째주 주말마다 야외 음악축제와 맥주파티가 열리며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광객 증가와 함께 풍력발전소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땅도 필요해지면서, 지역 부동산의 가치도 커지고 있다”며 “기존 농지 가치가 1헥타르(ha) 당 300유로 수준이었다면, 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해 사용되면 3000유로로 10배 이상 상승한다. 주민들이 풍력발전소 확대를 반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다르데스하임 에너지파크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모습,
다르데스하임 에너지파크에서 열리는 음악축제 모습,

투명한 발전소 운영...‘환경보호 시상식’ 주요 지역행사 등극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는 운영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는 분기마다 발간하는 소식지 ‘다르데스하임 윈드블라트(Dardesheimer Windblatt)’에 기재된다. 소식지에는 마을에서 생산된 전력과 판매수익금, 지분구조, 투자 회수금 등의 내용뿐 아니라 환경과 관련한 주제들도 담는다.

소식지에는 다르데스하임 풍력발전소가 매해 개최하는 환경보호 시상식에 대한 내용도 실린다. 지난 2003년부터 열린 이 시상식은 마을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잡았다. 환경보호에 일조한 주민이나 단체들을 대상으로 수여한다.

수상자들에게 지급하는 상금 5000유로는 모두 발전소 수익에서 나온다. 발전소 수익을 지역에 환원한다는 경제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환경보호와 재생에너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기능도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르데스하임은 앞으로도 재생에너지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노후한 풍력발전기는 교체할 계획이다. 평균적으로 풍력발전기의 수명은 약 20년인데, 이를 초과하면 재생에너지법(EEG) 지원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랄프 보그트 독일 다르데스하임 시장 겸 풍력발전소 운영총괄이 풍력발전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랄프 보그트 독일 다르데스하임 시장 겸 풍력발전소 운영총괄이 풍력발전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랄프 보그트 시장은 “2035년 이후 장기적인 목표로 기존 풍력발전기 30대를 철거하고 15대를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새로운 발전기는 기존보다 4배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며, 전체 풍력발전소 전력생산량은 2배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다르데스하임은 풍력 외에도 태양광·바이오매스 등의 재생에너지원을 확보 중이다. 이 중 농업생산물로부터 얻는 바이오매스는 바람과 햇빛이 부족할 경우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재생에너지 혼합 발전으로 더욱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한 에너지 저장장치 확충도 중장기 과제다.

*이 기획연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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