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⑤
과거 원전 선도국가 덴마크, 오일쇼크 이후 화려한 변신
배타고 30분 해상풍력발전단지 코펜하겐 관광명소 등극
끊임없는 소통으로 주민·어민 수용성 확보...보상은 확실히
덴마크에너지청 해상풍력 입지 선정부터 인허가 ‘원스톱’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덴마크 안데르센 인어공주 동상.
덴마크 안데르센 인어공주 동상.

노벨 물리학상 배출, 원전 선도국가였던 덴마크의 변신

1939년 세계 최초로 핵분열에 성공한 덴마크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원자물리학의 교황’으로 불리는 닐스보어(Niels Bohr)를 배출한 나라다. 1970년대까지 원전 기술을 선도했지만, 정부가 1985년 탈원전을 결의하면서 현재 원전이 없는 나라다.

1970년대 초까지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공급량은 전체 에너지 소비량 가운데 2%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중동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석유로 에너지 소비를 충당했다. 그러던 중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타격을 입은 후 국가안보 관점에서 에너지 전환 필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석유파동 직후 덴마크가 시행한 정책은 전기이용료를 높이거나 일요일에 차량운행을 금지하는 등 단기 미봉책에 그쳤다. 이후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을 맞추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뒀다.

1997년부터 덴마크는 에너지 수입 없이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에너지자립국 반열에 올랐다.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과 제품 수출로 국가경제에도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면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합의 수준도 높다.

덴마크는 지난 2020년 기준 전체 전력생산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80%를 돌파했다. 이 중 풍력 발전량만 6353GWh로 57%를 차지한다. 또한 전체 풍력발전시설 중 약 40%가 지역주민들이 참여한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 중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연안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middelgrunden offshore wind farm)
덴마크 코펜하겐 연안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middelgrunden offshore wind farm)

연간 200만명 찾는 해상풍력단지 빼어난 경관까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해상으로 약 3.5km 떨어진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Middelgrunden Offshore Wind Farm)는 에너지민주주의를 실현한 대표적인 시민참여 모델이다.

현재 2M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기 20개가 설치돼 40MW 규모로 운영 중이다. 고정식 풍력발전으로 터빈 높이는 총 102m이다. 해수면으로부터는 65m 높이로 코펜하겐의 해안선을 장식하고 있다. 코펜하겐의 4만가구 이상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는 현재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매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미델그룬덴 발전협동조합은 풍력발전단지 관광 상품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배를 타고 터빈에 접근하고 있다.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를 둘러보기 위해 방문객들이 배를 타고 터빈에 접근하고 있다.

코펜하겐 중심부에서 북동부 4km 지점에 위치한 노하운(Nordhavn)에서 보트를 타고 30분 정도 달리면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에 닿을 수 있다. 20명 이내의 단체관광코스 비용은 약 3000크로네, 한화 약 54만원 정도다.

이곳을 방문한 지난 7월 17일에는 미국 고등학생들의 견학이 예정돼 있어 개인자격으로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개인자격으로 참가할 경우 비용은 210크로네(한화 4만3000원)이다.

65m 높이의 풍력터빈 내부로 들어가 발전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발전단지의 유지·보수 현황, 미델그룬덴 프로젝트의 성공 이야기뿐만 아니라 주민상생 사례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탁 트인 발트해 상공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코펜하겐 경치도 덤으로 누릴 수 있었다.

덴마크 코펜하겐 연안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 터빈에 올라간 사람들이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연안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 터빈에 올라간 사람들이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시민 8600여명 조합원...해상풍력 배당금 최대 40% 비과세

미델그룬덴 해상풍력단지는 1996년 지역주민과 환경·에너지 기관·전문가 등이 지역협의체를 구성해 조성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덴마크 에너지청(DEA, Danish Energy Agency)은 미델그룬덴을 해상풍력발전의 잠재적 장소로 선정하긴 했지만, 공공기관과 기업체들은 이곳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았다.

