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➁
풍력 보급 ‘지지부진’...협동조합, 재생에너지 보급확대 일조
시민이 생산·분배 모두 함께 결정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
안산시민햇빛발전조합 민관협력 성공사례...인천서도 꿈틀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생산·분배 모두 함께 결정하는 에너지협동조합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는 입지 선정 과정에서 낮은 주민수용성을 보여 보급·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로 지역 주민과 발전사업자 간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이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주로 발전소 건설·운영 과정이 지역 주민들의 의사가 배제된 채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덴마크·독일·미국·일본 등 선진국들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은 편이다. 풍력·태양광 발전시설 운영 시 협동조합의 형태로 주민참여 모델이 일반화된 덕분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과정이 민주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울러 발전시설 운영 시 주민들의 단순한 의사결정 참여와 이익공유 차원을 넘어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력을 스스로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로까지 이어진다. 이른바 ‘에너지 분권’ 실현이다.

2021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2021년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태양광 5년새 2.5배 증가,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보급 선봉

에너지 협동조합은 시민들이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 공동체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재생에너지 협동조합들은 거의 대부분 시민주도로 운영되며 아직 태양광발전소에 국한된다. 풍력발전소를 지을 경우 연평균 풍속을 조사해야하는 등 행정절차가 더 까다롭고, 발전시설 설치비용도 막대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조합원으로 가입해 출자금을 내고 태양광 모듈을 구입한다. 조합은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한다. 그리고 그 수익금은 조합원들에게 배당한다. 시민들이 조합원으로서 전기에너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국내 최초 에너지협동조합은 지난 2012년 3월 창립한 ‘서울시민 햇빛발전 협동조합’이다. 서울 노원구 상원초등학교(37.2kW), 관악구 인헌고등학교(75.6kW), 중랑구 중화고등학교(60.48kW)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 중이다

이후에 10여년간 국내 에너지협동조합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발표를 보면, 국내 재생에너지협동조합 수는 올해 기준 92개까지 늘었다. 이는 태양광발전 보급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량 추이.(자료출처 한국에너지공단)
국내 연도별 재생에너지 발전량 추이.(자료출처 한국에너지공단)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보면 태양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풍력발전 보급이 국내 곳곳에서 주민수용성 확보 난항으로 저조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년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 결과’를 보면, 2021년 태양광 발전량은 1만9338GWh이다. 2017년 대비 2.5배나 늘었다. 이는 2021년 재생에너지 전체 발전량 가운데 57%를 차지한다.

반면, 주요 재생에너지원으로 꼽히는 풍력발전은 보급 확대가 더디다. 2021년은 전년 대비 발전량이 고작 0.9% 늘었다.

반월배수지 유휴부지에 설치된 안산시민햇빛발전소.(사진제공 안산시민햇빌밫전협동조합)
반월배수지 유휴부지에 설치된 안산시민햇빛발전소.(사진제공 안산시민햇빌밫전협동조합)

안산햇빛발전조합 매년 10% 성장세... 올해 매출 100억 목표

경기도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국내 최대 규모의 태양광발전 시민협동조합이다. 현재 조합원 수는 1400명이 넘는다. 지난해에만 180명이 가입해 조합원 수가 전년대비 11.5% 증가하는 등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누적 출자금 규모는 48억7100만원에 달한다.

2023년 현재 기준 발전소 41개를 운영 중이며, 전체 발전용량은 4354kWh(1시간 동안 4354kW 생산)이다. 이는 4인 가구 월평균 전기사용량 기준(300kWh)으로 계산하면 1677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다.(하루 평균 태양광발전 일조시간 3.8시간 적용)

공공용지에 설립한 발전소는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발전 사업용이다. 한전에 전력을 판매한 수익은 조합원에게 배당한다.

조합 출자 한도는 1인당 1계좌 10만원에서 1000계좌 1억원까지다. 배당은 수익에 따라 매년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한다. 지난 2018년부터 5%씩 배당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59억원을 기록했고, 조합원들에게 배당금을 6%씩 지급했다.

올해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목표는 조합원 2000명 확보, 매출 100억원 달성이다. 이로 인한 탄소배출 감축량은 연간 2만톤으로 추산된다. 조합원 1인당 12톤을 절감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햇빛발전협동조합 민관협력 성공모델... 인천서도 잰걸음

안산시민햇빛발전 협동조합이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잡는 과정에는 지자체의 협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차장·터널·하수처리장·체육관·도서관 등 주요 공유재산 용지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안산시는 2016년 2월 국내 기초지자체 중 최초로 에너지자립 계획인 ‘안산 에너지비전 2030’을 선포한 바 있다. 2030년까지 전력자립도 200%, 신재생에너지 전력생산비중 30%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선언이다. 시민과 함께 에너지 자립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기본 전제다.

조항오 안산시민햇발전협동조합 본부장은 “안산시는 태양광발전 설치를 위한 공공용지 임대 외에도 조합원 모집활동을 함께 홍보해 주는 등 지자체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선진국 사례처럼 수익을 시민과 함께 공유하는 협동조합 모델은 기후위기 시대 재생에너지 확대보급에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산시의 성공사례를 본받아 최근 국내 곳곳에서도 시민주도 에너지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서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경기시민발전협동조합협의회는 출자자 50명 이상으로 구성된 에너지협동조합 32개가 참여하는 협의체다. 주로 시민 대상 에너지전환 교육, 청년·시민 활동가 양성, 정책 제안 등의 활동을 한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인천시민발전협동조합네트워크
지난해 6월 출범한 인천시민발전협동조합네트워크

인천에서도 최근 몇년간 새로 설립되는 에너지협동조합이 늘고 있다. 그 중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은 2013년 설립된 첫 사례다. 이후 올해까지 9개로 늘었으며, 이들을 묶은 협의체가 지난해 6월 출범한 인천시민발전협동조합네트워크다.

회원 조합은 인천햇빛발전협동조합, 미추홀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탄소중립마을너머사회적협동조합, 공간사랑협동조합, 탄소중립인천협동조합, 부평햇빛발전협동조합, 인천해바람시민발전협동조합, 염전골햇빛발전협동조합, 동인천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다.

네트워크는 오는 2025년까지 인천 군구 10개마다 햇빛발전 협동조합 1개 이상을 설립하고 각 조합별 발전소 3개 이상 설치, 조합원 2000명 이상을 모집하는 게 목표다. 2030년에는 155개 읍·면·동 마다 마을 햇빛발전소 설치하고 조합원을 1만명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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