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에너지민주주의 없인 ‘정의로운 전환’도 없다 ④
독일 엠덴 폭스바겐 공장, 노조 제안으로 태양광발전 설치
직원 주인의식과 친환경 기업 인식 제고...에너지전환 상징
조합원 360여명 작년 배당률 5.9%...탄소배출 감축 3886톤

인천투데이=이종선 기자 |

기후위기가 가속하는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에 의존한 에너지 공급체제를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세계 각국은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에 분주하다.

더불어 세계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대규모 산업구조 변화에 대비해 기존 산업의 노동자·소상공인·농민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원자력 발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은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존의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를 낮추고 원전 비중을 늘리겠다며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 각국은 2050년을 목표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며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천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국내 곳곳에선 수년째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전소 입지를 선정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이 큰 이유다. 에너지민주주의는 실종됐고, 정의로운 전환은 아득하기만 하다. <기자말>

독일 엠덴 폭스바겐 공장 직원들이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출처 폭스바겐 직원 협동조합(Volkswagen Belegschaftsgenossenschaft eG))

중압집중 전력체계 에너지전환 확대 한계, 협동조합 대안 부각

독일의 에너지협동조합은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수용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에너지협동조합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과 참여라는 절차적인 공정성뿐만 아니라, 에너지 생산으로 창출한 경제적 수익을 분배한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시민 프로젝트 일환으로 대체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연방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중앙집중식 전력체계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에너지협동조합을 적극 장려하기 시작했다.

2006년 협동조합법(Genossenschaftsgesetz) 개정으로 조합 결성을 위한 최소 인원이 7명에서 3명으로 완화되는 등 설립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아울러 경제적 목적 뿐만 아니라 환경적 목적을 포함한 사회·문화 분야에서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하게 되면서 에너지 협동조합은 급격히 늘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06년 8개였던 독일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은 2021년 기준 914개까지 늘었으며, 조합원 수는 22만명에 달한다. 회원의 95%는 개인이고, 5%는 기업과 은행, 지역사회, 교회 등이다. 현재까지 협동조합에 재생에너지에 투자한 금액은 33억유로(한화 4280억여원)이며, 2021년 한 해에만 감축한 탄소(CO2)배출량은 300만톤으로 추산된다.

독일 니더작센주 엠덴 전경.(출처 위키피디아)

폭스바겐 노사화합 상징 ‘직원 에너지협동조합’ 친환경기업 인식 확보

독일 북서부 니더작센주의 엠덴(Emden)은 네덜란드와도 인접한 중소 항구도시다. 인구는 5만여명 수준으로 큰 도시는 아니지만,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과 기계·화학·조선공업 등이 발달한 산업도시다.

이곳에 있는 폭스바겐 직원 협동조합(Volkswagen Belegschaftsgenossenschaft eG)은 독일의 대표적인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이 조합은 공장의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발전시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폭스바겐 노동조합 협의체는 공장 직원들과 풍력발전시설 투자를 위한 조합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협동조합 설립과 투자 타당성에 대해 사내 직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에만 10년 넘는 기간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독일의 최대 단일 산별 금속노조인 이게메탈(IG Metall)이다. 이게메탈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오랫동안 주요 의제로 설정했고, 폭스바겐 노동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도 일조했다. 이어 2007년 에너지협동조합 준비위원회를 결성했고, 사측도 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8년 폭스바겐 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장 지붕 6500㎡에 최대 용량 280kW의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조합원들은 최소 250유로에서 최대 1만유로까지 출자금을 낼 수 있었다. 220여명으로 시작된 협동조합은 현재 360여명까지 늘었다.

폭스바겐 사측은 조합 설립을 지원하고, 재생에너지 생산시설 설치를 허용하면서 지원했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에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됐으며,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기업이라는 대외적 인식을 각인시켰다.

폭스바겐 공장 태양광발전 관리동 내부 시설.(출처 폭스바겐 직원 협동조합(Volkswagen Belegschaftsgenossenschaft eG))
폭스바겐 공장 태양광발전 관리동 내부 시설.(출처 폭스바겐 직원 협동조합(Volkswagen Belegschaftsgenossenschaft eG))

작년 수익률 5.9%... 사측의 친환경 공장 정책까지 이끌어내

직원들인 조합원들은 생산된 전력의 소비자이기도 하면서 생산자로서 투자금액에 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운영 첫 해 수익률 5%를 보장했으며, 그 뒤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난해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익분배 5.9%를 승인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폭스바겐 직원협동조합 제14차 총회 자료를 보면, 조합의 태양광발전은 2008년 시운전 이후 약 647만6303kWh를 생산했다. 지난해 생산량은 67만7806kWh이다. 이는 4인 기준 약 90여여가구의 연간 전력소비량이다. 탄소배출 감축량은 3886톤에 이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12년 폭스바겐은 친환경 공장프로젝트 ‘Think Blue, Factory’를 시행했다. 이는 2025년까지 세계 모든 폭스바겐 공장에서 에너지·물 소비와 탄소·폐기물 배출을 줄여 공장들을 2010년에 비해 45% 더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폭스바겐 직원협동조합 사례는 기업과 노동자, 협동조합이 협력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긍정적인 결과를 달성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노사관계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됐다.

이처럼 독일에서 에너지협동조합은 소유와 운영 관리에서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 경제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직 유형이자 제도라 볼 수 있다.

*이 기획연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폭스바겐 로고.
폭스바겐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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