이에 코펜하겐 주민들과 지역발전소 등은 협동조합을 결성해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조합원 1만명 모집을 목표로 지역주민에게 주식 우선매입권을 부여했다. 그 결과 1만명 중 8552명이 조합에 등록하는 높은 시민참여율을 달성했다.

미델그룬델 에너지 협동조합 1구좌 당 투자금액은 570유로 정도다. 조합원들은 매년 연간 70유로의 수익(약 12.2%)을 누리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시행한 결과다.

미델그룬덴에서 생산된 전력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에 따른 가중치를 산정해 시장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보장해 준다. 또한 추가 보조금과 함께 1인당 5구좌까지는 소득의 40%까지 세금을 면제하는 혜택을 부여한다.

덴마크 해상풍력발전단지 계획도.(자료제공 덴마크 에너지청)
덴마크 해상풍력발전단지 계획도.(자료제공 덴마크 에너지청)

투명한 의견수렴 과정, 보상은 확실하게

보조정책과 더불어 개발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진 투명한 사업추진 절차, 지역주민과 적극적인 의사소통 역시 성공적인 시민참여 모델을 만든 요인이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68만유로를 투자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공청회를 진행했으며, 지역주민 1600여명을 공사현장에 초청하기도 했다.

이는 발전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또한 주민들과 소통한 결과 기존에 터빈 27개를 설치하려던 계획은 지역주민과 어업인들의 의견을 수용해 20개로 줄였고, 2001년 가동을 시작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어업피해에 대한 우려도 핵심 쟁점이었다. 덴마크 어업법은 해상풍력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어민의 동의 확보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체계적인 보상을 약속하자, 어민들은 해상풍력터빈 반경 200m 내에서 어업활동이 금지된다는 점을 수용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 결과, 미래엔 해상풍력 시설이 암초역할을 하고, 해저 동식물들을 위한 서식지 역할을 해 어획량 증대에 도움이 될 거란 결과도 나왔다.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에 투입하기 위해 건설 중인 풍력터빈시설.(자료제공 middelgrunden offshore wind farm)
미델그룬덴 풍력발전단지에 투입하기 위해 건설 중인 풍력터빈시설.(자료제공 middelgrunden offshore wind farm)

덴마크 에너지청, 입지계획 수립 후 민간입찰 총괄...인허가 간편

덴마크 재생에너지 민관협력기구이자 싱크탱크인 스테이트오브그린(State of Green) 발표를 보면, 현재 덴마크에는 풍력터빈 약 4730기(해상 630기, 육상 4100기)가 설치돼 있으며, 발전규모는 6.9GW에 달한다. 오는 2030년까지 덴마크 해상풍력 규모는 9GW, 2050년엔 35GW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이처럼 덴마크가 해상풍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전 입지계획부터 철저했기 때문이다. 1995년 덴마크 에너지청이 설립한 해상풍력 지역계획위원회는 국토교통부·국방부·문화부·환경농림부·에너지기후전력부 등 정부부처를 비롯해 전력계통 운영사, 풍력산업계, 학계 등으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해양자원에 얽힌 이해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추후 영향을 평가한 뒤 해상풍력 입지를 선정한다. 이에 따라 국가계획으로 해상풍력발전단지 계획도를 작성하고, 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한다.

공공이 먼저 적합입지를 제안하니 인허가 소요기간도 평균 34개월로 유럽 평균 42개월에 비 빠른 편이다. 인허가 권한은 덴마크 에너지청이 모두 지니는 일원화 구조다.

이처럼 덴마크는 공공이 먼저 나서 입지를 선정하고, 사업자들의 인허가를 위한 사전절차까지 돕는다. 대부분 책임을 민간에 맡기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덴마크와 같은 반도국가로 국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상풍력 자원은 풍부하다. 하지만 수용성 부족으로 해상풍력 조성사업이 추진되는 곳곳에선 몸살을 앓고 있다. 덴마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델그룬덴 풍력발전 터빈 위에서 바라본 코펜하견 전경.
미델그룬덴 풍력발전 터빈 위에서 바라본 코펜하견 전경.

*이 기획연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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